천국과 지옥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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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리 목사

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기도하는 시간마다 울지 않고는 주님의 그 사랑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아니, 눈물로도 글로도 어쩌지 못하여 가슴만 부여잡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감격의 눈물을 꾸역꾸역 쏟아내기가 일쑤입니다.그처럼 죄인 중의 괴수인 저를 주님께서는 순전히 주님 마음대로 택하셨습니다.그리고 구원하셨고 천국자녀 삼아주셨습니다.

뿐 아닙니다. 원한 적 없었건만 천국을 데려가셨고 지옥을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2006년 12월 7일에 시작하여 2007년 2월 21일, 77일간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특권인가 기쁘기 한량없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랑스런 맘도 들었던 적이 있었음을 이제야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 삼년 째 접어들면서 겪어온 바, 그것은 대가를 치뤄야 하는 선물이었습니다. 보았으므로 알려야 했고, 보았으므로 그처럼 살아가야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을 뿐더러 거룩하신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도 뵈었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주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지금은 어찌되든 그저 감사만 남아있습니다. 저의 사고체계와 가치체계를 바꾸신 주 하나님 아버지,내 운명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 주 예수님!

그 분께서 이 기록을 읽는 자녀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으실 것을 믿고 기도드립니다. 주 하나님 아버지,신랑되신 사랑의 예수님,늘 지도하시는 성령 하나님, 성삼위일체 되신 주님께이 글을 올려드립니다. 기록하라 하심에 순종하였고여기 순종의 열매를 올리나이다.   받으시고 합당하신대로 쓰시옵소서.     아멘.

 박소리 올림.

과거 이야기

아름다운 현재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그 댓가를 치룬 과거가 있음을 세기의 반을 살게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됩니다.저 역시도 주님께서 아름다운 천국을 보여주시고 주님께서 부탁하신 아름다운 일을 하게 되기까지에는 뼈시린 아픈 과거를 겪어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지난 과거에 대해 주님께서는 이번 책을 내면서 더 이상 쓰지 말 것을 명하셨으므로 순종하려 합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내고 말고는 이제 저에겐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드러내는 것이요, 원치 않으시면 하지 않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저로 하여금 저의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공개적으로 공식석상에서 드러내도록 명하셨던 적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그 때 마다 저는 속으로 아프지만 순종했었습니다.이제 그 순종의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이러든 저러든 주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양한 아픈 과거가 있기에 누군가와의 상담 때에도 저 역시 겪어본 일인지라 같은 아픔으로 울며 기도할 수 있어서 이제는 기쁩니다.이제 저에게 아픈 과거는 없고 오직 기쁘고 즐거운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아픈 과거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요.다만 지금 아파하시는 분들께, 그 아픔을 지나 반드시 주님께서 준비해두신 아름다운 미래가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린도후서 1:6

주님과 나눈 대화 가운데 가끔은 저의 과거를 알지 못하여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실 줄 압니다. 그러기에 가급적이면 저와의 개인적인 대화부분은 줄이도록 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한 인간의 과거를 드러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주님을 나타내시고자 하심임을 알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박소리는 십자가 뒤로 힘껏 제껴두시고 오직 주님께만 촛점을 맞추어 읽으시면 훨씬 유익된 내용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책을 읽는 형제 자매의 마음눈을 밝혀주셔서 글 속의 글들을 읽어내도록 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록자 배경

전혀 안 쓰고는 안 되겠어서 조금 써 봅니다.

58년생이구요, 현재 미국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거주하고 있습니다.

예장합동총회 경기노회 목사안수, 주마교회 담임목사,하늘빛선교회 대표

All Nations Missile Prayer(AMP) 주님지시대로 쏘는 미사일 중보기도 사역리더입니다..

보시다시피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사람입니다.그래서 더욱 감사합니다.

 

Contents

책 머리에

과거이야기

기록자 배경

 

  1. 첫 번째 데려가심/ 다윗
  2. 두 번째 데려가심/ 아브라함ㆍ베드로ㆍ바울
  3. 세 번째 데려가심/ 엄마ㆍ처음 본 지옥
  4. 주님의 방문과 대화
  5. 네 번째 데려가심/ 박물관ㆍ가룟 유다ㆍ외할머니
  6. 다섯 번째 데려가심/ 선악과ㆍ이단 경고
  7. 여섯 번째 데려가심/ 비판하는 자들
  8. 일곱 번째 데려가심/ 나눔의 축복Ⅰ
  9. 여덟 번째 데려가심/ 나눔의 축복Ⅱ
  10. 아홉 번째 데려가심/ 믿음으로 가는 나라
  11. 열 번째 데려가심/ 십자가의 공로Ⅰ
  12. 십자가의 공로 Ⅱ/ 천국에서 만난 그들
  13. 열 한 번째 데려가심/ 도서관ㆍ사도 바울
    1. 열 두 번째 데려가심/ 천주교의 오류 Ⅰ
    2. 천주교의 오류 Ⅱ열 세 번째 데려가심/ 사도 요한
    3. 열 네 번째 데려가심/ 엘리야와 엘리사
    4. 열 다섯 번째 데려가심/ 무디ㆍ책에 관한 환상
    5. 열 여섯 번째 데려가심/ 두려움 속에 찾아오신 예수님
    6. 열 일곱 번째 데려가심/ 죠지 뮬러와 주님 마음에 합한 기도
    7. 열 여덟 번째 데려가심/ 환난 중의 순교자
    8. 열 아홉 번째 데려가심/ 닥터 누가ㆍ삭개오
    9. 스무 번째 데려가심 Ⅰ/ 천국편
    10. 스무 번째 데려가심 Ⅱ/ 지옥편
      1. 스무 번째 데려가심 Ⅲ/ 종결편
      2.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첫 번째 데려가심/ 2006년 12월 7일


다윗


새벽기도시간이었다.

이 날이라고 뭔가 특별한 어떤 일이 예고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몇 차례의 주님의 주밀하게 이끌어오신 훈련으로 인해 주님께서 이끄시는 어떤 일이든 당황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준비는 되어있는 상태였다고 할까.

 

성령님께 입술을 맡기고 기도하는 중이었다.성령님께서 친히 간구하심을 온 몸과 영혼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더니 온 몸에 기운이 빠지는 듯 했다.의자 뒤로 길게 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몸을 뉘우자 기다렸다는 듯 몸이 경직되어 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눈 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다.처음에는 그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어떤 보좌가 하나님의 보좌인 것 같다는 지식이 절로 생기는 것이었다.

 

넓은 성전이었는데 저만치 멀리에 한 분이 서 계셨고 그 분의 왼편으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다.

서 계신 분은 예수님이셨고 보좌에는 아무도 없지만 그 자리에 하나님이 좌정하여 계심을 역시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구부러진 머리결에 갸름한 듯 보이는 얼굴은 평소 성화에서 본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성화보다 얼굴도 몸매도 좀 더 갸름하게 느껴졌다. 얼굴윤곽만 알 수 있고 그 속은 볼 수가 없이 내 눈에는 희미하게 보였다.

키가 훤칠해 보이셔서 몸이 더 가늘어 보였다.그 때에야 그 분이 예수님이심을 확연하게 마음에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아, 스데반 집사가 본 장면이 바로 이런 것이었나부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도행전 7:55-56

 

그 때였다.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던 예수님께서 스르르 내게로 다가오시더니 어느새 나의 오른편에 서 계셨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기특하다는 듯이 쓰다듬어 주셨다.나는 어리버리한 어린아이가 되어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신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고 어딘가를 걸으셨다.양옆에는 꽃들이 즐비했고 길은 부드러운 황금빛 길이었다.나는 그제야 내가 지금 천국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내 안에서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다.그러면서 이 때를 놓치지 말고 보고싶은 것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예수님, 제 집 있어요? 있으면 좀 보여주세요.”

그런데 왠일인지 예수님께서 머뭇거리시면서 안 보여주시려는 듯이 느껴졌다.천국은 저절로 상대의 마음이 말하지않아도 읽어지는 것이었다.그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의 지배 가운데 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천국에 이르는 모든 백성은 모든 것을 통찰하게 되는 것이다.

순간 여쭈고는 답을 못들은 나는 머쓱해져서 잠시 말없이 길을 걸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시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졸라댔다.

“내 집 좀 보여주세요오~!”

마치 어린 아이처럼 졸라대고 있는 나였다.결국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이 보여주시기로 하신 듯 나를 이끄셨다.

곧 저 만치 길 끝에 납작해 보이는 집 한 채가 보였다. 작고 아담하면서 지붕이 편평한 단층집이었다.

전체적으로 빛이 나지 않는 우중충한 황금색깔 집이었다.

입구에 자그마한 현관문이 보였고 옆으로 제법 큰 창문이 하나 달랑 달린 것이 전부인 집이었다.

 

어느새 내가 집안에 들어서 있었다.내 눈앞에 역시나 초라한 풍경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원룸 스튜디오식의 달랑 방 한 칸에 가구가 뜨문뜨문 놓여 있었다.오른 쪽으로는 커다란 책상 두 개, 의자도 없는.

그리고 책상 옆에 세워진 전기 스탠드 하나.왼쪽 구석에는 소파가 있었다.

아랫 부분을 잡아당기면 침대가 되는 겸용소파였다.

다시 말해 그다지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볼품없는 3인용 소파가 있었고 기역자로 2인용 소파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작은 티테이블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게다가 커다란 창틀에는 커텐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아 휑뎅그레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내 집을 보여달라고 졸라대던 나는 그만 내 집의 이러한 모습 앞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을 수도 숨을 곳도 없어 그저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계신 예수님의 속 마음이 내게 전달되어져 왔다.

‘그래서 내가 안 보여주려고 그런 거잖아..’주눅든 나를 예수님께서 달래시기 시작하셨다.

“이제부터 열심히 상급쌓으면 되잖아. 너 잘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께.”

그러시더니 손을 드셔서 예수님의 세마포 왼쪽 심장 쪽에서 예수님의 심장을 꺼내셨다.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새빨간 하트 모양의 심장이었다!

 

예수님의 심장은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신 것이다.내가 새빨갛다고 표현했지만 천국의 색은 이 땅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이다.다만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기에 빨간 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예수님께서 그 아름다운 빨간 심장을 들어 저의 심장에 넣어주셨다.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흐느끼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테너음성으로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리자 저 끝에 황금마차 한 대가 보였다.두 대의 말이 끄는 마차였다.

 

그 마차에는 마치 영화 「벤허」처럼  멋지게 서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복장도 영화에서 보던 주인공 같은 복장이었다. 주름치마같은 것을 입고 신발은 종아리까지 끈을 매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단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는 것만 달랐다.키가 작고 귀여운 얼굴의 그가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왼손은 높이 치켜들고 찬양하고 있었다.

내가 속으로 의아해 하며 ‘누구지?’하고 의문을 품자말자 예수님께서 답해주셨다.

“다윗이다.”아, 다윗!성경 속의 다윗을 내가 직접 보다니!

기뻐할 겨를도 없이 내 영은 즉시 지상으로 돌려보내졌다.그러면서 곧 경직되었던 몸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곧바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어서 잠시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여전히 몸에 기운이 없고 맥이 없는 듯 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믿기지 않는 사실에 대해 나 스스로 감당키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조금씩 몸을 추스려서 간신히 운전해서 집에 돌아왔다.운전하는 동안 왠지 모르게 자꾸만 흐느끼고 있는 나였다.차고에 주차를 하고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운전대를 부여잡고 한동안 꺽꺽대며 울었다.

그것은 주님의 눈물이었다.

주님의 빨간 피로 흘리시는 심장의 사랑의 눈물이었던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눈물로 다른 영혼을 위하여 눈물흘리라고 주님께서 내게 그 심장을 주신 것이다.

그것이 상급을 빨리 쌓는 지름길이므로 그것을 주신 것이다.

볼품없는 나의 하늘집을 가장 빨리 아름답게 가꾸게 해주실 수 있는 예수님의 심장!

 

예수님의 그 사랑의 심장으로부터 흘리신 눈물이 오늘 나를 구원의 자리에 두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너를 나의 눈물로 구했으니 이제 너도 나의 눈물로 나의 백성을 구하라고...!

 

두 번째 데려가심/ 2007년 1월 21일

 

아브라함ㆍ베드로ㆍ바울

 

주일 저녁이었다.침대에서 성경을 읽다가 잠을 청했다.

분명히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꾸만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느꼈다.그렇다고 무슨 공포감이 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깨어서 시간을 보니 밤 11시.그 때부터 갑자기 나를 향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시작되었다.

몸에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번개같은 전기충격이 온 몸을 강타했고 내 몸은 펄쩍 뛰듯이 튕겨졌다.

불같은 뜨거움이 온 몸을 휘감았다.그러면서 주님의 음성이 가슴 저 밑에서 들려왔다.

"네가 있는 곳곳이 예배처소가 되리라.네가 가는 곳마다 기도할 것이며 그곳에 내가 강하게 임재하리라.
내가 큰 능력으로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나서 몸에 더 큰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그러더니 내가 아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예언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때로는 누군가에 대한 환상이 보이기도 했다.

예언이 끝나길래 시계를 보니 11시 30분.30분간을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저절로 스르르 또 눈이 감겨왔다.몸에 진동이 다시금 시작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인어공주처럼 몸흐느적거리기도 했다. 몸을 모로 뉘어보았다.그래도 그 흐느적거림은 여전했다.

그저 몸을 맡기고 있기는 했지만 내 맘은 속으로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약간 두렵기도 했다.이러다가 내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겁이 나기도 했다.몸이 어찌나 뜨거워 오든지 전기매트를 껐다.

주님이 내 손을 이끌어 옷 매무새를 단정케 하도록 이끄시더니 두 손을 모아 가지런히 가슴 아래 올려 놓도록 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그것은 마치 장례식 때 관 속에 누운 사람의 모습과 같은 형태였다.

그러더니 어느새 주님께서 나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어 가신 것을 알 수 있었다.몸은 죽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두시고 내 영만 데려가신 것이다.

누가 믿을까, 한 번도 가기 힘든 그곳을 두 번씩이나 가게 되다니.아무튼 주님께서 데려가셨으므로 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데려가시기 직전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I will show you Kingdom of Heaven..”내가 너에게 천국을 보여주겠다--

왜 영어로 말씀하셨을까?내가 미국에 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이유?

그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주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적절하신 때에 알려주실만한 것은 알려주심도 잘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형상으로 보이시지 않고 빛의 형상으로 나와 함께 계셨다.

그런 지식은 천국에 이르게 되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예수님께서 생명강과 생명나무를 보여주셨다.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에 기쁨이 넘쳐왔다.

내가 주님께 말씀드렸다.“예수님, 더 많은 것을 칼라풀하게 보여주세요.왜 저는 흑백으로 보이는 거죠?”

실은 흑백이라기 보다는 내 눈에 침침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너의 죄된 심성으로 그러한 것이란다.그리고 아직 다른 것은 너에게 보여주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단다.

너에겐 특별히 조금만 보여주는 거란다, 너의 믿음을 더해주기 위해서.” “지금 회개하고 씻을께요.”

나의 즉각적인 응답에 예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차차..” 하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점점 더 깨끗해지면 점점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 저의 집을 다시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비록 초라한 집이었지만 천국에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던 나는 재차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기꺼운 마음으로 내게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것이었다.

다시 가보니 빛이 전혀 나지 않던 그 집에 황금빛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그것을 보자니 마음으로부터 기쁨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너의 마음에 빛된 내가 밝게 빛나서이다.” 기뻐하는 나를 보며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셨다.

실내로 들어가 보았다.실내도 전보다 훨씬 밝고 화려해져 있었다.소파도 좋은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티테이블 가운데에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다른 먹거리들도 바구니에 이쁘게 담겨 놓여 있었다.

창틀에 커텐도 레이스로 달려 있었고 책상에 의자도 생겼다.

방의 크기도 넓어져 있었다.안쪽으로는 침대가 새로 생겨서는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예수님!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집이 화려해질 수 있죠? 제가 무슨 상급을 쌓았나요?”

“네가 다른 영혼들을 위해 흘린 눈물이 꽃들로 장식된 것이란다.네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내가 그것을 담아온 것이다.천국은 시간으로 상급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쌓이는 것이다.”

그 다음 본 것은 어떤 과수원 같은 곳이었다.나무가 즐비하게 많이 있었는데 나무마다 조그만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사람들이 맺는 성령의 열매가 나무에 열매로 달리게 되는 것이다.이름이 은혜나무란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맺는 성령의 열매 즉,  사랑의 열매 희락과 화평의 열매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들은 모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은혜나무인 것이다.

잠시 후 예수님께서 누가 보고싶냐고 물으셨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보고싶다고 생각하자마자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황금휠체어같은 것을 타고 나타났는데 이후 알게 된 것은 그것이 황금보좌라는 것이었다.

일반 의자와는 달리 그것은 아래에 바퀴가 달린 듯 움직였지만 그 바퀴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의자가 굴러오는 것이 아니라 스르릉..하고 미끄러지듯 스르륵 나타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나를 보자 의자에 앉은 상태로 나를 안아주었다.아브라함은 하얀 머리에 하얀 수염이었고 하얀 세마포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그리고 몸매는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적당히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그를 보자 내 안에 절로 소원이 생겼다. ‘저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주세요...’

말로는 꺼낸 바 없지만 이미 천국백성이 된지 오래인 그는 나의 마음의 기도를 알아 차렸다.

그는 “못 줄 것 없지” 그러면서 그의 심장을 꺼내어 내 심장에 넣어주었다. 그것은 저번 날 예수님이 하신 모습과 거의 비슷한 행동이었다.그의 심장은 황금돌같이 둥글게 생긴 것이었다. 약간 회색 빛 같기도 한, 용암같은 황금이라고 표현하면 될 듯. 그 심장을 받는 순간, 내 안에서 찬양이 떠올랐다.

 

♬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돌같은 내 마음 곧 녹여주소서~

아브라함은 내게 심장을 주러 나타난 사람처럼 심장을 주고는 곧 다시금 스르릉..하고 오던 모습과 같이 사라져 갔다.그는 참 편하고 자유롭고 부드러우며 온화해 보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깨달음은 이것이다.아브라함이 뭔가 특출나게 뛰어나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그리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처럼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만 입으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그 다음 보고싶은 사람으로 베드로가 떠올랐다.내 마음을 이미 읽으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셨다.

“베드로야~.”

저 쪽에서 덤벙거리며 베드로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덜렁대는 모양새가 나랑 비슷해서였을까?

그 털북숭이 아저씨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즐거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처음보는데도 아주 오래도록 보아온 사람처럼 친근함과 사랑스러움이 내 안에서 그를 향해 마냥 넘쳐났다.

베드로가 내게 악수를 청했고 우리는 서로 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덩치가 좀 있고 북실하고 살집도 좀 있는 베드로 아저씨였다.그를 보고 있자니 궁금증이 피어났다.‘저 아저씨는 왜 면류관이 없지?’

내 속을 알아차린 베드로가 말했다.“난 면류관 귀찮아서 안 쓰고 다녀. 그냥 집에 모셔두고 있어.”

그가 그 말을 하는데 내게 그의 집안이 보였다.구석에 있는 네모난 엔드테이블 위에 올려진 면류관이 보였다.

천국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 그 기질과 성품대로 자유롭게 행하는 곳임을 지식으로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은 즐겁게 왕관을 쓰고 다니고, 어부였던 베드로는 편한대로 벗어두고 다니는 편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천국.

“아저씨는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어요?”

늘 궁금해하던 질문을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내가 스스럼없이 묻고 있었다.그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야기꾼 베드로 아저씨였다.

"첨에 예수님께서 부르셔서 힘차게 물을 디뎠지. 걸어가는데 기분이 참 좋았어.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다가 갑자기 물을 내려다 본 거야. 시퍼런 물이 보이는데 그 속에서 누군가 나를 노려보는 듯한 무서운 큰 눈초리를 보았어. 그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오는거야. 그러면서 물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지.

그때 예수님을 소리질러 불렀더니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날 잡아주셨어."

그 말을 한 후 두 팔로 나를 안으면서 말했다. “베드로후서를 잘 읽어라.마지막 때의 비밀이 거기 있노라.”

이야기 할 때랑은 다르게 이 말을 할 때에는 엄숙하고 무게있는 어투였다.그러더니 다시 명랑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또 가봐야겠다. 난 아이들을 지금 돌보고 있어.난 아이들이랑 노는게 좋아.”정말 천진한 베드로였다.

그 다음에는 사도 바울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키가 크지 않고 못 생긴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는 몸집도 베드로보다 훨씬 왜소해 보였다.왼쪽 눈이 진짜로 툭 불거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세상에서 받은 고난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눈에도 고문의 흔적이 보였다.

나는 또 의문이 들었다.천국에서는 우리의 모습이 온전해진다고 들었는데..??

나는 이후 주님께 이 부분에 대해 질문드렸다.그 때 주님은 이런 답변을 주셨다.

“나의 종아, 그리하여야 너의 지식 속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것이 아니냐? 나는 네가 아는 지식을 넘어 너에게 나타내 보이는 무례한 자가 아니니라."

주님은 우리가 아는 지식만큼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와 더 많은 교제를 나누고 싶으셔서, 더 많이 보이시려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성장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베드로후서 3:18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안질을 앓았지만 천국에서는 괜찮다.”

그를 보는 순간 존경심이 우러나서 나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어 고개숙여 인사했다.그가 내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주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8

 

“어떻게 그렇게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내가 말에는 졸하나 지식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고린도후서 11:6

 

역시 사도 바울이었다. 주로 성경구절로만 말하는 것이었다..ㅎㅎ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 가득 담은 눈초리로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 그가 나를 위하여 많은 고생을 했느니라..”

 

주님을 위하여 많은 고생을 하는 이들이여, 기뻐하시라!

그것은 곧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넘치게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보고싶은 사람이 생각나지 않다가 문득 엄마, 큰이모, 큰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들이 떠오르자마자 내 눈 앞에 한 장면이 보였다.

그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둘러앉아 세상에 남은 가족들에 대해 서로 의논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달려가 참여하고 싶다든지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아..엄마..하는 느낌만 있었고 모녀 관계보다는 같은 성도로서의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천국은 세상에서의 관계적 호칭은 살아있어서 ‘엄마, 언니’ 등 부르기는 하지만 다만 호칭만 그렇게 부를 뿐 육적인 관계를 넘어선 더욱 아름다운 예수피로 맺어진 성도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늘 궁금하던 맹의순 선생님.그 분이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맹의순 선생님은 정연희 작가가 쓴 신앙전기적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나는 이십여 년전, 그 책을 읽고 참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짧은 26년을 사는 동안 얼마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다가 주님께로 가셨는지 모른다.그는 억울하게도(알고보면 주님의 이끄심으로)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끌려가 거기서 광야교회를 세우고 중공군 포로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들의 핍박 속에서도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다.

중국말로 시편 23편을 써서 환자들에게 더듬거리면서 읽어 주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 시편을 읽어주다가 하늘을 우러러 보며 “내 잔이 넘치나이다..넘치나이다..” 하고는 쓰러져 그대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의 시체도 거적에 실려 버려지는 바람에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중공군 포로들은 그의 죽음 앞에 통곡하며 선생님이 믿던 예수를 중국으로 돌아가 전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주님은 아름다운 그를 중국 선교의 피의 제물로 쓰신 것이다.

그것이 그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그의 사명이었고 그는 그 소임을 다하였으므로 주님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내 잔이 넘치는 가운데...

26세에 천국에 간 그가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당시 초신자였던 나는 책 끝장에 그에게 편지를 썼었다.

이후 천국가서 인사드리겠다.천국에 얼마나 바쁜 일이 많으면 그리 일찍 데려가시냐고..

나도 선생님처럼 살다가 주님 품에 안기고 싶다고..

 

그리고는 십수년이 넘도록 잊고 있던 그가 갑자기 이 천국에서 보고싶다니.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이는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심이 분명하다.

“그가 바쁘다, 공사중이라.”

에수님께서 그가 건축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셨다.이후에 천국에 이를 성도들을 위한 집들을 짓고 있는 것이다.

 

새예루살렘은 이미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일러주신 바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 지금도 천국에는 곳곳에서 공사 중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내 집이 분명 리모델링된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였잖은가!

성도들의 상급으로 계속지어지는 집 건축에 그가 섬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천국은 공사중일지라도 세상처럼 지저분하지 않음도 지식으로 알 수 있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니신가!

 

그 다음 보여주신 것은 선교사들의 맨션이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집은 길다란 아파트같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건물을 보고있자니 뿌듯함이 몰려왔다.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힘쓴 자들을 위한 저 큰 집..!

 

주님은 선교를 기뻐하신다.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지에 뛰어든 그들의 순종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주님에게 큰 상급을 받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이후..

하나님의 음성이 우렁우렁 들려왔다.지상에 있더 내 육체에 다시금 강한 진동이 몰려 왔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나의 택한 그릇이니라.내가 다시 말하노니 담대하라.
내가 너를 마지막 때의 선지자로 안수하노라.네가 쟈슈아 제너레이션, 세컨 제너레이션과 동역하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표기했다.

쟈슈아 제너레이션은 영어로 Joshua Generation, 한국말로는 여호수아 세대이다.

세컨 제너레이션은 Second Generation, 즉 믿음의 제2세대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구별된 두 세대이다. 내가 그들과 동역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과 무슨 동역을 하게 되는가 싶었는데 주님은 그 부분에 관햬 이후 내가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그 부분에 관하여는 이후 따로이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빛되신 하나님께서 내 머리에 안수하며 말씀하셨고 주변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흰 옷 입은 하늘나라 백성들이 여기저기로부터 모여들면서 “아멘..아멘..”하고 있었다.

이 때 안수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아닌 성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는 천사들이 우리가 있는 곳 위를 둥글게 날며 찬양하기 시작했다.하늘을 나는 천사들은 키나 몸매나 사이즈가 좀 작아 보였다.

날개달린 천사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주 여호와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시도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고 나서 빛되신 주님께서 내게 입맞추며 말씀하셨다.

“내 입의 말을 네게 주노라.”

그 순간 지상에서의 내 육체의 배가 불러오는 것이었다.

입맞춘다는 표현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그렇게 표현하였지만 빛이 내 입에 닿은 것을 뜻한다.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대언의 영을 주노라.” “어떤 환난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담대함을 주노라.”

내게 올 고난을 미리 대비해 주시는 담대함이다.미리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시는 하나님..

큰 숨을 내쉬며 나의 경직되었던 몸이 풀렸다.시간은 밤 12시 10분, 40분간의 천국여행이었다.

 

이 땅에서의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없이 나는 40분 안에 많은 것을 본 것이다.

천국의 시간은 이 땅에서의 시간과 다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8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하신 지 이천 년이 지났다.어떤 이들은 그러므로 더디다고 말하고 지쳤다고 말하고 이제는 잊겠다고 말하기도 한다.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어디가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그렇다!

주님은 지금 시간을 늦추시며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천국에서 이천 년이라는 시간이 아닌 것이다.

이십 분일 수도 있고, 두 시간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이제 아주 조금의 시간여유가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이전에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회개하여야 한다.영적인 소독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무균실에 계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내가 할 일은 바로 소독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공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 메시지인 것이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1:15

 

씻어야 한다. 청결해야 주님을 볼 수 있다.샤워 후의 개운함과 상쾌함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날마다 하도록 하자.육체만이 아니라 영혼도 날마다 샤워를 하자.그러면 나의 영과 육이 날아갈 듯 하리라.

지상에 도달한 내 영은 육체를 만나 주님이 주시는 상쾌한 개운함 속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세 번째 데려가심/ 2007년 1월 25일

 

엄마 · 처음 본 지옥

 

새벽기도를 드리러 교회에 갔다.

통성기도 시간에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영혼도 입도 잠잠해지는 것을 느꼈다.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영적 분위기였다.

최근 들어 연이어 몇 번의 영적 체험이 있은 터라 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길게 늘어선 의자 위에 눕고자 했다.그런데 눕자마자 곧 집에 가서 누우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입에서 밀어내듯 방언이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내 안의 성령님께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흐느낌으로 친히 간구하심을 알 수 있었다.그러면서 왠지 오늘 지옥을 보여주실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셨다.겁이 많은 나인지라 그 생각이 들자 좀 겁이 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중얼중얼 입에서는 방언으로 기도를 드리면서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정돈한 후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방언이 강해지면서 몸에 진동이 크게 오기 시작했다.팔도 막 휘저어졌다.

저번 날보다 더 크게 전기충격같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었다.

 

그러더니 드디어 예수님께서 오셨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주님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사랑의 고백으로 화답했다.

예수님과 내가 걷고 있었다.내 모습이 처녀같았다.

예수님께서 나의 양손을 잡아 빙빙 돌려 주시면서 나와 함께 웃으며 놀아주셨다.

그러더니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느니라.나와 함께 가자.”

그러고는 침대에 누운 내 몸에 다시 진동이 무지무지 강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나는 감당할 수 없어서 비명이 다 나왔다.비명을 지르며 속으로는 예수님께 부르짖었다.

‘예수님~~무서워요~~~!’

예수님을 잡고 싶어서 손을 막 저었다.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아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니 두려워 말라.”

그러시더니 내게 예수님이 확! 덮쳐오는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영적 기운으로 완전히 덮으셨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몸에는 진동이 그쳤다.

곧이어 내 영혼이 마치 누가 나를 요람에 태운 듯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게 좌우로 흔들리더니 조금씩 크기의 폭이 줄면서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로케트가 좌우회전을 하면서 한 곳을 향해 돌지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요동이 멈추더니 내가 어디론가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포도알이 껍질에서 쏙 빠져나와 입 속에 빨려들어오는 듯한 느낌같다면 이해가 가능할런지.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진동이 강하게 임하기 시작했다.멈춘 듯 하더니 또 한 번 임하는 것이었다.

내 몸이 막 덜그럭거리며 침대가 요동치는 듯 했다.그러더니 잠잠해지면서 눈앞이 환해오기 시작했다.

아...예수님이다!

한참 소란을 떨며 두려움 가득 있던 터에 내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예수님의 양옆에 두 명의 천사가 흰 옷을 입고 같이 서 있었다. 언제든지 보면 예수님 곁에는 그 두 명이 거의 늘상 수종들고 있었다.

내 모습은 왠지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4-5세 정도로 보였다.

나는 예수님께로 아이의 걸음으로 막 달려가 그 품에 포옥 안겼다.

예수님께서 구부린 자세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반기시며 달려오는 나를 안아 예수님 팔에 걸쳐 주셨다.

예수님께서 속으로 ‘어서 오느라, 오느라고 수고했다’라고 내게 말씀하심을 알 수 있었다.

천국문에 이를 때면 꼭 어린아이로 보이게 되는 것은 바로 어린아이같은 믿음이라야 천국에 이를 수가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임을 알려 주셨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예수님 품에 안겨 있으면서 좋아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양소리가 들려왔다.

♬ 참 아름다워라~주님의 세계는~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아!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흐르는 시냇물, 들의 꽃들, 빛나는 황금길 가에 만발한 아름다운 그 광경..야트막한 언덕..

이번에는 화려한 칼라로 보여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언덕 저 너머 멀찍이 디즈니랜드에 나오는 그림처럼 보이는 도성들이 보였다.

반짝거리며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도성들이었다.

그것을 보는 당시에는 몰랐으나, 이후 주님께서 그곳으로 데려가셨을 때에야 그곳이 삼층천임을 알게 되었다.

와~~~!!

나는 연신 감탄을 연발해댔다. 말로는 이루 다 표현 못하게 아름다운 도성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고 싶었다.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였다.엄마가 언제 오셨는지 예수님 곁에 서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계셨다.

아..엄마! 워낙에 미인이셨던 엄마는 더욱 아름답고 젊은 모습으로 연한 핑크빛 한복을 입고 계셨다.

다윗도 그렇고 베드로나 바울.. 내가 만난 천국의 사람들은 모두 옷이 제각각이었다.

모든 천국백성들은 자기 취향에 따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워낙 한복을 좋아하고 또 한복이 잘 어울리시는 분이셨는데 천국서도 그 옷을 즐겨 입으시나 보았다.

내가 만났던 성경인물들과는 달리 엄마는 말씀을 안 하시고 그저 미소만 띄고 계셨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셔서 알게 되었다.엄마를 향한 나의 마음은 저번 날처럼 인간적인 사랑의 마음이 전혀 일지 않았다. 여전히 성도간의 사랑의 감정이었고 그저 좋기만 했다.

 

예수님과 엄마가 어린 모습의 내 양손을 각각 좌우로 잡고 함께 황금길을 거니셨다.

황금길을 타박타박 셋이서 걸으며 나는 마냥 흥겨워서 두 분과 맞잡은 양손을 빙빙 돌리며 행복해 했다.

그렇게 걷다가 한 연못에 다라랐다.연못을 앞에 보며 내가 가운데 앉고 예수님과 엄마가 내 양편에 놓인 연못가 바위 위에 각각 앉으셨다.

예수님께서 내게 미소띄신 얼굴로 물으셨다.

“좋으니?” “네에~!”

한껏 흥에 겨워 있는 나에게 예수님께서 물을 한 모금 떠서 내 입에 넣어주셨다.

“이 물을 마셔보거라. 참 달단다.” 아.. 너무 단 맛의 물이었다.

지상에서의 내 몸이 움직이며 푸근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도 예수님처럼 내게 한 모금 물을 떠서 주시는 것이었다.그것도 받아 마셨다.

안 그래도 한껏 들떠 있던 내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되는 순간 놀랍게도 내 몸이 실제로 천국의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기를, 기분이 좋으면 “아~ 날아갈 것만 같애~!”라고 말들을 하는데 실제로 천국에서는 그런 마음이 들음과 동시에 그대로 날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기가 막히고 흥분이 되는 것이었다.

하늘을 한 바퀴 멋지게 혼자 돌면서 아까 그 도성과 들판들을 보고 난 후 나는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예수님께서 다른 곳을 보여주시겠다며 나를 이끄셨.

엄마는 다시 엄마의 자리로 가신 것인지 보이시지 않았다.그런데도 왠지 내게도 찾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새 어린아이에서 처녀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그 모습으로 예수님과 함께 어떤 문으로 들어갔다.

아주 큰 홀같은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 그곳은 크고 흰 건물로 된 성전이었다.

실내가 모두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와서 연신 두리번거렸다.

 

입구에서 오른 쪽에 있는 큰 방으로 인도되었다.하얀 가운을 입은 곱슬러미 미소년같은 아름다운 천사가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천사의 뒤로 보이는 넓고 긴 벽에는 아름다운 드레스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즐비하게 걸어져 있었다.그리고 그 위 선반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면류관들이 역시나 도열해 있었다.

 

천사가 내게 핑크색 드레스를 주었다.그 드레스를 입자 희한하게도 내 몸에 꼭 맞으면서 몸이 날씬해보이고 아주 이뻤다.천사가 면류관도 하나 씌워주었다.면류관을 쓸 때에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예수님도 옷을 갈아 입고 면류관을 쓰고 계셨다. 예수님은 마치 왕같이 보이시는 복장이셨다.

예수님께서 또 물으셨다.

“좋으냐?” “네에~!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서 자꾸만 함박웃음이 절로 나왔다.

처음에 들어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아름다운 방의 오른 쪽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만조백관처럼 모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정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보좌에 앉으셨다.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경배드렸다.

 

“어린 양 예수님께 경배드립니다..”그러면서 고개들을 숙이는 것이었다.나도 덩달아 예수님께 고개숙여 경배드렸다.

예수님께서 두 손을 들고 우리를 축복하셨다. “내가 너희를 축복하노라.”

그러자 모두들 “아멘!”으로 화답했고 나도 따라서 “아멘!”으로 화답했다.

에수님께서 그곳을 나서시고 다시 연못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연못에 대해 말씀해주셨다.“이 연못은 특별한 연못이다.

이 물을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며 이 물에 씻으면 모든 죄가 희어지느니라.”

그러시면서 내게 물을 주셨는데 내 속으로 물을 마시고 싶어하던 참이었다.

물을 마실 때 지상의 내 육체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내 온 속이 다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내 머리 위로 그 물을 끼얹으셨다.그러자 놀랍게도 내 핑크드레스가 하얗게 변하는 것이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이 물은 너도 마시고 나도 마신다.그리고 내 백성 모두가 마신다.

이제 천국에 올 내 백성 모두가 마시게 될 것이다.”

그후 장소가 옮겨지는 듯 하더니 천국문을 나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과 나는 어느 사이엔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예수님은 면류관을 쓰지 않은 세마포 차림이었고 나는 평상복같은 옷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본 아비규환의 현장..그곳이 지옥이었다!

천국과 지옥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 것은 영적세계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곳이기 때문임을 깨닫게 해주셨다.아브라함이 나사로를 안고 지옥에 있는 부자와 대화할 때 큰 구렁텅이가 있다고 하더니 그 정도 거리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6:26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지옥에 데려가시기 전에 먼저 기쁨의 성령으로 충만히 채우신 후 지옥으로 데려오신 것이다.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고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어떤 일을 맡기시기 전에 미리 성령으로 채우신 후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마가복음 1:10,12

 

지옥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앞에 조그만 감방이 하나 보였다.

아..그곳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신 저의 친척 한 분이 거기 계셨다.그 친척이 그 안에서 손을 벌려 내게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그 분께는 구더기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왼쪽 얼굴은 구더기가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데도 직감적으로 내가 아는 친척임을 알 수 있었다.

“나를 여기서 꺼내줘~!!” 손을 잔뜩 내밀고 애원하는데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슬프게 대답했다.“저는 힘이 없어요...죄송해요...”

아무리 혈연으로 묶여있어도 일단 그 생면이 끝나고 나면 어느 누구도 그를 구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명있을 때 그 영혼이 구원받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그 호흡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예수님, 어떤 사람들이 지옥에 오게 되나요?”

"나를 믿지 않은 사람들, 나를 배반한 사람들, 나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게 된단다….

나는 단 한 사람도 이곳에 오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정말이지 진정으로 단 한 영혼도 이곳에 오기를 원치 않는다. 너는 가서 전하거라. 내가 정녕코 단 한 영혼도 오기를 원치 않는다고…!"

예수님은 너무 슬퍼하시며 고개를 외로 꼬으시고 아파하셨다.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는 아래로 불구덩이가 보였다.

불길 속에서 사람들이 위로 손을 올리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주님~!! 우리를 여기서 구원해 주세요~!!”

그들이 뜨거워 어쩔 줄 모르며 부르짖고 있었다...!!! 그 고통을..그 간절함을.....어찌 글로 다 표현할까...!!!

내 영혼이 소리내어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구덩이 위쪽으로 시선을 따라 올라가 보이는 곳에 아까 본 조그만 감방 같은 것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그 속에도 각 방마다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해골의 모습으로 조그만 창살 밖으로 뼈만 남은 팔을 내밀고 있었다.

 

울고 있던 나는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 예수님께 다시 물었다.

“저 곳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인가요?” “내 종들로서 나를 배역한 자들이다.

그들에게 내가 복음을 전하라고 은사를 주었건만 그들은 나의 영광을 자기 영광으로 삼고 자기의 배를 채웠다.”

나는 다시금 울기 시작했다.점점 그 소리가 커지며 엉엉~~ 통곡했다.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아픔은 바로 예수님의 아픔이었다.그 예수님의 아픔을 예수님께서 내게 느끼도록 하신 것이다.

울다울다 지쳐 주저앉았다.그리고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꺼이꺼이 울었다.

예수님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눈물머금은 슬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울지말아라 딸아...” 그러시면서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를 예수님께서 다른 곳으로 이끄셨다.

다시 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희한한 것은 다시 천국으로 오고 나니 그 아픔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하면서 금새 잊어지는 것이었다.

아까 들어갔던 흰 성전으로 들어갔다.아까 본 만조백관들이 여전히 거기 도열해 있었다.

이번에는 일렬횡대처럼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계단에 오르시어 이번에는 앉지 않고 보좌 우편에 서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빛으로 보좌에 좌정하셨다.

이후에도 보면 언제든지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좌정하실 때면 늘 서 계셨다.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겸손이라는 것이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같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성자이시므로 스스로 겸손을 보이시어 성부 하나님 우편에 서시는 모습이 진정한 천국의 모습인 것이다.

 

사도신경의 고백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고 할 때처럼 예수님의 보좌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지만,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심을 알 수 있었다.

성부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때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완전히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코는 바닥에 대고 양팔은 위로 뻗은 모습이었다.

아까 모여있던 사람들이 찬양하기 시작했고 그들 또한 겸손하게 성부 하나님 앞에 고개 숙여 경외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성부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성전은 말로 할 수 없는 경외심으로 충만하게 된다.

마치 풍선을 불다가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포화상태와 같은 충만한 경외심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경외심은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슴 저변에 가득 깔린 극히 깊은 존경심을 말한다. 하여간에 너무너무너무 아름답고 고상한 경외심으로 가득찬 하늘 성전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이후 영원히 살게 될 천국에서 우리 또한 그처럼 놀랍고 풍부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경배하게 될 것이다...!

 

어느 틈엔가 내가 일어서 있었다.

일렬로 선 아름다운 사람들과 마주 보는 방향에 혼자 어벙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내 백성들을 속히 구하기를 원하노라.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 6:8

 

그 때 나는 속으로 ‘아..지금 이사야가 본 장면을 내게 구경시켜주고 있다보다..’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일렬로 선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예수님께서 팔을 뻗어 나를 가리키며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었다.

“이 딸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허걱..!

너무 놀란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못한다고 말하려고 했다.당연히 못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틀림없이 성령님의 완전한 운행하심이 틀림없다.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께 조금 앞으로 나아가서 이렇게 아뢰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내가 할 수 있나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내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내게 금패같은 것을 주셨다.짧은 지휘봉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처음 받았을 때와 다르게 이후에는 보이지 않고 금패 자체만 보였다.

너무도 밝은 빛이 나는 금괴같은 것이었다.세로막대같은 홈이 두개 파여 있었고 금술이 금패 끝에 달려 있었다.

크기는 가로 5 센티 세로 7센티 정도로 보이는 것이었다.아니, 실은 그것을 보는 순간 내 마음에 그 수치가 자동으로 떠올랐다.마치 암행어사 마패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들어 예수님께서 그 금패를 다시 보게 해주셨다.

그 패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딘가에 늘 내재되어 있나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곧 나타나는 것이었다.그런데 처음보다 좀 커져 있었다.

제법 커지니 그 패를 보고 놀라는 내게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다.

사역을 하면 할수록 그 패는 더 커지고 위력적이 된다는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은사)은 자꾸만 써야만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허공에 금패가 떠 있는데 그 뒤로 빛되신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의 형상인 빛은 세상의 빛과는 다르다.

세상의 빛보다 훨씬 더 밝고 환한 빛인데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햇빛과는 달리 내가 하나님의 빛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아름다운 빛되신 하나님께서 너무 아름다운 금패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이것을 주노니 악의 권세가 너를 해치 못할 것이다.

네가 고난을 당할 것이나 능히 이길 것이며 능히 감당하리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실 때 내 몸에 큰 진동이 임했다.나는 그것을 손에 쥐고 높이 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천사들이 날며 찬양하기 시작했다.

천사가 나는 모습은 무지개 양끝에서 서로 마주보며 반원형으로 날아오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 주 여호와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영원 영원 영원 무궁하시도다~

 

그 후 날개달린 천사 한 명이 내게로 날아와 숯불화저(숯불로 달군 부젓가락)같은 것을 내 입에 대는 것이었다.

순간 그것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성경에 있는대로 말하리라 생각했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사야 6:6-7

 

그런데 천사가 말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다르게 말씀하셨다.

“네 입에 권세가 임하리라.” 아마도 숯불화저가 다양한 기능으로 쓰이는가 보았다.

그 선물을 받고 나니 지옥에서 아파하던 내 기분이 다시 회복되어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도 기뻐하심이 역력했다.

예수님께서 나를 이끄시며 말씀하셨다.

“너와 나의 집으로 가자.”

「나의 집」이라고 안 하시고 「너와 나의 집」이라 말씀하시다니..! 예수님과 함께 사는 집이라니 너무 기뻤다.

다시 찾아간 집을 보니 더더욱 기쁨이 넘쳤다.집이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이 기쁨을..이 감격을..우째 이런 일이..며칠 상관에..!

집 앞에는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고 푸르른 풀밭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전에는 못 보던 나무들도 여기저기 있었다.처음 보았을 때 황량하던 집 주변환경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집의 2층이 공사중이었다!놀라서 입이 안 다물어지는 나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순종으로 집이 이처럼 빨리 단장되는 것이란다.”

그저 감사해서, 너무 감사해서 감사하다는 말조차 나오지가 않았다.

하나님을 아는 믿음도 지식도 순종의 마음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 마음을 주시고는 또 칭찬하시고 이처럼 상급으로 쌓아주시는 하나님!

 

집안은 더욱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던 벽에 드디어 보석으로 집안 곳곳에 드문드문 장식이 되어 있었고 붉은 카펫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소파도 더 화려한 걸로 바뀌고 샹들리에 같은 등도 천장에 붙어 있었다.

화려한 침대로 나는 달려가서 폴짝 뛰어 올랐다, 너무 좋아서.그리고는 이리저리로 뒹굴었다.

예수님께서 웃으시며 가까이 오셔서 내 곁에 함께 누우셨다.

 “좋으니? 기쁘니?”

나는 너무 좋아서 말도 못하고 예수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예수님께서 팔을 괴고 모로 누우셔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는 것처럼 동시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집에 함께 있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너는 그걸 알아주니 내가 기쁘단다." 그러시더니 일어나시면서 말씀하셨다.

“자, 이제 그만 내려가야 한다.”

예수님을 꼭 끌어안은 채 도리질을 치며 내가 말했다.

“예수님! 나 안 내려가고 여기 천국에서 살고 싶어요!” “아니다.. 네가 가서 할 일이 있다.

네가 본 것을 책으로 내고.. 내 백성들에게 알려야지, 내가 온다고.. 응? 어서어~.”

예수님께서 나를 달래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막무가내로 안간다고 칭얼댔다.

“그럼 좀만 더 있다가 갈께요..네?”

몸까지 틀어가며 졸라대니깐 예수님께서 하는 수 없이 “그래 그럼.. 조금만 더 있다가..” 하시며 허락하셨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나를 소파로 이끄셨다.예수님은 3인용 소파에, 나는 2인용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에 과일이 바구니에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청포도같이 생긴 과일을 예수님께서 한 알 따서 내 입에 넣어주셨다.입으로 받아 먹고 나도 예수님께 한 알 따서 드렸다.예수님께서 웃으시며 손으로 받아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예수님께 석류 비슷하게 생긴 과일을 드렸더니 그것도 기쁘게 받으시며 웃으셨다.

나는 몸이 냉한 체질이라 찬 음식인 과일을 싫어했다.

그래서 전혀 과일을 먹지 않았었는데 천국에서는 내가 과일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는 체질을 과일체질로 바뀌고 몸도 따뜻해지게 해주셨다.

뿐 아니라 육류만 먹고 야채는 전혀 먹지 않던 체질도 완전히 바꾸어 주셨다.

수십년 된 체질조차 주님은 한 순간에 바꾸시는 것이다.

 

예수님과 나, 둘이 마주 보고 웃으면서 과일을 먹다가 집 바깥으로 나왔다.

예수님과 정신없이 소리내어 웃으면서 뛰어 놀았다.

숨바꼭질하며 내가 숨으면 예수님께서 찾아내고 하면서 놀았는데 나는 너무 기뻐서 손뼉을 아주 많이 쳤다.

 

천국에서 기쁘면 손뼉을 치는 일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지상에서도 무슨 기쁜 일이나 감사할 일에도 두 손을 높이 들고 감사의 박수, 찬양의 박수를 치며 주님께 영광돌리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렇게 주님께 영광돌리는 일을 주님은 무척 기뻐하신다.

그러면서 영광돌리는 두 손에 기름부음이 임하는 것을 자주 체험케 된다.

주님처럼 감사를 못받으시는 분이 어디 계실까!

눈에 보이는 사람이 내게 한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크고 많은 일에 대해 너무나 감사가 적은 우리들이다. 아니, 어쩌다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일에 대해 오히려 감사는 커녕 불평하기 일쑤인 우리들... 그 일을 분노하시는 것보다는 슬퍼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는 기회있을 때마다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마음껏 올려드린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시편 47:1

 

내가 천국에서 느끼는 감정대로 지상에 있던 내 육체는 반응하고 있었다.

내가 웃으면 내 육체도 웃고, 내가 울면 울고 손뼉치면 손뼉치고 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즐겁게 놀다가 문득 고개돌려 옆을 보니 세마포를 입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해서 가고 있었다.

“저 사람들 어디 가는 거예요? “예배드리러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고는 나를 그리로 데려가셨다.

아까 그 하얀 성전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천사 두 명이 문 앞 양쪽에 문지기처럼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미소로 반기고 있었다.

나는 건물 안에 들어가 이층 뒤쪽 위에서 내려다 보듯이 자리해 있었다.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사람들이 보좌를 향하여 빼꼭히 서서 일제히 웅장한 목소리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성삼위 일체 우리 주로다~

찬송가 9장이었다. 성전 가득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찬양이었다.

하늘 성도들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아름답고 장대한 광경을 보는 것을 끝으로 나는 다시 큰 숨을 쉬며 지상의 육체로 돌아와 있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십 대에 내게 있어서 천국은 그다지 흥미로운 곳이 아니었다.아니 오히려 지겹고 고리타분한 곳이라 여겼다.일주일에 한번 교회가는 것도 힘든데 그것도 맨날 아니 영원히 예배를 드리다니..!

천국은 그처럼 내겐 너무 재미없는 곳이었다.그래서 약은 생각을 나름 했었다.

‘지옥가기는 싫으니 세상에서 실컷 놀다가 이따이따 요담에 늙어서 예수믿고 천국가야지..’

이렇게 스스로 인생의 플랜을 짜놓기도 했었다..ㅋ

누군가가 나를 교회로 데려갈까봐 마냥 피해다녔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이전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교회와 천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래서 자꾸만 점점 더 멀리 도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기의 반을 살고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

주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사귀면 사귈수록 매력이 넘치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 매력에 빠져 하늘성도들도 지겨움없이 저렇게 영원히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시편 90:14

 

지존자여 십련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편 92:1

 

인간의 매력에는 한계가 있다.사람을 오래 사귀면 사람 냄새가 난다.그런데 주님의 매력은 한도 끝도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향기가 물씬댄다.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능력인 것이다.

그 능력이 바로 주님과 사귀면 사귈수록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쉬임없이 흘러나옴으로써 영원히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37-38

 

주님의 방문과 대화/ 2007년 1월 25일 밤

 

마지막 때에 관하여

 

집안은 최근 들어 썰렁하다.

주님께서 자주 나를 뜨거움 속에 두시므로 아예 히터를 끈 것이다.그리고 전기매트도 너무 더워서 꺼 둔 상태이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다 자려고 침대에 올라 책을 읽고 있었는데 시트가 너무 따뜻했다.

혹시 매트를 켜뒀었나 싶어 확인해보니 꺼진 상태였다.그런데 점점 몸이 뜨거워 오는 것이었다.

너무 더워서이불을 모두 걷어치웠다.그리고는 베개를 베고 모로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는데 갑자기 성령님께서 전기충격처럼 내 몸을 강타했다.

몸이 실제로 크게 튕겨졌다.계속해서 강한 진동과 충격이 막 오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덮고 똑바로 누웠다.주님께서 오시는 것임을 이제는 훈련되어져서 알게 된 것이다.

몇 번의 진동과 더불어 내 몸이 서서히 경직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두 손은 앞으로 나란히 하는 것처럼 구부린 채 앞을 향했다가 가지런히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두 번째 데려가실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 침대 머리맡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뺨을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주님, 저도 주님을 사랑해요. 사랑하는 거 아시죠?”

“그래 나도 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왔잖니.” “오늘도 우리 천국가나요?”

 

빙그레 웃으며 내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께서 미소지으시며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 오늘은 너랑 이렇게 대화하고 싶구나.”

그것이 마지막 때에 관한 일임이 저절로 깨달아졌다.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인가요?” “그렇다. 나는 너와 마지막 때에 관한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너는 내 말을 잘 기억했다가 사람들에게 내가 알리라고 할 때 알려야 한다.”

“주님, 마지막 때의 징조는 무엇인가요?” “네게 이미 말했다시피 큰 기근과 징조가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미워하며 반목하는 일이 있을 것이며 돈을 사랑하기를 나를 사랑함보다 더할 것이다.”

“음.. 그거는 성경에 나와 있고 주님이 저번 날 말씀하셔서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묻는 것은.. 휴거 직전에 있을 징조가 뭔지 궁금해요.”

"내가 전에 네게 보여준 환상이 기억나느냐? 그것이 마지막이 왔다는 징조이다."

 

지난 2006년 12월 경, 예수님께서 내게 휴거되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신 적이 있다.

기도하던 중 갑자기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러더니 너무 아름다운 새하얀 뭉게구름이 하늘 위로 한 점 보였다.

잠시 후 땅에 있는 사람들이 실루엣 모양으로 조그맣게 보였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동시에 구름으로 슝~하면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처음에는 의아해하다가 즉시 ‘아, 휴거다!’라는 생각에 놀람과 기쁨과 감격으로 그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을 보여주신 직후 주님께서 받아적으라 하셔서 받아적어둔 글이 있다.

아래 글은 약 30초 동안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적어내려 간 내용이다.

 

********** ********

 

대환난이 일어나기 전 큰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라 천지가 어둡겠으며 나를 찾던 자들이 나를 배반하리라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탐하여 그 정도가 극에 달하리라 너는 미혹되지 말며 깨어기도하기를 쉬지 말라

나의 말씀에 착심하고 지켜 행하되 무엇보다 사랑을 행하라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느니라

사랑 앞에 그 어떤 마귀 사탄도 이겨내지 못하고 물러가리라.

내가 올 때에 깨어 기도한 종들은 나의 때를 미리 알고 준비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한 곳에 모으리라.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라.홀로 서 있는 자는 넘어질진저. 두려워 떨며 기도에 힘쓰라.

내가 너희를 도우리라.이전같지 않은 큰 능력과 믿음을 주어 내가 도우리라.

(여기까지 쓰고 나는 너무 숨이 가빠서 잠시 멈추었다. 잠시 후 내가 글로 물었다.-기록자 주)

주님 휴거는 언제 있을까요?

(그 부분은 대답지 않으시고 이렇게 적으셨다.)

환난을 별로 맛보지 않고 나의 택한 종들은 들어 올리우리라.

 

****** ******

 

주님께서 위의 글을 받아적으라고 하실 때 손으로는 글을 쓰면서 눈으로는 지식이 임했다.

그 3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어쩌면 그렇게 많은 깨달음을 주시는지 순전히 주님의 능력일 뿐이다.

 

대환난이란 아는 바대로 7년대환난을 의미한다.그 대환난이 일어나기 전 큰 기근과 지진이 있다고 하셨다.

천재지변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현재 지엽적으로 군데군데 일어나고 있지만 그 시기에는 지구 전반에 걸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남을 의미한다.천지가 어둡다는 것은 영적 암흑시기가 대환난 전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지금 폭포수처럼 내려지고 있는 성령의 늦은 비 역사가 끝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 성령의 기름을 내 영혼에 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비축해 두어야 한다.

“나를 찾던 자들이 나를 배반하리라”

이 말씀은 영적 암흑시기가 되면 여태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던 자들이 주님을 떠나 세상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영적 암흑시기에는 동성애가 더더욱 판을 치게 되는데 주님은 미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시면서 깨어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또한 깨어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면 이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도를 하게 하실 때에는 이미 승리가 예비되어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기도하라 하시면 순종하여 기도하면 되는 것이다.

영적 암흑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가지, 말씀과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므로 사랑이신 주님을 묵상하고 사랑으로 행하고 나의 행실에 사랑이 있나 없나를 살펴 오직 사랑으로 매사를 행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이 무기이므로 말씀을 많이 읽어두어야 한다.

주님이 오실 때에 깨어 기도한 종들은 주님이 오실 때를 각자에게 알려 주신다고 하셨다.

그 날과 그 때는 물론 모른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르실 이들에게는 재림 직전에 미리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이것은 깨어 기도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본인이 죽을 날을 대략적으로 미리 알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에 비교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베드로도 그러했고 바울도 그러했던 것처럼.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베드로후서 1:14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디모데후서 4:6

 

또한 주님께서는 주님 자녀들을 한 곳에 모으리라고 말씀하셨다.이것이 종말론자들이 말하는 도피성이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주님께서는 한 마디의 말씀으로 여러 의미를 부여하실 수 있는 분이시므로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주신 이해로는 사악한 세상 속에서 주님 자녀들이 서로 연합하여 연계된 사역을 함으로써 서로 격려하며 중보하여 힘을 합하도록 하시겠다는 의미로 본다.

실제로 사역을 하면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주님의 신부들 혹은 준비된 일군들을 만나게 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감으로써 큰 위력을 발휘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6

 

그래서 주님은 히브리서에 모이기에 힘쓰라고 하신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그때에 홀로 신앙생활한다고 자만하고 있다가는 큰코 다친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였던 세상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악하고 더더욱 음란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 조차 힘을 합하여 주님 자녀들을 지옥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데 홀로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워 떨며 나는 구원해 주시기를 힘써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염려할 것이 없음은 주님께서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때에는 이전보다 훨씬 큰 능력과 믿음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환난을 별로 맛보지 않고 들려 올리운다는 것은, 대환난 전에 는 영적 암흑시기에 있을 재난을 겪고 대환난 전에 들려 올리신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이 부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줄 안다.

들려올리울 시기에 관하여는 각자의 믿음대로 받으시기 바란다.

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때건 주님께서 부르실 때 내가 들려 올리울 준비가 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임을 깨우쳐 주셨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모든 말씀들이 결국 성경에 쓰여져 있는 말씀들이다.

다시 말해서 수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오신 말씀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굳게 서야 한다고 주님께서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주님께서 또 한 장면을 보여주셨다.

흰 천을 머리에 덮고 테를 두른 키가 좀 큰 아랍사람과 양복을 입은 중년보다 조금 더 나이들어 보이는 키가 작달막한 남자가 서로 손을 잡고는 환한 표정으로 잡은 양손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처럼 나란히 단에 서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두 국가가 서로 정치적 동맹을 맺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스치듯 지나가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내게 그 장면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것을 깨닫게 해주신 예수님께서 또 한 장면을 보여 주셨다.

내 오른 편으로 군모를 쓰고 있는 군인의 옆모습이 보였다.순간적으로 중국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하고 있었다.왼편으로도 하나의 장면이 보였다.군대가 서로 정렬하여 포를 쏘고 있었다.

미사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양쪽이 대치하여 치열하게 전투중이었다.

최근에 주님께서 중국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이 있다.

중국은 이스라엘 선교를 위하여 쓰임과 동시에 사단의 도구로도 쓰인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크리스챤들은 이스라엘을 선교하는 영적전쟁을 위의 환상처럼 치루게 되고 반면 정부차원에서는 이스라엘과 정치적 대적관계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위의 환상을 처음 보았을 때 실은 속으로 좀 의아스러웠다.

‘지금 시대에 일렬로 나란히 서서 총싸움을 하고 있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영적전투를 나타내는 모습이라는 주님 말씀에 이제야 이해되는 것이다.

그 장면을 다 보고나니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본 그대로 마지막 때에, 휴거 직전에 중국과 아랍 에미리트의 연합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이스라엘과 전투하리라. 그것이 마지막 때의 징조이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되물었다. “주님, 아랍 에미리트가 뭐예요?”

“아랍 에미리트란 아랍 소국가들이 자국보호책으로 서로 연합한 단체국가를 말한다.”

 

나는 깨어난 후 인터넷에서 그것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너무 놀랍기만 했다.

다음은 아랍에미리트에 관해 인터넷 「미전도종족 기도정보」에서 검색한 내용이다. 

 

아랍에미리트 (United Arab Emirates)


아랍에미리트 연합은 7개의 왕국 또는 에미르 관할국의 연합으로 되어있으며 페르시아만 연안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해있다. 이 나라는 석유자원에 의존함으로써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단 25년만에 가난에서 번영으로 이끌어주었다.
아랍에미리트는 과거 영국의 보호를 받던 7개의 별개의 군주국이었지만, 1971년에 연합국가로 통일되었다.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이지만, 다른 소수의 종교에도 신앙의 자유는 있다. 미전도종족인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도시의 교육받은 자나 시골의 문맹자나 상관없이 모두 복음에 거의 접촉해본 적이 없다.

 

휴거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휴거되리라..“우리 가족은요?” “너희 가족은 걱정마라. 내가 사랑하는 자들은 단 한 영혼도 잃지 않고 모두 휴거되리라.”

“아버지는요?” “네 아버지가 휴거되리라.” 살아서든 죽어서든 나와 아버지가 휴거될 것이라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8

 

그리고는 연이어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는 이제 나를 믿기 시작했다.

조금의 연단을 더 받아 믿음을 굳게 하여 휴거의 영광을 주려 한다.”

당시 예수님을 영접한지 몇 달 되지 않은 81세의 아버지셨다.

그대로 데려가시면 상급이 너무 없다는 주님 말씀이셨다.

그러므로 상급을 더 쌓게 하셔서 영원히 아름다운 집에서 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배려셨다.

우리를 이 땅에 두시는 이유는 상급을 쌓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본향은 저 아름다운 천국이다. 이 험한 세상에 자식을 오래 살도록 내어버려 두실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식과 떨어져 살며 기뻐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더우가 그 자식이 살고 있는 곳이 척박한 땅임에야!

그럼에도 이 땅에 여전히 우리를 두시는 이유는 상급을 쌓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는 육신의 아버지의 천국집이 날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가고 있음을 믿음으로 본다.

영육간에 강건함을 주시고 천국을 뜨겁게 사모할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올려드린다.

 

내 질문에 답하신 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가족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네게 붙이는 영혼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라.

내가 그것을 기뻐하노라.” “네..알았어요 주님.” 갑자기 겸손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이어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왜 제게는 다른 이들이 본 것같은 천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으시나요?”

예수님께서 소리없이 웃으시고는 다시 내 뺨을 어루만지시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쉬웠나 보구나. 각자에게 보여지도록 허락된 부분이 다르단다.

다른 이가 본 것은 천국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네가 본 것도 극히 일부분이다. 천국은 무한광대하며 무궁무진하다.

네가 나중에 오면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으리라.

다만 지금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허락된 것만 보여준 것이다.”

 

“주님, 왜 저는 천국간증책을 보면 기쁜 것이 아니라 슬픈 마음이 들까요? 기쁘고 싶은데...”

“너에게 내 마음이 전달되어서이다...

나는 내 백성이 천국에 올 때까지 그 마음을 여전히 지닌 채 있을 것이다.

네가 책을 내어 이 내 아픈 마음을 전달하게 될 것이다.”

 

슬픈 음성으로 답하신 예수님께서 여전히 저의 뺨을 쓰다듬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뺨을 쓰다듬으시면 내 마음에 깊은 평안이 임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셨다.

“이제 가야겠다. 네가 피곤하다.이제 푹 쉬거라.”

그러시고는 나를 한 번 안아주고 이마에 입 맞추고 가셨다.

경직되어 있던 내 몸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후 깊은 단잠에 빠졌다.

 

네 번째 데려가심/ 2007년 1월 26일 낮

 

박물관가룟 유다ㆍ외할머니

 

이상하게 며칠 전에 선물받은 천국에 관한 책을 읽고 있으면 뜨거움이 자주 오는 것이었다.

아까도 그랬다.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이 몸에 진동이 오는 것이다.

이러실려고 주님께서 나에게 이 책을 주셨는가 싶을 정도였다.

 

책상에서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몸에 진동이 오는지라 다시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아까 책상에서처럼 진동이 일지는 않았고 대신 방언기도가 나왔다.

누운 채 기도드리는데 진동이 또 다시 오기 시작했다.

누워서 기도드리는 것이 죄송스럽게 느껴져서 일어나 기도하려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자 몸이 거의 뜨는 것처럼 진동이 오고 있었다. 침대에 걸터 앉았다.

온 몸이 다리까지 뻗쳐 진동이 거침없이 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이처럼 진동이 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후에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죄성을 지닌 육체 가운데 있는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동을 통해 성령으로 온전히 사로잡히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후로는 점점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게 되면서 차츰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진동하지 않고도, 굳이 눈을 감지 않고도 천국을 쉽게 데려가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에도 그럴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실 때 내 손아귀 가득 세상의 것을 쥐고 있다면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육체를 지니고 사는 동안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아야 주님이 우리를 쉽게 데려가실 수 있다.

그것은 외적인 환경이나 물질 뿐만 아니라 나의 내면적인 것 즉, 이기심과 아집, 자기애와 고집이나 시기질투 등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내면의 마음들이다.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다루어져 갈 때 주님은 우리를 기쁘다 하시며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 주님의 음성을 더욱 자주 들려주실 것이다. 진동이 오기 시작하더니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하는 주님,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세 번 화답했다.예수님께서 침대 머리맡에 서 계셨다.

예수님께서 내 이마에 손을 얹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내 딸아...”

예수님께서 이마에 손을 얹으니 진동이 점점 가라앉았다.

그러면서 어느새 내 영혼을 예수님께서 만지고 계심이 느껴졌다.

예수님과 내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예수님 손을 잡고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왼팔에 올리시더니 안고 걸어가셨다.

나는 예수님 목을 끌어안고 머리를 예수님께 파묻고 좋아하며 말했다.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께서 말없이 나를 안고 등을 쓸어주셨다. 그리고는 한 지점에 앉아 나를 예수님의 왼쪽 무릎에 앉히시고 안고 계셨다. 그런 상태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등을 토닥이셨다.

나는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울음이 나왔다. 예수님께 안겨 소리내어 울며 눈물을 흘렸다.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예수님은 사랑한다는 말씀을 참 많이 하신다.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사랑한다는 말씀을 아주 많이 하신 후로 내 아픈 상처들이 모두 치유받은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먹고 산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산다.

부부는 배우자의 사랑을 먹고 산다.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이처럼 사랑의 고백을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처가 아물게 되는 것이다.

굳이 표현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속으로 품고만 있지 않으시고 내가 알 수 있도록 말씀하셨으므로 표현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는 신이 아니므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표현되지 못한 사랑 속에 많이 아파하며 신음하고 상처투성이로 살아온 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를 아시고 “사랑한다 사랑한다”라고 무수히 말씀해주시면서 온전히 치유해주신 것이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이전처럼 사랑한다는 말씀을 자주 안 하신다. 이제는 그 말씀을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처가 다 나았으므로 다른 이들의 마음도 오해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는데 그곳이 지옥임을 알 수 있었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또 거기 가야 되요?” “네가 감당할 수 있으리라. 네가 본 것을 알려야 하느니라.”

“예수님,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성령님께서 내 입에 주시는 내 영혼의 고백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런 고백이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내 고백을 듣더니 기뻐하셨다.

“내가 너를 기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믿음이다. 그래서 내가 너를 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이런 고백을 하도록 인도하시고는 또 이처럼 칭찬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안은 채 일어서셨다.

“자, 이제 나와 함께 가자.”

그리고는 함께 하늘을 날으셨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듯 하더니 하늘 한 구멍, 작은 구멍 같은 곳으로 쏙 들어가셨다.

 

이 작은 구멍이 「열린 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에 뚫린 작은 구멍이 열린 문인가 보다.

예전에도 나를 진동 가운데 쏙 들어가게 하셨던 곳이 이런 작은 구멍이었다.

뿐 아니라 열린 문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어느 곳이든지 장소를 바꾸어 열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4:1

 

천국문에 도착한 예수님과 내 앞에 보인 이는 의외로 아브라함이었다.

그가 서서 우리를 반겨 맞았다.

예수님 영화에 나오는 예수님 복장같은 흰 옷을 입은 아브라함이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오느라고 수고했다.”

나 역시 반가움에 그의 왼 팔을 내 팔로 감싸안고 기대며 안겼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그간 세상에서 겪은 일을 다 안단다. 믿음으로 이겨낸 것을 내가 기뻐한다.”

천국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전지해진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보는 순간 나에 관한 통찰이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당에서 사역하실 때 그러하셨고 또한 성령충만한 분들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천국에 있는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으로 지배받는 분들이므로 더더욱 그러한 것이다.

여전히 그에게 안긴 채 내가 말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기를 바래요.

저에게 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실 수 있나요?” “그럼 줄 수 있고 말고.

너는 주님을 전폭적으로 믿었다. 주님은 그처럼 전폭적으로 믿는 자를 기뻐하신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즐겨 말하지.

그러나 정작 이삭을 드리는 자는 없다. 주님은 그들이 내려놓기를 원하신다.그러면 주님이 더욱 복을 주실 수 있을테니 말이다.특히 부모들이 자녀를 하나님 위에 두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그것을 슬퍼하신다.

그래서 그처럼 내려놓기를 원하며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주님은 그런 믿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주시라고 내가 주님께 부탁드리겠다.”

너무 쉽고 좋은 아브라함 할아버지였다.

 

예수님과 내가 여전히 손을 맞잡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눈앞에 늘 보던 하얗고 큰 성전이 보였다.

우리는 크고 흰 문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크고 화려한 성전 오른 편으로 있는 큰방으로 들어갔다.

천사가 미소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가 나에게 가운들을 가리키며 무슨 옷을 입을지 묻는 듯이 보였다.

예수님처럼 하얀 옷이 입고 싶었다.

“흰 걸로 입을래요.”

천사가 미소띈 얼굴로 나에게 흰 가운을 입혀 주고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예수님도 화려한 면류관과 빛나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를 보고 계셨다.

그 분을 향한 무한한 경외심이 들면서 나는 한 쪽 무릎을 꿇고 경배드렸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일으키시고 다시 그 방을 나와 큰 성전으로 가셨다.

어느 새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 계셨고 나는 성전 중앙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언제 있었는지 예전에 섰던 자리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가운을 입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고 무리져 서 있었다. 그들과 나는 일제히 한 목소리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 유월절 어린 양 예수께서 모든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셨도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그만하라는 것처럼 손을 드시니 그들의 찬양이 멈추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내 딸을 통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고자 한다. 너희는 내 딸을 위하여 기도할지어다.”

그들이 고개숙여 “아멘..!” 하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이런 벅찬 감격이! 나도 감사함에 “아멘..아멘...!”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다 함께 찬양하기 시작했다.

 

♬ 주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이 영원 영원 무궁하시도다~

 

예수님께서 내게로 다가오셔서 한 곳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어딘데요?” 그냥 가면 되지 왠 호기심이 이렇게 많은 건지..ㅎㅎ

주님은 어떤 해프닝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데 이 일도 그래서 허락된 해프닝이다.

주님에 대한 지식과 신뢰감이 적은 자들일수록 주님에 대해 의문도 많고 반문도 많은 것이다.

반면 진정으로 그 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깊이 아는 분들일수록 주님을 향한 질문이 적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요한계시록 14:4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셨다.

“새 예루살렘이다.  네가 그것을 보고 알려야 하리라.” “아, 네에...”

말로만 듣던 새 예루살렘을 보게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예수님과 함께 다시 하늘을 날았다.

한껏 부풀은 마음과 더불어 하늘을 나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었다. 좀 있어서 예전에 잠시 보았던 그 화려한 도성이 보였다. 예전에 내가 보았던 곳이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묻기 전에는 일일이 다 말씀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당시에 그곳을 보면서도 어딘지 몰랐던 것이다.

그 상공을 몇 바퀴 돌다가 성 안의 한 지점에 도착했다.

예수님과 내가 손을 맞잡은 채 마주 바라다 보는 곳에 성같은 큰 건물이 있었다.

그곳은 퍽이나 크고 웅장했는데 입구까지 계단이 높이 놓여져 있었다.

“여기가 어딘가요?”(또 물어보네..ㅎㅎ) “박물관이다.”

그 계단을 예수님과 내가 함께 손잡고 걸어 올라갔다. 내부에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주로 발명품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디슨의 발명품.. 내 머리 속에 에드신이 떠올랐다.

그가 발명했다는 전기도 있었는데 전기가 전신주 같은 코드에 연결이 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전화, 자동차, 배, 비행기 등등... 마치 골동품을 보고 있는 듯 신기했다.

이 부분에 대해 작업만 하려고 하면 자꾸만 내가 나도 모르게 인터넷에서 [전기]에 관하여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세 번씩이나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이름이 나로서는 처음 알게된 생소한 이름 「니콜라 테슬라」이다.

주님은 내게 니콜라 테슬라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잇는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려주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교류전기는 에디슨이 아닌 니콜라 테슬라의 발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일러주시고 싶으셨던 것이 무엇인지 알만하다.

세상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 실제의 진실과는 다른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시는 동안 바리새인들로부터 귀신이 들렸다는 엄청난 모함과 비방을 들으셨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태복음 12:24

 

예수님 뿐 아니라 현재 주님을 섬기는 많은 이들이 터무니없는 모함과 비방을 듣고 아픔을 겪고 있다.

그것은 주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로부터인데, 그들이 경건의 능력이 있는 자들을 향하여 주로 하는 말이 귀신들렸다, 이단이다 라고 하는 말들이다. 진실로 경건의 능력이 있는 이들은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어찌 감히 함부로 판단하며 근거없는 말로 하나님의 피조물을 비방할 수 있으랴!

경건의 능력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행치 않는 것이다. 에디슨의 전기라고 알고 있던 것을 주님께서 니콜라 테슬라의 전기라고 드러내심 같이, 모든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0:26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가 내가 그들에게 이런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지혜를 주어 만든 것들이다.

나는 그들이 나의 지혜로 이것들을 만들고 유익하게 이용하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쁘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주님의 창조물이라는 말씀을 듣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주님, 저는 바퀴벌레랑 쥐를 싫어하는데 왜 그런 걸 만드셨나요?”

예수님께서 고개를 젖히고 소리내어 웃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웃으시니 물어본 나도 웃음이 나와 둘이 소리내어 한참 웃었다.

천국은 이처럼 웃음이 전염되는 곳이다.

그래서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서 성령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웃기 시작하면 그 웃음이 번져나가는 것이다.

한참 웃은 후 예수님께서 여전히 미소를 머금으신 채 내 머리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생각은 네 생각보다 높단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9

 

“추한 것들을 보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피하게 되지. 그런 추한 모습을 볼 때 자신을 비추어 보며 추한 모습으로 살지 않게 해달라고 소망하며  살기를 바라는 뜻이 그 창조물 속에 내포되어 있단다.”

아하!  추한 것을 볼 때마다 내 추한 모습을 떠올리며 회개하고 근신하며 살라는 말씀...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참으로 깊디깊은 하나님의 경륜과 마음쓰심에 저절로 경외심이 마음 가득 차오르는 것이었다.

 

계단을 내려와 예수님과 함께 거리를 거닐었다.

거리의 모양은 마치 용암이 굳어서 물결모양을 이루는 것 같은 황금색 길이었다.

이전에 유럽여행 때 본 길과도 비슷한 길 위에 황금색 용암을 부어놓은 것 같았다.

“예수님! 마치 그림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기쁨으로 가득차서 예수님께 외쳤다. 예수님께서도 기뻐하는 나를 보시며 함께 기뻐하심이 느껴졌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게 되리라.” 계속 기뻐하며 빙빙 팔을 돌려가며 춤추듯 걸었다.

그런 내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나의 등 뒤에서 부모의 심정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마음깊이 기뻐하심이 여실히 느껴져왔다. 그러시더니 길 한 가운데에서 나를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내 딸아..네가 돌아와서 난 너무나 기쁘단다... 네가 이 모든 걸 누리게 되기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 말씀을 하실 때 나에게 부끄러움과 감사함이 밀려오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주님..너무 죄송해요..그동안 주님을 아프게 해 드려서...”

고개를 예수님 품에 파묻고 하염없이 울었다. 예수님께서 함께 우시며 말씀하셨다.

“아니다, 내가 허락한 연단이었느니라….

내 허락이 없이는 사망권세가 너를 몰아가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를 쓰고자 허락한 연단이었다.

그러나 네가 그동안 아파하며 괴로움 속에 몸부림칠 때 나도 너와 함께 아파하며 눈물 흘렸느니라….

이젠 되었다. 잘 견디었다. 나는 이제 너무 기쁘구나.”

예수님과 내가 한 몸처럼 서로 안고 울었다.

예수님은 하염없는 기쁨으로, 나는 기쁨과 죄송함이 어우러진 마음으로...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금 눈물난다. 주님의 우리를 향하신 그 깊고 그윽하신 사랑...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주님이 허락하신 연단」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떤 분은 이 부분에 대해 오해하시는 듯 하다.

주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세상적인 것을 겪게 하셨다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로마서 3:8

 

내 안에 있는 죄된 속성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끌려가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나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내가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지난 죄악을 용서해주시는 한편, 죄악된 삶을 유익된 삶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님의 크신 능력으로 화를 복으로 바꾸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주받을 인간이 축복받을 자녀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죄된 삶에 대하여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루게 되므로 할 수 있는대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한국의 인공폭포를 축소해둔 듯한 모양으로 된 작은 폭포가 있었다.

2 미터가 좀 안 되어 보이는 높이였는데 그 안에서 폭포수가 돌돌거리며 아래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흐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너무 놀라서 외쳐댔다.

“어머! 어떻게 물이 거꾸로 올라가죠? 신기하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이보다 더한 것도 네가 보리라.”

예수님께서 미소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후에 보여주실 것이 또 있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

“자, 이제 가자.” 하시더니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다시 날기 시작했다.

그곳을 지나 아래로 푸르른 풀밭 경치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마치 비행기에서 아래 지상을 내려다 보는 것 같았다.

어떤 담을 지나 내려선 지역이 천국 바깥임을 깨달았다.

또한 그곳이 지옥임을.

생각해보니 언제든지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천국을 먼저 보여주시고 지옥을 보여주셨다.

아마도 여린 내 마음에 두려움을 없애 주시려는 배려라고 느껴졌다.

내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네가 감당할 수 있으리라. 네가 이것을 전해야 하므로 내가 네게 보여주노라.”

그러시더니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셨다. “평안할지어다.”

숨을 들이마시자 곧 내 안에서 평안함과 담대함이 생기는 것이었다.

 

발 아래 불 구덩이에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손을 위로 치켜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눈물은 나지 않고 마음 가득 슬픔만 차 올랐다.

사람들이 불길 속을 이리 피했다 저리 피했다 하면서 계속 구원을 청하고 있었다.

예수님게서 그곳을 지나 한 문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시커먼 철문같이 생긴 입구 양쪽에 뾰족한 뿔달린 무섭게 생긴 마귀들이 보초처럼 지키고 있었다.

누구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들이 타락한 천사임을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뾰족한 창을 들고 무섭게 버티고 서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니 예수님께 경외심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원래는 앞을 향해 서 있었는데 예수님을 향해 둘이 마주 보는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10-11

 

타락한 존재인 마귀들도 예수님 앞에서는 그 이름과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마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께 바짝 붙어서 뒤따라갔다. 긴 복도가 시커먼 곳에 좁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양 옆에는 조그만 독방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창살틈으로 팔을 내밀고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예수님께서는 몹시 슬픈 표정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막 지나간 오른쪽 뒤편에 한 사람이 험악하고 시커먼 얼굴로 우리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저 사람은 누군가요?” 예수님께서 그럴 수 없이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많이 사랑한 내 종이니라. 내가 그를 사랑하여 아름답게 하였고 아름답게 찬양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내 이름 위에 자기 이름을 두고 나의 능력으로 자기 능력을 삼아 사모하는 숱한 여인들을 농락하였느니라. 그들과 간음하였으며 그들의 가정을 파괴하였다. 나는 가정을 파괴하는 자들을 미워한다.

나는 그를 돌이키려 애를 썼으나 그가 자기의 마음을 마귀에게 내어주고 사단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지금은 저처럼 회개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나서 곧 그에 관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 그의 외모는 출중했다. 그는 아름답게 찬양하며 사역하던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를 사모하는 많은 여인들이 두 손을 모으고 그를 우러러보면서 황홀해 했다.

그가 그녀들을 음란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과 그녀들을 여기저기에서 육체적으로 농락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님은 그를 회개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예수님께서 서글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들에게 준 자유의지를 존중하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어도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어찌할 수 없단다. 그게 내 아픔이란다.

나는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가 너무도 많은 영혼을 타락시키고 있음을 더 두고 볼 수 없어서 사망이 그를 사로잡아갈 때 내가 허락했단다….”

예수님의 아픔이 나에게까지 느껴져 와서 더 이상 질문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예수님의 뒤를 따라 걸었다.

긴 복도 끝 막다른 곳에 조그만 감방이 있었다.그 안에 있는 사람은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손을 내미고 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듯이 보이는 그곳을 나는 호기심에 들여다 보았다.

거기 한 사람이 문쪽으로 등을 보이고 구석 모서리에 고개를 파묻은 채 무릎을 꿇고 웅크리고 있었다.

두 손을 머리에 사 안고 끊임없이 오래도록 그 모습으로 있는 듯이 보였다.그는 예수님께서 오셨어도 일어서지조차 않았다.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는 내게 예수님께서 내 뒤편에 서신 채 말씀하셨다.

“가룟 유다이다.”

아!! 가룟 유다...!  예수님께서 역시 깊은 슬픔으로 말씀하셨다.

“그는 머리가 영리한 나의 사랑하는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나를 자신의 인간적인 계획에 이용하려 하였다.

나를 자신의 계획 속에 넣어 조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걸 다 알고 있었다.

그를 위하여 나는 기도했으나 그의 인간적인 생각이 너무 큰 고로 사단이 그 생각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후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그의 생명까지도 스스로 판결을 내리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자들을 미워하신다.”

그는 구더기와 같은 형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 속에 사로잡혀 끊임없는 번민으로 고문당하고 있는 것이다. 고민과 번민에 싸여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하루 이틀도 고통스러운 그 번민과 괴로움을 가룟 유다는 영원토록 싸안고 있어야 한다니...

그를 향한 하염없는 연민이 치솟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가룟유다에 대한 묵상을 하다가 이와 비슷한 생각이 들어 묵상노트에 내용을 적어두었던 기억이 났다. 내 속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가 너에게 그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내가 너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어 깨닫게 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17-19

 

나도 모르게 경외심이 가득차 올라 가룟유다의 감방 앞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안수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마음눈을 밝혔은즉 너는 말씀을 묵상하여 깨달은 바를 내 어린 양들에게 먹이고 나누어 주라.”

기독교 안에 스며들고 있는 인본주의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낳는 것을 몸서리치게 느낀 것이다.

특히 나는 아집이 강하던 인간이므로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나에게 그를 보게 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수님께 감사드렸다. “주님, 저를 구원해주시고 베푸신 은혜 무한 감사드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손을 보여주셨다. 손바닥 구멍에 하얗게 빛이 나고 있었다.

왜 여태 예수님과 있으면서 못 보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아는 것은, 주님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내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손바닥을 보니 발도 보고싶었다.그러나 발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았다.그러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나의 죄를 대속하신 주 예수님의 못자국난 손...!

내 영혼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다. 나는 큰소리로 찬양하며 “할렐루야”를 크게 여러 번 외쳤다.

그리고는 춤추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면서 그 감방문을 나왔다.

다시 아래로 불구덩이가 보였다. 잠시 내가 아는 누가 여기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아! 외할머니가 예수님을 모르고 돌아가셨지!’

외할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왼쪽 위편으로 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할머니가, 할머니가 나를 향해 애처롭고도 간절한 표정으로 손을 쳐들고 나를 부르고 계셨다..!

할머니..할머니..!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서 어리광을 부리며 놀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하시면서 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 채로 예수님께 기대어 끊임없이 소리내어 울었다.

예수님께서 왼팔로 내 어끼를 감사 안으신 채 슬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녀가 세상에서 선하게 산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나를 전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죽으면서 죽음의 사자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영혼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내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느니라.

누군가 그에게 복음을 전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좀 더 일찍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그랬더라면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련만…! 그래서 할머니도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사실 수 있었으련만…!

부모님께 드리는 가장 큰 효도는 바로 그 영혼이 천국가도록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한동안 할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렸다. 단 한 번도 가슴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 영이 육체를 떠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지금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모른다.

육체를 가졌기에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 예수님을 만나도록 부모님께 복음을 전해야 한다.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부모님의 영혼구원, 그것이 가장 큰 효도이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떠나 뒤돌아 내 어깨를 안고 가시는데도 나는 울며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모습을 좇아 나를 쳐다보며 애원의 눈초리를 보내고 계셨다.

나는 눈물를 멈추지 못하고 소리내어 울고 울고 울었다.

예수님께서 우는 나를 달래듯이 말씀하셨다. “네가 아는 사람이 지옥에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너의 집으로 가자.” 오늘은 「너의 집」이라고 말씀하셨다. 저번날에는 「나와 너의 집」이라고 하시더니.

순간 깨달은 바, 그때에는 예수님께서 내게 가르쳐주시고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장소가 옮겨져 천국 집으로 돌아왔다.에서 보니 이층 담이 저번보다 더 올라가 있었다.

한 층의 절반 정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할머니에겐 죄송한 노릇이지만 천국에 오면 지옥에서의 아픔이 금새 잊어지는 것이었다.

기뻐하는 나를 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순종을 내가 기뻐한다. 내가 하라는대로 하는 너로 인해 이 상급집이 이처럼 신속히 높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집을 「상급집」이라고 표현하셨다! 놀라서 바라보는 내게 예수님은 미소지으며 말씀하셨다.

“너의 새 집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느니라.

이 집은 내가 보너스로 네게 주는 상급의 집이며 나의 모든 자녀들에게 주는 상급의 집이다.”

어느새 지옥의 생각을 잊어버린 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저으기 안심하시는 것을 느꼈다.

“왜 전에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어요?” “너에게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을 주기 위해서였지.

그래야 네가 분발하여 더 열심히 일할 것이 아니냐?”

예수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재기발랄하심이 퍽이나 재미있게 느껴졌다.

집안에 들어가 소파에 저번 날처럼 앉았다. 예수님은 3인용, 나는 2인용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에 과일이 이쁜 바구니에 담겨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는 과일을 먹지 않는 체질이었음에도 천국에서는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아주 많이 먹는 것이었다.

먹으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많이 먹으며 화장실은 어떡하지?’

그런 나를 미소로 바라보시며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다.

“천국에서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기분나쁠 정도로 부르지 않단다. 늘 가득찬 기분좋은 포만감이 있을 뿐이지.”

내 속생각을 아시고 화장실은 갈 필요가 없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데 책이 없네?’ “예수님, 책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네가 책을 많이 읽고 쓰면 서재가 생긴단다. 지금 네겐 성경뿐이구나.”

침대 곁에 성경이 놓여 있었다. 침대로 달려가 성경을 안고 엎어지듯 침대로 누우며 밝게 외쳤다.

“성경 하나면 족해요!”예수님께서 내게로 다가오시며 웃으셨다.

내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저는 책을 언제 쓰게 되나요?”

“조만간 내가 너에게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고 이를 것이다.” “제목이랑 그런 것두요?” “그럼 당근(당연하지).”

헉! 예수님께서 「당근」이라는 표현을 쓰시다니! 「당근」이란 요즘 세대들이 사용하는 유행어인데 말이다.

예수님께서 짖궂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눈높이 차원에서 유머를 즐기는 내게 맞추어 예수님께서 대꾸하신 것이었다.너무 재미있어서 침대를 딩굴며 배를 잡고 웃었다.

예수님도 그런 나를 재미있어 하시며 내려다보시고 같이 깔깔대고 웃으셨다.

예수님의 웃음소리는 너무 맑고 아름답고 청명하다.

육체처럼 들을 수 있는 음성이 아니지만 내 영혼이 그것을 들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귀를 열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단어를 쓰셨다는 것에 대해 어떤 분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또 어떤 분들은 감히..라고 여기며 분개하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쓰셨다는 것을 몇몇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 분들도 긍정의 수긍을 하셨다.

그리고 나 역시 천국에 데려가시기 전에도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나의 눈높이로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려주신 적이 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시다.

철장권세를 가지고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지엄한 분이시기도 하시지만 그 자녀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기 원하시는 친구이기도 하신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5:15

 

“자, 이제 그만 가자꾸나.” 오늘은 더 있겠다고 조르지 않았다. 이렇게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 싶어서였다.

즉시 다시 내 침대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였고 예수님은 내 침대 머리맡에 서 계셨다.

예수님께서 내 이마에 안수하시고 이마와 양볼에 입 맞추신 후 사라지셨다.

그러면서 내 눈이 스르르 떠지며 몸이 부드러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다시 떠올라서였다.

나는 모로 누워 계속 흐느끼며 울다가 또 소리내어 울다가 하며 울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다시금 예수님의 강하고도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자..이제 그만 울거라..어서 일어나 기록해야지...!”

그러면서 저절로 울음이 멈추었고 나는 일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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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은지 일 년 후의 일이다.

 

나는 주님께 실낱같은 죄악까지 떠오르게 해달라고 회개의 영을 간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옥에 계신 할머니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성령님께서 지적하셨다.네가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음성을 들으면서 눈물로 펑펑 울며 회개했다.

나는 할머니가 지옥에 계신 것이 마음으로 안타깝기는 해도 그것이 나의 죄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가 실낱같은 죄악을 찾자마자 떠올려 주시는 것이다.

나는 또 의문이 들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어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저 내가 기독교계통 초등학교를 다닌 것 뿐인데?

그런데 주님께서 나의 죄에 해당한다고 제시하신 성경 본문이 있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로마서 1:21

 

믿음은 없었지만 학교에 가면 식사 기도도 하고 예배에 참석도 하고 해야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댁에 그렇게 자주 가서 뵈면서도 단 한 번도 교회 가시라고, 예수 믿으시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었다.

내가 성령충만 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주변에 교회 가라고, 예수 믿으라고 말 한 마디 하는 것이 상급이요, 안 하는 것은 죄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2

 

이것은 명령이다. 하면 좋고 안 하면 할 수 없고의 차원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나는 이것을 놓쳤으므로 할머니에 대해 통회자복해야 했다.이처럼 우리가 모르는 죄악을 우리가 품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하지 않은 죄, 특히 친족에게 전하지 않은 죄는 큰 죄악이다.

그 부분에 대해 회개해야 하고 그런 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어서 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혹시 믿지 않고 돌아가신 친척분이 계시다면, 그 분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회개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앞에 갔을 때 그 부분에 관해 반드시 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개하고 나니 할머니 생각을 할 때 마음은 아픈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났던 것이 내가 아닌 내 안의 성령님께서 나의 회개치 않은 탄식으로 인한 눈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섯 번째 데려가심/ 2007년 1월 29일 오전

 

부끄러운 구원ㆍ선악과ㆍ이단 경고

 

아침에 집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기도하다가 박수치다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온 몸에 맥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박수가 쳐지질 않았다.

힘을 다해 손을 들어봐도 손이 올라가지질 않는 것이었다. 입술조차 벌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왠지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예수님이 오실 때처럼 강한 진동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에 왠지 다니엘이 떠오르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다니엘 10:8-9

 

얼마 안 있어 예수님께서 오셨다. 늘 그러하듯이 침대 머리맡에 서셔서 미소로 내 이마에 안수하셨다.

나는 며칠 만에 만나는 예수님인지라, 뵙지 않은 며칠 동안 상사병처럼 그리워했던 터라 너무 기쁘고 감격하여 주님의 허리를 꼭 껴안았습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주님..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래..너의 그 마음을 알고 내가 왔잖니.”

예수님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자, 나와 함께 가자. 네게 보여줄 곳이 있다.”

나는 간만에 만난 예수님을 놓치고 싶지 않아 두 팔로 예수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다시금 말씀하셨다.

“자, 가자꾸나.” “주님, 천국도 지옥도 보고싶지 않아요. 전 이렇게 주님하고만 있고 싶어요.”

“그래..네 마음 안다. 하지만 어서 가서 보고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잖니? 자, 어서~.”

예수님께서 나를 재촉하셨고 천국으로 나를 올려 가셨다.

나의 행동들이 비디오테잎이 빨리 진행되듯이 착착 진행되었다.

흰 건물 문으로 들어가 오른쪽 큰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면류관을 썼다.오늘도 흰 옷을 입고 싶어서 흰 옷을 입었다.

예수님도 아름답고 빛나는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계셨다.

 

큰 성전으로 함께 나아가 예수님께서 나를 성전에 두시고 계단 위 보좌에 앉으셨다.

만조백관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고 무리져 있었다.

나는 항상 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중앙 왼편에 그들과 마주한 위치에 홀로 서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아직 내가 완전한 천국백성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내 딸을 위해서 기도해주어 고맙다.

내 딸이 연단을 받고 있고 계속 받을 것이나 너희의 기도로 잘 이길 것이다. 이후로도 계속 기도해 주기 바란다.”

모든 사람들이 한 쪽 무릎을 꿇고 경외심을 담아 “아멘!”하고 외쳤다. 나도 같은 모습으로 감사함을 아뢰고 있었다.

그들이 박수치며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합시다~” 찬양을 시작했고 모두 함께 박수치며 즐거워했다.

그들의 찬양이 끝남과 동시에 내가 춤추며 찬양하고 있었다.

두 팔을 브이자로 높이 쳐들고 한 발을 중심으로 한 발로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즐겁게 찬양했다.

 

♬ 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 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하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나 구주 위해 살리라 내 기쁨 한량 없으리~ 내 갈 길 인도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이후 깨어 찾아보니 찬송가 351장이었다.

원래는 좀 느린 곡으로 알고 있는데 천국에서는 내가 그 찬양을 빠른 템포로 춤추며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즐겁게 박수를 쳐 주었다. 예수님께서도 함께 즐거워하심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찬송가곡의 높은 음에 맞춰 찬양을 잘 못하고 춤도 디스코 외에는 못 춘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생전 안 춰본 춤을 너무 멋지게 추면서 높은 음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춤과 찬양을 보시고 박수치며 기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목청이나 춤 솜씨에 상관없이 우리가 주님앞에서 마음으로 영으로 찬양하고 춤추면 아름답게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주님 앞에 찬양 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 앞에 손을 들고 춤을 추나이다.

받으소서, 받으소서. 받으시고 기뻐하소서.

 

예수님께서 내게 추게 하셨던 그 춤은 이스라엘 춤이었다.

이후 예수 영화 가운데 가나 혼인잔치 장면에서 어떤 여자의 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천국에서 추었던 그 춤과 같은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소리내어 울었다.

내게 그것을 추게 하며 당신의 세상에서의 삶을 추억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천국에서 주님 앞에 춤추며 즐거워하던 시간이 다시 그러워서였다.

이후에도 주님은 몇 차례 내게 춤을 추게 하셨는데 그것 역시 그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통 이 세상을 향하여 계신 것이다.

마치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와 그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을 추억하며 그리워하듯 예수님도 세상을 향해 그러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루 속히 이 땅에 다시 오시고 싶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쁜 맘으로 단에서 내려오셔서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셨다.

보통은 이처럼 기쁘면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하늘을 날으셨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으셨다.

둘이 손을 잡고 황금길을 거닐었다. 전에 보던 길인지라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 그 길 끝에서 보았던 야트막한 언덕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앉으셨다.

“네게 보여줄 곳이 저 곳이니라.”

예수님 곁에 앉아 언덕 오른 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천국의 다른 집들과는 달리 좀 허름해 보이는 작고 나지막한 집들이 줄지어 무리져 있었다.

마치 재개발 지역단지에 있는 연립주택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곳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빛이 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컴컴하지도 않은, 흐릿한 날씨 속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천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 의아스럽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여지껏 내가 보아온 천국은 빛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들이었는데 그 곳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이 곳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곳이 네 엄마가 사는 곳이란다.” 헉..엄마가 저런 곳에...!

내가 본 나의 집과는 사뭇 달랐다. 놀라는 나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엄마는 죽기 직전에 나를 영접했다. 그러므로 저런 곳에 살게 된 것이다.

저 곳에 살게 되면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천국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영원토록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늘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영원히 지내게 되는 것이다.”

 

아..!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맘껏 주님을 찬양하며 활보하며 영원토록 밝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그것이 안타까와 오늘 나에게 이것을 보여주시는구나! 예수님의 그 마음이 내게 전달되어져 왔다.

“그럼 저는 저 곳을 방문할 수 있나요?” “물론 너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네가 가서 엄마를 방문하는 것은 가능하나 엄마가 너의 집이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는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은 네가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을 것이나 천국에 오게 되면 그런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천국에서는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넘어 더 아름다운 관계, 즉 성도의 관계로서 영원히 지내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 엄마를 제약하거나 제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빛이 있는 곳에는 오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대로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 천국에 이르게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되면서 몹시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주님을 외면했다는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에 영원히 스스로 말과 행동에 제약을 하고 행동 반경조차 스스로 제한하여 다니게 되는 것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신 엄마도 바로 그런 케이스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 예수님과 함께 엄마를 만났을 때에도 미소만 지을 뿐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때에도 예수님께서 엄마를 만나게 하려고 부르셔서 그 자리에 오셨던 것이다, 본인의 의지로 오신 것이 아니라.

그리고는 얼른 또 사라지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려 하셨다.

“자, 시간이 없다. 다른 곳을 가 보도록 하자.” “주님, 잠깐만요. 전 여기서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 좋아요.”

“여기서 이야기하지 말고 너희 집으로 가자. 그곳에 그네가 생겼느니라.”

나는 그네를 좋아하는데 그네가 생겼다는 말씀을 들으니 기뻤다. 상급집의 2층이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었다.

내 입이 나도 모르게 함박만해졌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시면 내가 기뻐할 것을 아시고 데려오신 것이다.

“순종하는 너를 나는 기뻐한다. 너의 순종으로 집이 빨리 완공되어 가고 있음을 나는 기뻐한다.”

기쁜 마음으로 실내로 들어가 보았더니 책장이 있었는데 책은 몇 권이 없었다. 성경책과 두 세 권의 책이 꽃혀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책을 좋아해서 내가 책장을 하나 가져다 놓았다.”

나는 기도하듯 손을 모으며 기쁨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다. 예수님께서 더 기쁜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 영혼이 구원될 때마다 내가 여기 책이 한 권씩 늘어나도록 해 주겠다.”

상 주시기 기뻐하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책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줄 아시고 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것이다.

 

상급집 앞 풀밭에 2인용 그네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하고 귀여운 그네였다.

내가 집 쪽 그네에 앉고 예수님은 시냇가쪽 그네에 앉으셨다.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님, 성경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기도하라고 되어 있고 또 깨어있으라고 되어 있는데 깨어있다는 것이 정확히 뭔가요?” “깨어있다는 것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기도로 나를 찾을 것이며 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자는 말씀을 읽음으로써 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할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여 찾는 자를 만나줄 것이며 나의 음성 듣기를 원하는 자에게 나의 음성을 들려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주님, 어느 집사님 질문인데요, 성령받은 자가 어떻게 지옥을 갈 수가 있냐고 물었어요.

한번 성령 받으면 지옥과 영원히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배웠다고….”

“그래서 내가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깨어 있음은 균형잡힌 신앙을 요구한다.

기도만 하게 되면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며 영적교만에 이른다. 또한 말씀에만 치중하게 되면 지적교만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양쪽을 골고루 함으로써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신앙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지적 교만에 빠지게 되면 이단에 속한 자가 되기 쉽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에 속한 자들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다.

성경말씀을 억지로 풀다가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니라.”

나는 그네에 앉아 왔다갔다 하면서 예수님께 얼굴을 향하고 다시 물었다.

“주님,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궁금한 게 있었어요.

왜 하나님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서 인간을 힘들게 하셨나요? 첨부터 안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예수님께서 왼 손은 그네를 잡고 오른 손으로 내 등을 어루만지시며 나를 바라보고 말씀하셨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바로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는 선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명하셨다, 생명나무의 과실만 먹으라고.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 원하신 목적이다.

그래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영생하며 함께 동거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생명과를 먹는 자는 신성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영생에 이를 것이며 선악과를 먹는 자는 인성이 충만하여 사람의 아들이 되어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다가 심판장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고 하나님의 미움을 받다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1-2

 

“선과 악을 함께 만드심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선을 더욱 선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언제나 선과 악을 함께 두신다. 그것이 공존의 이유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언제든 선을 취할 수도 악을 취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인격을 제공하시고 그들 스스로 선을 취하기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사단의 음성을 듣고 기꺼이 스스로 악을 취함으로써 저주를 받는 것이다.

잘 들어라, 생명과와 선악과는 에덴동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재 인간의 삶 속에 늘 함께 머문다.

성령충만한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리어 어떤 상황에 이를 때에 생명과를 취할 것이며 선악과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함으로 그 삶 속에 천국을 소유하고 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인성이 충만한 자는 마치 자석처럼 악령에 이끌리어 선악과 열매를 먹고 그의 삶 속에 육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사단과의 영적 간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자라도 육체를 지닌 이상 에덴동산의 하와처럼 언제든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 유혹에 빠져 저주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는 이유이다.

나는 어느 누구도 사단의 유혹에 빠져 영적 간음을 함으로써 나를 저버리는 자가 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사단은 생명과와 선악과를 만든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선악과 따먹기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짓게 만들고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며 급기야는 사망에 이르도록 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너는 이것을 잘 기억하였다가 다 기록하도록 해라.“

 

나는 어느새 그네에서 내려앉아 예수님의 무릎에 손을 얹고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되어 고개를 들고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주님, 전 참 잘 잊어먹어요. 외출하려고 차를 타려다가도 몇 번씩 집에 다시 들어오기 일쑤예요.

이 많은 것을 다 기억할까 걱정이예요. 기억력이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예수님께서 나를 내려다보시며 물으셨다.

“네 기억력이 좋아질 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우러러 고백을 드렸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께서 내 머리 위로 사뿐히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셨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여지껏 예수님께서 무엇을 주실 때 내게 믿냐고 물으신 적이 없었다.그냥 “받으라, 임할지어다” 하셨고 그 말씀대로 내게 임했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께 나의 소원을 아뢰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처럼 묻고 계신 것이다.

내가 알게 된 바, 주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으실 때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함께 듣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의 고백은 사단의 훼방과 송사를 물리치는 방패가 된다.

그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간구에 속히 응답케 하는 촉진제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누가복음 8:50

 

그런 후 예수님께서 그네에서 일어나셔서 말없이 나를 이끄셨다. 무언가를 보여주시려는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어디든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었으므로 이제는 어디 가시냐고 묻지않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나는 지옥에 이르렀다. 여전히 불구덩이 속에서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몇 번 보아 익숙해진 탓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눈물도 나지 않았다.마음에 슬픔만 고여 있었다.

그것이 전에 내가 지옥에 도착해서 두려워할 때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내게 평안과 담대함을 주신 이후 생긴 마음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불구덩이를 지나 예전 가룟유닥 있던 그 감옥으로 갔다.예수님께서 그 곳의 누군가를 보여주셨다.

감방 속에 있는 한 영혼이 해골이 되어 창살 밖으로 뼈만 앙상한 팔을 내밀고 간절히 구원을 청하고 있었다.

“그는 이단에 속한 자였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말씀을 왜곡되이 해석하며 말씀을 더하거나 감하는 자들이 그들의 지적교만으로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베드로 후서 1:20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6

 

예수님께서 저에게 새 집을 보여주시겠다며 다시 천국으로 이끄셨다.새 예루살렘 집 앞에 예수님과 내가 서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문 앞에 새 이름으로 된 문패가 달려 있었다.그 문패에는 천국말로 나의 새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읽을 수가 없었다.다만 나의 새 이름이라는 지식만 있을 뿐이었다.

예수님께서 일러 주셨다.

“그 천국말을 지금은 읽을 수 없으나 네가 이후 천국에 이를 때에는 읽을 수 있으리라.”

집안은 너무 화려했다.황홀하기 그지 없었다.상급집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게 화려했다.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집이었다.말하자면 새 집은 본 집이요, 상급집은 별장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예전에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도 그렇고 천국간증을 들을 때에도 그렇고 나는 보석에 대해 시큰둥했다.

돌 조각 같은 그것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알게 된 것은, 천국의 보석과 세상의 보석은 족히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다만 색깔도 그렇고 보석도 그렇고 세상에서 이해할 다른 표현이 없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 뿐이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아름다움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그 곳, 그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출입문으로 들어서니 바로 눈 앞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영화에서 본 것같은 휘어진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서니 곧바로 방들이 연달아 네 개가 있었다.

방들 앞으로 복도가 있고 난간이 있어서 아래층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본 것들을 그림 그려 설명해 보려고 했으니 포기했다.

내가 본 모습과 내가 그린 모습이 너무 차이가 나서 스스로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한 천국은 평면에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다.

왼쪽 첫째 방이 내 침실이었다.방의 왼편에 화려한 침대가 있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 쪽으로는 길다란 진열대가 있었다.

그 길다란 테이블 전체로 너무도 많은 보석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 진열대에서 보석을 하나 집으셨는데 진주목걸이 같았다. 그것은 내 목에 걸어주셨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내 목에 걸어주실 때 기쁨이 충만히 차 올랐다.

그리고 들어선 문 가장 안 쪽으로 바깥이 보이는 테라스가 있었다.테라스로 다가가 바깥을 내려다 보았다.

이태리식으로 보이는 둥근 반원형의 난간이었다.

말하자면 쿼바디스 영화에 네로 황제가 서서 군중에서 손을 흔들던 왕궁의 난간같은 곳 말이다.

테라스 바깥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다.푸르른 들판의 풀밭과 들판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보였다.

군데군데 화려한 싱글하우스(단독주택)들이 있었다.건물마다 3,4층 되어 보이는 집들이었다.

기쁨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내 곁으로 다가와 함께 바깥경치를 구경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신 것들을 보고 기뻐하는 내 모습으로 인해 마음 뿌듯해하고 계심이 느껴졌다.

 

“주님, 저의 풍부한 상상력이 이 글을 쓰게 한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청결한 마음이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천국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올 자가 없다.”

 

예수님께서 난간을 두손으로 짚으신 채 여전히 밖을 내다 보시며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마음이 좀 답답해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17

 

나는 갑자기 나도 모르게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저도 물고기 보여주실 수 있어요?”

이 질문을 하게 하신 분은 성령님이시다. 여태까지의 모든 대화를 인도하신 이도 성령님이시다.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의도적인 이끄심이다.

예수님께서 웃으시며 내 손을 잡고 물으셨다. “보고싶니? 가자.”

주님께 이끌리어 이른 곳은 강가였다.

오른 편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바베큐판 같은 것이 었고 나무로 만든 것 같은 식탁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강물에 손을 넣으시니 신기하게도 물고기가 금방 한 마리 예수님 손에 들려 올라왔다.

황금색의 납작한 생선이었는데 가재미처럼 생겼다.

“주님, 이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예수님께서 그 이름을 말씀하시는데 천국말로 뭐라뭐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게는 마치 옹알옹알 하시는 것처럼 들렸다.

“네?” “옹알옹알..” “네?? “옹알옹알...” “네에??”

나는 귀를 예수님께 더 바짝 대고 되묻고 되묻고 했다. 그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 고개를 젖히고 막 웃으셨다.

나의 알 수 없다는 표정이 우스우셨나 보다. 나도 마음이 즐거워지면서 같이 막 따라 웃었다.

나의 육체도 지상에서 함께 즐겁게 웃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랑스럽게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냥 「황금물고기」라고 하라. 이후 네가 천국에 오게 되면 그 이름을 일컬으리라.”

..내가 지금은 천국백성이 아니라 천국말을 모르는 거구나.. 그제야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다.

내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굳이 깊이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말씀이든 어떤 영적세계의 일이든 다만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믿음의 분량만큼만 알고 받아들이기.

나머지는 깨달음을 주실 때까지 그냥 넘어가기.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 12:3

 

새 집 앞에 있는 문패의 이름도 그렇고 황금물고기도 그렇고 모두가 계획가운데 보여주신 것들이었다.

보이지만 해석되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풀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이단에 빠질 것을 경고하며 현장학습으로 가르쳐주신 예수님!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글쎄 황송하게도 친히 물고기를 구워 주셨다. 나는 고개를 빼고 예수님께서 물고기 굽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불판에 불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물고기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것이었다.

오픈되어 있는 마이크로오븐(한국식 표현은 전자렌지)이랄지. 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정말이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잘 구워진 물고기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아 주셨다.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었다.

막 구웠으니 뜨거워야 할텐데 손으로 먹는데도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도 마주 앉아 쳐다보시다가 물고기를 조금 떼어 내 입에 넣어주셨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제자들을 먹이시던 일을 추억하며 이 일을 즐기신 것이리라.

스승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조반을 먹이시며 위로하시던 부활의 주님..!

제자들이 잡아온 생선을 가져오기 전에 이미 육지의 숯불에는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생선과 떡이 있었다.

그들이 아무 것도 잡지 못할 것을 아시고 미리 준비해두신 사랑의 주님...!

그 주님이 바로 나와 여러분의 주님이 되신다. 할렐루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요한복음 21:12-13

 

예수님께서 강에서 물을 떠서 내게 마시우시며 말씀하셨다. “마셔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란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그 단맛의 물을 맛있게 받아 마셨다. 실제로 지상에 있던 나의 육체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37-38

 

생각해보니 천국의 강의 물은 어떤 물이든 마시면 힘이 나고 기력이 회복되고 목마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특별한 연못만이 목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죄사함의 은총을 입는 물이다.

내가 물과 생선을 맛있게 먹은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이제 가자꾸나.”

지상의 침대로 돌아와 예수님께서 침대 곁에 서셔서 이마에 안수하셨다. “오늘 하루 기쁨과 평강이 임할지어다.”

그리고는 이마에 입맞추고 떠나가셨다.

스르르 눈이 떠지고 시계를 보니 아침 9시.

일어나 기록하고 치카치카 이를 닦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주님이 주신 기쁨과 평강으로...

 

 

여섯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3일 새벽

 

비판하는 자들

 

침대에 누워 있는데..잠이 설핏 들려고 한 것 같은데.. 아니 어쩌면 잠들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 때 사람들은 흔히 비몽사몽간이라고들 표현하는 걸 보았다.아마 내가 그런 상태였나보다.

갑자기 온 몸이 뜨거워 오기 시작했다.덮고 있던 이불을 다 걷어찼다.등허리가 뜨끈거렸다.

나도 모르게 직감적으로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나의 모습은 어린아이가 되어 예수님께 안겨 좋아하고 있었다.예수님과 내가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곳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주로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지나고 보면 언제든지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알려주실 일에 대해 감동을 주시고 질문하도록 인도하셨다.

내 개인적인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도 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아버지에 관해 묻고 싶은데 여지껏 단 한 번도 질문이 되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과 이 책에 관하여 나눈 대화들이다.

“내가 너의 손을 빌어 쓰는 것이니라. 내가 작가이며 디자이너이고 편집자이며 판매자이다.

내가 너를 통하여 세계 곳곳에 있는 나의 자녀들에게 읽게 할 것이다."

나는 단순히 기록자에 불과함을 새삼 확인시켜 주셨다.

“주님, 이 책이 나오게 되면 어떤 사람들이 신학적 이유를 대며 반박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부분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잖아요.”

예수님께서 무거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내가 신이다.

신학이란 신을 아는 학문임과 동시에 신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학문이다.

신을 먼저 알고 신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순서이니라.

그런데 저들이 나를 알 생각을 않고 나에 대해 분석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게 됨으로써 지적교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는 내 사랑하는 종들이 나를 아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길 원하고 천국을 아는 일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들이길 원한다.“

그리고 덧붙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말을 듣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

그러나 듣고도 믿지 않는 자는 안 들은 자보다 더욱 악하다. 저는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다.”

 

한참을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예수님께서 일어나셨다.

“자, 이제 자거라. 네가 피곤하구나.”

“주님~!

제가 천국갔다 온 거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 오늘도 천국가서 보고 얘기해 줘야 되요. 보여주세요오~~!”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졸랐다. 그 당시 나는 인터넷 블로그에 이 기록을 매번 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씨익 웃으셨다.

그리고는 귀여운 듯 내 볼을 살짝 꼬집으시면서 “욕심쟁이~.”라고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너는 신앙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런 욕심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런 욕심이 너를 쓰게 하는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12

 

“자, 가자.” 주님께서 저를 한 팔에 안고 위로 슝! 올라가셨다.

그 순간 지상의 내 육체에 전기충격같은 성령님의 강타하심이 크게 한 번 있었다.

이제는 이전처럼 오랜 시간 요동치지 않고 너무 쉽게 가는 것이 신기했다. 쉬운 말로 길이 닦인 것이라고 할까.

자..이제 천국을 보는구나..싶은 마음에 감격이 찾아왔다.

간만에 보게 되는 천국인지라 또 새로운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헌데..천국이 왜 이래?? 눈앞이 캄캄했다. 으응? 천국은 환한게 정상인데??

순서대로 하자면 지금 내 눈 앞에 크고 흰 성전건물이 있어야 마땅한데??

 

그 순간 내 눈 앞에 불길이 보였다.불길이 눈 앞에서 가까이 활활 타고 있었다.

그 안에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저번 날 본 불구덩이가 클로즈업되어 내게 보이는 듯 했다.

아고..지옥이구낫! 예수님께서 평소처럼 천국을 거쳐서가 아니라 지옥으로 곧장 데려오신 것이다.

그 다음 어떤 장면이 보였다. 불구덩이인지 감방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 사람이 보였다. 그 순간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려왔다.

“내 말을 듣고도 믿지 않고 비판한 자니라.”

그의 눈과 코와 귀와 입, 모든 구멍에서 손가락만한 가는 실뱀들이 하염없이 끊임없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너무 고통스러워 계속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내 눈앞에 그의 생전에 대한 환상이 보였다. 어두운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고 웅크린 채 공부하고 있는 그의 옆모습이 보였다. 굉장히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전도서 12:12

 

예수님은 무엇 하나 그저 보여주시거나 하는 법이 없으시다.

지금 보여주신 지옥의 모습은 아까 나누었던 대화 내용에 관련하여 보여주시는 시청각 자료인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조른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진행되어지는 일인 것이다.

 

그 남자가 가는 실뱀들에게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 괴로워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시 예수님께 조르기 시작했다.

“주님~! 더 보고싶지 않아요~!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어서 저를 천국으로 데려다 주세요, 네?”

천국을 생각하자니 상급집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곧 예수님께서 나를 다시 데리고 천국 상급집으로 가셨다.

아..2층이 완공되어 있었다! 집앞에 여전히 흐르는 시냇물과 푸르른 풀밭 그리고 그네... 모두 다 잘 있었다.^^

그 풀밭을 가로질러 흰 토끼 한 마리가 강종강졸 뛰어가다가 딱 멈춰서서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더니, ‘응~ 이 집 주인이군~’ 알았다는 표정을 하며 다시 강종거리고 뛰어 사라졌다.

 

“주님, 저 실내에 들어가 봐도 되요?” “물론.” 재빨리 들어가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화려한 새 예루살렘 집과는 달리 이곳은 차분하고 아담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완공된 2층으로 올라가 보고싶어 계단을 찾았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었다. 내가 갸우뚱거리며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계단이 없네요?” “내가 네게 그보다 더한 것도 보리라고 한 것 기억나느냐?”

예수님께서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순간 저번 날 새 예루살렘 거리에서 본 작은 폭포수가 오르락 내리락 할 때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네가 이보다 더한 것도 보리라.” 그래도 여전히 의아스러워서 또 물었다.

“하지만 새 예루살렘 집에는 휘어진 계단이 있었잖아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저번 날처럼 또 위트있는 답변을 하셨다.

“내 맘이지!”

이 땅의 사람들이 고상하게 표현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이처럼 멋지게 한 마디로 표현하시는 멋지신 우리 주님!

예수님과 웃다가 스르르 눈이 떠져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40분.

가만보면 평소에는 안 그러시다가도 예수님께서는 상급집에 오시면 항상 쾌활하시고 유머구사도 잘 하셨다.

이제야 그분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몇 번을 상급집에 갔을 때도 못 느꼈는데 이제야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내가 쌓은 상급으로 지어지는 나의 상급집. 보너스로 내게 주어지는 상급집.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상급은 시간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쌓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나의 마음으로 인해 쌓여가는 천국 상급에 흐뭇하고 기쁘신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은 누가 주는 것인가? 주님께서 주셔서 생기는 마음인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믿음도 순종도 주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그 마음으로 상급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의 상급은 주님으로 인해 주님으로 말미암아 쌓이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주시고는 또 그것을 보시며 기뻐하시는 것이다.

나는 몰랐다. 나는 정말이지 이토록이나 나를 향해 기뻐하시는 줄 정말 몰랐다.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며 이처럼 기뻐하시는 주님. 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시며 또한 슬퍼하시는 주님.

그러므로 자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며 함께 기뻐하시려고 주고 또 주고도 더 주고 싶어하시는 주님의 마음..

주님은 24시간 우리를 축복하고 싶어하시는 분이시다.

 

일곱 번째 데려가심/ 2007 2 3


나눔의 축복 Ⅰ

 

절친하게 지내던 집사님 내외분이 집에 오셨다.

나의 개인적인 일을 도와주시러 차를 몰고 두 시간 먼 길을 오신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그 분들의 도움으로 속히 일이 끝나자 모두가 기도하고픈 마음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셋이서 손을 맞잡고 기도하다가 여집사님과 둘이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내 안의 성령께서 성령충만을 달라고 친히 간구하심을 느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그만 그 자리에 스르르 눕고 말았다.

몸에 강한 충격적인 진동이 한 번 있은 후 나는 천국으로 인도되어 예수님을 뵐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무척 흐뭇해 하시는 표정이셨다. 그리고는 나를 안고 등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셨다.

“잘 했다, 잘 하고 있어.” 처음에 그 말씀을 들을 때 의아스런 마음이 들었다. 뭘 잘 하고 있다는 말씀일까?

 

집사님 내외분과는 피차 알고 있고 호감을 가지 있었지만 서로 교제를 하던 분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어떤 일을 계기로 자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그러면서 서로 은혜도 나누고 위하여 기도도 하고 했던 것이다. 당시 주님께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거룩한 부담을 자꾸 주셨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중보기도하거나 아니면 만나거나 하며 함께 기도했었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이처럼 인도하셔서 함께 기도하게 하시고는 또 칭찬하고 계신 것이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일이었다. 주님께 영광!

 

예수님께 남자 집사님과 아까 나눈 이야기를 해드렸다. “주님, L집사님이 천국 가 봤으면 좋겠대요.”

예수님께서 하하 하고 웃으시며 각자의 사명이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함께 웃음이 나왔는데 실제 지상의 내 육체도 웃는 것이었다.

그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여자 집사님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도하라고 하라. 기도하면 내가 믿음을 더해줄 것이요, 사랑하면 사랑을 더해줄 것이다.”

그 때였다.

집사님의 손이 내 손 위에 닿더니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희한하게도 손이 내게 닿자마자 내가 깨어나게 된 것이다. 나는 힘없이 스르르 일어나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입벌려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에 기운이 없었다. 다시 눕고 싶은 생각만 자꾸 들었다.

누군가가 성령에 사로잡혀 위로부터 오는 은혜 즉, 기름부음을 받고 있을 때 가급적이면 주변 사람들은 그의 육체를 건드리거나 말을 걸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될 수 있는대로 조용한 주변환경을 만들고 그를 위해 중보하되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 단, 안수자는 예외인데 안수자와 기름부음 받은 자와는 영적인 교류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한 영이시다.성결한 영이시다.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영이시다.

그 거룩한 영이신 주님께서 자녀를 강권적으로 사로잡아 무언가 하시려 할 때, 그 어떤 것도 방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날 그 해프닝으로 인해 우리는 또 하나 영적 세계의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여덟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3일 낮

 

나눔의 축복 Ⅱ

 

나는 자리에 다시 누웠다. 이번에는 나를 건드리지 말아줄 것을 미리 부탁했다.

자리에 눕고 얼마 안 있어 곧 주님은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셨다.

 

그 때 내 눈 앞에 처음 보인 사람은 아브라함이었다. 세 번째 보는 아브라함이 반가와서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나도 모르게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땅에서는 “아브라함, 아브라함” 이렇게 부르는데 천국에서는 모두가 아브라함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나를 반가이 맞아주면서 안고 칭찬해 주었다.

 “딸아, 참 잘 했다.

네가 저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달라고 구해서 내가 전에 약속한대로 주도록 했단다.  자, 함께 들어가자.”

그리고는 희고 큰 건물, 성전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큰 방으로 들어가 핑크색 드레스와 면류관을 썼다.

예수님께서도 어느새 빛나는 옷과 화려한 면류관을 쓰고 계셨다.

 

오늘은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성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마치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입장하는 것처럼 큰 방에서 성전으로 나와 내 손을 잡고 보좌 쪽으로 걸어가시는 것이었다.오른쪽에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쓴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경외의 마음으로 허리와 고개를 숙여 경배드렸다. 예수님께서는 보좌에 오르시고 나는 보좌 가까운 쪽에 혼자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처음 천국에 데려오셨을 때 내가 서 있던 위치는 성전 입구문 쪽이었다.

그 다음 춤을 출 때에는 성전 중앙 정도의 위치였다. 그리고 오늘은 보좌와 아주 가까운 쪽에 서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나의 영혼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채우시고 그 지식이 자라감에 따라 천국에서의 내 몸이 주님께로 가까이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다. 내 영혼이 주님께 가까울수록 내 몸이 보좌에 가까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상에서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게 자꾸만 앞자리로 가고 싶어지는 것, 느끼신 분 많을 것이다.

아무튼 그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거기 모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기도로 내 딸이 잘하고 있다. 고맙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로 인해 무척 마음이 즐거우신 듯 했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 어린 양 예수를 영원무궁히 찬양할지어다~

 

천국에 올 때마다 성전에서 이들과 만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들의 확실한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갈 때 마다 항상 그 자리에 웅성웅성 서 있는 그들에 대해 나 혼자 궁금해 했다.

‘대체 그 분들 job(직업)이 뭘까?

대체 뭐하는 분들인데 예수님께서 기도를 부탁하시기도 하시고 저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거지?

예수님의 중보기도팀인가? 특별기도팀인가?’

그들에 대해 묻는 것이 아직 허락되지 않았나보다. 이미 말한대로 천국에서는 질문 또한 주님께서 감동주셔야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알게 하시리라 믿는다.

그들의 찬양이 끝나고 나서 저번처럼 나의 화답송이 시작되었다. 저번 날과는 다른 춤이었다.

나는 도무지 춤출 생각도 안했는데 그처럼 춤추도록 인도하시는 것이었다.

치마 양쪽 끝을 잡고 왼쪽으로 한 번 오른 발을 내밀었다가 또 오른쪽으로 한 번 왼 발을 내미는 그런 춤을 내가 추고 있었다.

이 춤 역시 처음 춰보는 춤이건만 천국에서는 내가 기가 막히게 멋있게 추는 것이었다.

그 춤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이스라엘 춤이었다. 춤을 추면서 내가 찬양하고 있었다.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예수님이 기쁘고 대견한 맘으로 나를 굽어보시며 즐거워하고 계셨다. 자녀의 재롱을 보시며 기뻐하시는 주님!

내 춤과 찬양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 단에서 내려오셔서 나의 손을 이끄시어 상급집으로 데려가셨다.

내 마음에 2층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어느새 내 몸이 2층에 있는 것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던 제자들을 만난 사건이 떠올랐다. 천국에서는 시공을 초월하는구나..!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9

 

2층은 휴식공간처럼 보였다. 쉬면서 책을 볼 수 있는 긴 의자가 있었고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보였다.

예수님께서 2층반 내 곁에 서 계셨는데 아래를 내려다 보고 계셨다. 나도 예수님께서 내려다보시는 방향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곳에 놀랍게도 지상에 있는 나와 집사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집 거실이었고 집사님 두 분이 기도 중이었다.

나는 그 곁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그대로 쪼꼬맣게 축소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너무 희한하고 신기했다.

그때 남자 집사님에 대해 다시 묻고픈 감동이 들었다. “주님, L집사님이 어떻게 기도하면 좋겠어요?”

“어린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라.”

예수님께서는 항상 유스그룹(Youth Group) 청소년들을 지칭하실 때 어린 사역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였다.남자 집사님이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막 웃으셨다.

나도 덩달아 같이 웃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그렇게 한동안 웃은 것 같았다.

나중에 깨어 집사님께 물어보았다. “집사님이 기도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마음에 합하셨는지 막 웃으셨어요.

무슨 기도 중이셨는지 아시나요?” “유스그룹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이었어요. 며칠 후에 있을 행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그 때 내가 막 웃더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그 기도를 집사님이 하시니 주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신 것이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알려주시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많은 말을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을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유다서 1:20

 

“주님, 성령으로 기도하기를 소원합니다.

저의 모든 간구를 아시는 주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님께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도록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있는 집사님들을 천국에서 내려다 보다가 예수님께 부탁드렸다.

“주님, 기도하는 저들에게 기름부어 주시면 좋겠어요.”

예수님께서 내게 답하시지 않으시고 곧장 옆에서 예수님을 수종들고 있는 천사(그 직전까지 못 봤는데 언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에게 기름부을 것을 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신 것이었다! 주님께서 미리 그들을 축복하시려고 천사를 준비시켜 두신 것이다.

그러시고는 그들을 위한 부탁을 드리게끔 하시고는 곧장 천사를 통해 행하신 것이다.

그것도 얼마나 급하셨으면 답도 안하시고 즉시 행하도록 하시는 것이었다. 얼마나 간절히 복주길 원하셨으면...!

 

천사가 둥근 단지같은 병을 들었다. 그린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빌 기름같은 그린색이었다.

주먹만한 병에 기름이 아래로 우리 명을 향해서 부어져 내렸다.

천사가 그걸 붓는 보면서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 박수를 치면서 주님께 감사드렸다.

기름이 부어지자 지상의 육체와 집사님이 뜨겁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을 현재 하지않은 상태였는데 그들에게 그처럼 역사하는 것이로서는 놀랍기만 했다.

지상의 육체를 보고 있자니, 잠자듯 있던 육체가 반응하면서 방언이 세게 나오고 누운 채로 진동이 양팔에 오고 그러는 것이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영육간의 축복을 미리 예비해두고 계시다.

주님은 본인이 혼자 기도해서 그 축복을 받는 것 보다 중보의 기도를 통해 양 쪽 모두에게 동일하게 축복이 임하는 것을 원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타인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중보기도는 일석 몇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서는 보다 많은 자녀들을 축복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서 중보하면 나도 건강해지고, 누군가의 영혼을 위해 중보하면 내 영혼도 잘되고, 누군가의 물질축복을 위해 기도하면 나도 더불어 부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한동안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내 등을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 내려가야지?”

내려가고 싶지 않아서, 예수님과 더 함께 있고 싶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히잉~”하며 칭얼댔다.

조르고 싶었지만 지상에서 기다리실 집사님들을 생각하니 하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또 만나 주실거죠?” “그러엄~.”

헤어지기 싫은 연인이 헤어지는 것처럼 예수님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드렸다.그리고는 눈이 다시 떠지며 지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기도 중인 집사님들을 보면서 지금의 일들을 기록해두려고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노트에 날짜를 적고 기록하려는데 또 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눈이 다시 감겼다. 이게 뭔 일이래? 하루 세 번씩이나?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의자에 앉은 내 앞으로 오셔서는 내 머리를 품에 안아 주셨다.

예수님의 사랑이 한껏 느껴져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런 후 예수님께서 머리에 안수하셨다.   “내가 너를 축복하노라..”

너무나 감사했다. 그 때 집사님들 생각이 또 떠올랐다.

주님, 집사님께도 축복해주세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각각의 머리에 양팔을 얹으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축복하노라….”

그리고는 앞에서 주님이 저와 마주 상태에서 점점 조그맣게 멀어지시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오늘 내가 그분들 덕을 톡톡히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들을 축복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러시려고 분들 마음에 돕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어, 다시 말해 축복할 명분을 주시고 맘껏 축복하신 것이다.

마음과 시간과 물질 그리고 주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나눌 때 주님은 무척이나 기뻐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웃과 나눌 때 주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과 은사를 나누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그리고는 나눔을 명분으로 우리를 맘껏 축복하시는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로마서 1:11-12

 

아홉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7일 새벽

 

믿음으로 가는 나라

 

간밤에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잠든 가운데 코를 골고 있는 내 소리가 내 귀에 들리더니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환해져 오는 것이었다.

물론 실내는 어둑어둑했다. 크고 강렬한 빛이 점점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고 계신것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자, 가자.”   나는 오신 예수님을 향해 빙그레 미소지었다.

굳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 푸근함, 그것은 마치 오래된 부부 사이에 흐르는 신뢰감같은 감정이라고 할까?

예수님께서 한 마디 더 하셨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거란다.”

예전처럼 진동이 오거나 깊은 잠에 빠지도록 하시려나 싶어서 모로 누워있던 자세를 바로하고 누웠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응? 주님이 왜 그러시지?  가자고 하셨으면 저를 데리고 가셔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혼자 어떻게 가지?  앉아서 뜨겁게 기도를 해볼까?’

혼자서 누운 채로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거란다.”  아 맞다, 믿음!

주님께서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고는 또 그 믿음을 주님께 보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나는 주님께 믿음의 고백을 드렸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주님이 계신 것과 천국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그 순간 어느 새 내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천국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예전처럼 천사를 좌우에 거느리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두 팔 벌려 반겨주셨다. 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예수님께 막 달려가서 포옥 안겼다. 예수님께서 허리숙여 나를 꼭 안아주시고 등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수고했다. 믿음으로 잘 왔구나.”

주께서 주신 믿음으로 온 것이니 내가 감사해야 할 터인데 늘 나는 받기만 하고 늘 칭찬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오늘은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져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무 데도 데려가지 않으시는 것이었다.또한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의아해져서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오늘은 어디 안 데리고 가요?” “천국 어디든 네 믿음으로 갈 수 있단다. 자, 가거라.”

어느새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려왔다. 머리 속에 여기저기 다니던 곳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생각만 나지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눈이 떠졌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주님께서 왜 내게 이렇게 하신 것일까? 왜 나는 여기저기 생각만 날 뿐,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던 걸까?

 

내게 주신 깨달음은 이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게, 천국은 그 어느 것으로도가 아닌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곳임을 다시금 알리기 원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믿음을 고백할 수 없고, 천국에도 이를 수가 없다.

그 은혜로 나는 좀 아까 믿음의 고백을 하고 천국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주님께서 이끄시지 않으면, 허락지 않으시면 제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믿음은 도를 닦듯이 수양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긍휼에 풍성하신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베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선물인 것이다.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2

 

어느 누구도 믿음이 있다고 자랑할 수 없다.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드리는 겸손을 지녀야 한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우리 인생의 끝날까지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은혜로만 우리가 천국에 이를 수 있고, 그 은혜로만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 찬송가에도 천국은 돈으로도 못가고 맘 착해도 못 간다고 했다.

거듭나면 가는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바로 천국, 하나님 나라라고 했다.

믿음으로 가는 나라, 천국. 막연한 믿음이 아닌 바른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입술로만이 아니라 진정 마음으로부터 믿어져야 한다.

사역을 하다보면 의외로 십여 년 교회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게다가 직분을 받고 습관적인 교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본인의 믿음에 대해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천국갈 믿음을 가졌는지 물어보면 우물쭈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퍽도 걱정스러운 경우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주님 자녀들은 모두 튼튼한 믿음의 고백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길 기도드린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8

 

열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9일 낮

 

십자가의 공로

 

지난 3일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해야 했다. 인터넷은 고장나 불통이었다.

전화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 전화오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고 설사 온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내가 책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전화를 받지 못하도록 말씀하신 까닭이다.

그런데다가 간밤에는 예수님께서 천국에 데려가실 듯이 나를 성령으로 사로잡아 뜨겁게 달구시고 진동하게 하시고는 천국에 데려가지 않으셨다. 평소에 천국을 데려가실 때처럼 모든 순서가 진행이 되고는 그 뿐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왠지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나 혼자 적막강산에 떨구어진 듯한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왠지 주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이 자꾸만 들면서 슬퍼지는 것이었다.

말로 할 수 없이 외롭고 고독한 것이 어디 하소연할 곳도 생각나지 못하게 막으셨나 보다.

어느 곳도 연락하지 못하고 홀로 외로움 속에 몸부림치는 지난 3일간이었다.

3일째 되던 날, 친한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님께서 받도록 허락하셔서 통화하게 되었다.

대화 가운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그 가정에 가서 함께 기도할 때였다. 나도 모르게 손이 십자가 모양이 되어 한동안 있었더랬다. 그것을 잊고 있었는데 집사님이 떠올려 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순간에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이 생겼다.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사흘 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묵상하게 하시고 지금은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장사한지 사흘간” 음부에 계셨던 예수님을 느껴보게 하신 거였구나..!   그러면서 간밤의 사건도 납득이 갔다.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천국에 데려가시지 않으셨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마치 하나님 아버지의 의도적인 버리심으로 인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3일간 천국에 이르지 못하신 것처럼 말이다.

 

주님께서 내게 느끼게 하셨던 버림받음의 느낌...

그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으심을 느껴보도록 내게 베푸셨던 은총이었다.

그 사랑을 생각하자니 그저 죄송스럽고 황송하기 한량없어서 감사 감격에 하루종일을 예수님 액자를 끌어안고 울며 보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인터넷이 연결되어 기쁜 마음으로 인터넷 채팅으로 아는 목사님과 집사님과 은혜를 나누게 되었다.

음부에 처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가라앉았던 내 심령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차츰 회복되어 갔다.

헤어질 즈음에 내가 기도드리는데 뜨거운 성령님의 임재가 있어서 심령이 마치 불붙는 것 같았다.

기도가 끝나고 나는 의자 뒤로 몸을 뉘운 채로 주님의 기름부으심을 한껏 받고 있었다.

 

그 때였다.예수님께서 내 앞에 나타나셨다. 세마포를 입으신 예수님께서 내 얼굴 여기저기 마구 입을 맞추셨다.

나는 오래도록 정신없이 한참을 맑게 웃었다. 주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웃음을 맘껏 웃은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웃음이 있다.

주님이 주시는 웃음을 웃으면 심령에 기쁨이 충만해지면서 내면의 치유가 된다.

지난 며칠간 내가 겪었던 마음쓰림에 대한 주님의 위로하심임을 알기에 주님께 감사드렸다.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욥기 8:21

 

그리고는 금새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셨다.

저번 날처럼 비디오 테잎이 빨리 돌아가듯이 큰 성전과 큰 방에 들러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성전에, 예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셨다.

천국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므로 굳이 주님께서 나를 큰 방에 들러 옷을 갈아 입히시거나 할 필요없이 곧장 내 옷을 변형시키실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그 일을 반드시 짚고 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 일은 내게 이미 익숙해졌으므로 신속하게 절차를 밟도록 이끄시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서는 못 쓴다”는 한국속담이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는 법이다.

주님께서 나를 비롯한 그 분 자녀들을 다루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두르는 것은 사람일 뿐, 주님은 결코 서두르시는 법이 없으시다.

아무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기 급하시더라도, 훈련되지 않은 자나 설익은 자를 선교의 일선에 내어 모시는 분이 아니시다.

어떤 부분에 대한 훈련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훈련을 받을 때까지는 시간이 더디 가는 것처럼 보이나 이후 그 훈련을 제대로 파악하여 다 습득하고 나면 곧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 대해 훈련을 받았다고 해서 이 다음에는 그 일을 안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오더라도 빨리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늘 있는 만조백관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번에는 다 함께 브이자로 손을 높이 쳐들고 한 목소리로 힘차게 찬양했다.

 

♬ 나를 구원하신 예수를 찬양하리라 찬양하리라 찬양하리라~

 

나도 함께 브이자로 두 손을 들고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점프하듯 뛰며 성전을 둥글게 돌다가 덤블링을 하듯 이리저리 재주를 부리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하염없이 기쁨이 충만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 삼 일간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님의 마음을 겪어본 이후,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 이전보다 더욱 깊고 크게

내 영혼이 있는 힘껏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내가 마치 두 개의 종이비행기처럼 나란히 납작한 모습이 되어 하늘을 누볐다.

마치 예수님과 제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희한한 것은, 하늘을 날 때에도 옷이 아래로 처지지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아래로 새예루살렘 성들과 광활하게 펼쳐진 푸르른 들판, 낮은 언덕, 굽이굽이 보이는 시내와 강들 그리고 저의 상급집도 보였습니다. 그것들 또한 모두 저에게 허락된 것만 제가 볼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한동안 예수님과 날면서 가끔 주님을 바라보며 웃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몸도 마음도 말 그대로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었다.

멀리 상급집이 보이길래 속으로 ‘야~ 내 상급집이다아~!’ 하는데 곧 예수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함께 웃었다.

예수님께서 저번 날처럼 나의 상급집만 보아도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시는 것이다.

상급집을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자마자 예수님과 나는 상급집 옥상에 이르러 있었다.지붕이 없는 상급집, 편평한 그 옥상에 처음 올라가 보았다.왠지 실내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예수님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그 때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인터넷에 올린 내 글에 댓글을 쓴 사람이었다. 안면도 친분도 없는 사람이었다.

뿐 아니라 그 때가 내 블로그에 처음 방문했던 분이었다.

그 자매가 댓글에 쓰기를, 이담에 천국가게 되면 자신에 대해 물어봐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지금 그 자매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을 보아도 질문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질문을 나로 하여금 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때 나는 그 주님의 답변을 그 분께 쪽지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그 이후 놀라운 일이 생겼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 자매와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자매는 원래 해외 포였었다.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서 만나는 기적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더구나 내가 자매의 마중을 하러 공항에 나갔었다..ㅎㅎ 뿐 아니라 그 자매와 함께 성경공부도 했었다.

전혀 알지 못하고 이후에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각각 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를 한 지역에서 만나게 하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만남을 미리 정해둔 것이라고 믿는다.

참으로 주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우연이란 티끌만치도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함께 가자, 내가 한 곳을 보여주리라.” 순간 내 마음에 그곳이 지옥인 것을 알았으나 이전처럼 주저하지 않았다.

“주님, 저는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이제 알아요. 음부에 처하신 그 아픔도 알아요.

주님이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제가 함께 갈께요.”

며칠간 겪어보게 하셨던 그 아픔을 다시금 느끼며 내가 말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었을 때, 예수님께서 못자국난 발을 보여주셨다.

전에 지옥의 가룟유다의 옥 앞에서 못자국난 손을 보여주시면서 발은 보여주시지 않았었는데 오늘 드디어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못자국난 주님의 발등은 하얀 빛이 났다. 하얀 구멍처럼 보였다.

그 못자국난 발을 보며 나를 위해 죽으신 그 발 아래 엎드려 입맞추고 울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주님이 염려하시는 아픔의 눈물이 아닌 감사의 눈물이다.

그러므로 이제 마음에 단련시킨 후 예수님의 발등을 내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울고 있는 나를 일으키셨고 우리는 어느새 지옥에 와 있었다.

저번 날처럼 불구덩이 속의 사람들을 다시 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나는 얼마 안 되어 이처럼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해 약간 놀랐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우성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 했다.

예수님께서 더할 수 없이 슬픈 목소리로, 울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이 이처럼 나를 등지고 이곳에 와 있구나….”

그 말씀을 듣는 나도 말로 할 수 없이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마귀가 뾰족한 창으로 끊임없이 여기저기 깊숙이 찔러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창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몸을 빼려 했다.

그러나 워낙 사람이 빽빽이 들어차 늘어서 있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창뿌리를 맞으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 곁에는 또 한 무더기의 벌거벗은 사람들이 엎드러져 있었는데 채찍으로 그들의 등을 내려치고 있었다.

이들도 삐쩍 마른 사람들이었다. 채찍은 로마시대에 썼다는, 채찍 끝에 갈고리가 여러 개 달린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이런 채찍에 맞으셨다던데 그와 똑같은 채찍이었다.

채찍이 그들의 등에 떨어질 때마다 시뻘건 줄이 여러 줄 가면서 살이 긁어져 나왔다. 드린 사람들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엎드린 채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계속 채찍을 맞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 처참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예수님께서 역시나 몹시 슬픈 어조로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다.

“저들은 나를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다. 너는 가서 전하거라.

나를 다시는 십자가에 못 박지 말라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4-6

 

내가 하도 우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다시 천국으로 이끄셨다.

새예루살렘 거리였다.

이전에 본 작은 폭포수를 지나 오른쪽 길로 돌아서니 작은 좌판 같은 것이 아이스크림 집처럼 생긴 곳 앞에 펼쳐져 세워져 있었다. 두 개의 단으로 된 좌판이었는데 그 위에는 풍선같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너무 희한하기만 했다.

‘천국에 좌판이라니? 누가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닐테고?’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주님께서 미소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구든 거저 가진단다. 누구든 원하는 사람은 마음껏 가져갈 수 있다. 그러면 또 채워지느니라.”

오병이어와 같은 이치!쓰고 또 써도 자꾸만 생기는 곳.천국은 정말 좋은 곳이다.

핑크빛 풍선 하나를 들어 불었더니 하트 모양의 풍선이 되었다.

거기 있는 어떤 것이든 불면 하트 모양이 된다는 것이 절로 알아졌다.

하나를 불어 하늘위로 올리면서 나는 마구 박수치며 어린아이처럼 깔깔대고 좋아했다.

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이런 일을 하는 데 대해 의아스러운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일은 누구보다 나로 하여금 새삼스레 예수님께 놀라게 되는 일이다.

나의 철없고 어린아이같은 내면을 어른들은 몰라도 주님은 날 만드셨기에 너무 잘아시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에서 힘겨워 했던 나에게 이런 아동틱한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내가 좋아할 것을 아시고 말이다.

 

이왕 여기 왔으니 나의 집도 보았으면 싶었다.생각이 들자마자 예수님과 내가 집 앞에 서 있었다.

문 가운데 문패에는 여전히 아직 내가 읽지 못하는 천국말로 나의 새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신이 나서 문으로 들어가니 휘어진 멋진 계단이 여전히 멋지게 떡 버티고 있었다.

2층 맨 처음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그곳도 오른쪽 진열대 위의 보석들이 아무 탈 없이 수북히 잘 있었다..^^

하루 빨리 가서 그것들을 쓰며 영원히 지내면 참 좋으련만...쩝.

 

예수님께서 보석진열대 중간에서 왕관 하나를 꺼내셨다.그것을 내 머리에 씌워 주셨다.

그 순간 숨을 크게 들이쉬며 가슴벅차 올랐다. 감격스러움에 말을 다 못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왕관을 씌워 주신 것도 감사 황공 감격 무지막지인데 나를 영화처럼 두 손으로 번쩍 안아서는 왼쪽에 있는 휘황찬란한 침대에 사뿐히 누이시는 것이었다!

좋아서 입을 헤~ 벌리고 마냥 웃고 있는 내게 예수님께서 미소지으신 채 다가오시어 내 곁에 걸터 앉으셨다.

그리고는 내 이마에 입맞추며 말씀하셨다.

“나의 왕비여..”아..내가 예수님의 왕비~!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신부니깐 왕비 맞구나~!

“예수님은 왕비도 많으셔~.예수님 욕심쟁이~!”

내가 웃으며 말하자 예수님께서도 웃으시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셨다.

“그래..나는 사랑의 욕심이 많단다.너는 가서 전하거라.나는 나의 왕비가 더욱 많아져서 천국이 가득차기를 원한다고..”

그 말씀 중에 예수님의 쓸쓸함이랄지 뭔지 모를 마음이 내 마음에 전달되어져 왔다.

자기 백성이 한 명이라도 더 천국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

불러도 불러도 오지 않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무응답으로 인한 안타까우심..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하신 주님의 간절함과 애절함...

 

예수님께서 아래를 내려다 보셨다.나도 따라 내려다 보았다.이전에 본 것처럼 세상이 보였다.

천국은 어디서든 아래를 내려다 보면 세상인가 보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주님의 능력으로 어디서든 가능한 것이다.

아래 세상에는 내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 이제 내려가자꾸나.”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셨다.

예수님께서 의자에 앉은 내 이마에 입맞추고 가시려는 데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다시 붙들었다.

“예수님, 잠깐만요.책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책 만들 때까지만 주님 만날 수 있고 그 다음에는 못 만나나요?”

“책을 만든 이후에도 내가 지금처럼 너와 만나주리라.”

주님께서 내 뺨을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내가 기뻐하며 또 물었다.

“예수님, 책 만드는 거 어떻게 해요? 좀 가르쳐 주시지요?” “너의 감동대로 하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은즉 네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편집과 디자인, 제목까지 네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네에...”

 

내가 너와 함께 있은즉 네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이 말씀에 대해 얼마나 오랜 시간 오해로 인한 시행착오를 범해 왔던 나인지.

예수님을 영접했다고는 하나, 나는 예수님을 리모콘 조정하듯 해온 사람임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추진하고 내가 결정하는 모든 일. 그리고 하나님께 그 일을 이루어 달라고 열심히 기도드린다.

그렇게 기도드리는 기도의 응답은 때로 내 바람대로 이루어질 때도 때론 전혀 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나서 난감해 한 적도 있었다.

그간의 숱한 실패를 거듭해오면서 이제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은, 나와 함께 계신 주님께 매사를 물으며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이 꼭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나 형통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여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성경에 말씀한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 39:23

 

세상에서 말하는 형통으로 치자면 그는 감옥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그곳에 주님께서 정하신 기간 동안 두셨었다.

나의 환경도 그와 같아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환경 속에 있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이제 안다.

비록 그것이 사람보기에 의아스럽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따로 불러 회개의 기회를 주신 주님께서 내게도 그러하셨다.

주님을 리모콘 조정하는 죄를 범해온 내게 이제 만회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서 모든 일을 능히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이제 그 말씀을 하시고는 나에게서 떠나가시는데 보통 때는 순간적으로 사라지셨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으셨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양손을 들어 바이바이 흔들고 있었고, 예수님은 세마포 옷을 입으신 채 나를 향하여 서신 모습으로 점점 멀어지시면서 양손을 저처럼 바이바이 흔들며 조그맣게 사라져 가셨다.

지옥의 울부짖는 영혼들을 보시며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젖은 음성이 아직도 내 가슴깊이 맴돌고 있다.

 

“내가 십자기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이 이처럼 나를 등지고 이곳에 와 있구나….”

 

그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주님의 그 아픔을 나에게도 느끼게 하신다. 그러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자리에 처할 수 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 우리와 함께 빛나는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기 원하신다.

그 자리에 함께 갔으면 참 좋겠다.

그곳에서 주님 얼굴을 환히 뵈옵고 그 사랑을 맘껏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원히 모두 함께 살았으면 참 좋겠다.

 

십자가의 공로 Ⅱ/ 2007년 12월 3일

 

천국에서 만난 그들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란다는 말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천국에 없을 것이라 여긴 사람이 있어서 놀라고, 천국에 있으리라 여겼던 사람이 없어서 놀라고, 세 번째로 자신이 천국에 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던 당시에는 그저 그런가부다..했던 것이, 막상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셔서 깨닫게 하신 후에야 그 말의 참 의미를 알면서 심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누가 천국에 있다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음을 알게 해주는 사건 하나를 주님께서 겪게 해주셨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2007년 11월 말, 뉴욕의 L자매집에서 일주일간 묵으면서 사역을 한 적이 있었다.

L자매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랑스런 지체였다.

함께 식탁에 앉아 천국과 지옥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L자매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가는거라고 했죠?

아.. 우리 아버지는 예수님을 안 믿었었는데 그럼 지옥에 계시겠네요…흑!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네요….

목사님, 제가 열심히 기도드리면 지옥에 계신 저희 아버지가 천국으로 옮겨올 수 있지 않을까요?”

에구..대답하기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말해야 했다.

“호흡이 끊어지면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살아 있을 때 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야 천국갈 수가 있거든요.

이미 지옥에 간 경우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요. 성경에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알 수가 있잖아요.”

안타까와 하고 있는 자매를 보며 어쩌지 못하는 일인지라 그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시려는 것을 심령에 느꼈다.

기도하고 있던 중도 아니었는지라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웠지만 주님께서 예전에도 이런 일을 종종 하셨던 터인지라 순종의 마음을 주시길래 자매에게 말했다.

 

“음..주님께서 저를 천국에 데려가시려나봐요. 곁에서 기도해주세요.”

 

자매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기도하다가 천국으로 이끌려 갔다.

예수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만나게 하신 사람들이 있었다.

황금길 위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손을 잡고 나란히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미소띈 얼굴로 바라보는 두 사람을 의아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는 나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L의 부모들이다.”

미소만 띄고 말씀 한 마디 안 하시는 그 아버지가 L자매의 아버지시라는 것이었다.

보통 저의 엄마경우에는 속으로라도 말을 하고 나랑 의사소통이 되었었는데 이 분은 아예 속 생각조차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속으로도 전혀 아무 말씀을 않고 있음을 알게 해주셨다.

나는 무척이나 놀라고 의아스러워서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주님을 믿지 않았는데 어떻게 천국에 있을 수가 있죠??”

“저가 혼수상태에 있을 때 내가 그를 만나 믿게 하여 데려온 것이다.”

아…그렇구나, 그렇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아버지께서 주신 자녀는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으신다고 하시더니 그 막바지에서조차 주님께서 그 분에게 찾아가셔서 전도하시고 천국으로 이끌어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엄마보다도 더 막바지에 주님을 영접하신 분이라 그처럼 말 한 마디할 엄두조차 안내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야 깨닫게 하신 것이 또 있다.

나의 엄마 또한 오랫 동안 혼수상태에 계셨었는데 그 때 주님께서 나의 서원기도를 들으시고 혼수상태에 있는 엄마에게 찾아가셔서 믿음을 주시고 천국으로 데려가셨던 것임을!

 

손을 맞잡고 있던 자매의 어머니는 한복차림에 머리를 뒤로 올리고 있었다.

영으로조차 한 마디 못하는 자매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 분은 입밖으로는 아니더라도 나의 엄마처럼 영으로 말씀하실 수는 있었다.

그러면서 지상에 있는 딸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전해주도록 내게 부탁하셨다.

두 분 다 너무나 행복한 표정이어서 보는 나마저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나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셨고 나는 깨어나자마자 자매에게 물었다.

“자매님, 아버지께서 혼수상태 속에 계신 적이 있어요?”

“어머, 네! 병원에서 혼수상태 속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엄마는 머리를 틀어올리고 한복을 즐겨입으셨나요?”

“네!”  자매가 놀라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확인한 후 나는 천국에서 주님께서 만나게 하셨던 부모님에 대해 전해주었다.

자매는 너무 놀랍기도 하고 기쁨에 겨워 울음을 터뜨렸고 나 역시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함께 얼싸안고 울었다.

나로서는 천국사역을 한 후 이처럼 보람을 느낀 적이 없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 일로 인해 주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다.

어느 누구도 그가 천국에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지 못한 자가 천국에 있음같이, 천국에 있을거라 생각한 그가 천국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나는 천국갈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순전히 그것이 주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이신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천국에 이를 수 없는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고함에 빠지지 말고 주님 앞에 겸비해야 한다. 내 영혼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비단 나 자신조차 아니 어느 누구도 그 호흡이 끊어져 천국에 이르기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경계하고 계시는 것이라 믿는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변치 않는 믿음을 주시기를 쉬지말고 기도해야 한다.

나의 행한 바를 생각하며 방심하고 자만하면 안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만에 대해서 마태복음 7장에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이 말씀을 읽으면서 놀라운 것은 적은 수의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라고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성령받고 은사받고 능력사역을 하는데다가 주님을 “주여”라고 부르는데 주님이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8

 

얼마나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나 역시도 주님을 영접하고 은사를 받고 사역을 하는 사람이라 이전부터 이 말씀이 참 두려웠다. 그런데 그 두려움에 대한 해답을 21절에 주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주여 주여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하늘 아버지의 원하시는 바를  행하는 자녀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능력과 은사를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자들을 향해서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계신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드린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은사와 능력을 받고 내 멋대로 날뛰다가는 자칫하면 오히려 주님 앞에 죄만 키우게 되기 때문이다.  또 마태복은 25장에는 작은 일에 대한 상벌을 말씀하고 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것을 준 자들은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주님께 하지 않은 것이라며 그들더러 영벌에 들어가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25:31-46)

위의 말씀들만을 되새겨 보더라도 천국에 이르게 되면 정말 세 번 놀라겠구나 싶은 생각이 다시금 드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주님께서 부르시기까지 깨어 근신해야 함을 알게 해 주신 귀하고 복된 사건이었다.

주님께 영광을!

 

열 한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3일 오후

 

도서관ㆍ사도 바울

 

마리아의 옥합에 관해 어떤 분과 대화중이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인터넷 설교로 마리아의 옥합에 관한 설교를 들으며 눈물로 주님께 고백한 일이 떠올라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울먹이며 내가 말했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크게 쓰임받고 싶지도 않아요.그저 이 썩을 몸 통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단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까지 다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더 이상 말을 못한 채 한참을 소리내어 울기만 했다. 그간의 설움같은 것이 섞인 울음처럼 목 놓아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또 주님께서 기름을 쏟아부으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예수님께서 오셔서 의자에 앉은 내 왼편에 서셨다.

나는 세상 모든 설움을 쏟아내듯 주님 품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다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지금 나의 힘들고 지친 마음을 고스란히 주님께 쏟아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나를 안고 서서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너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듯...

 

내가 처녀의 모습으로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었다.

나에게 웃음 주시려는 듯 예수님께서 걷다가 나의 양팔을 마주 잡고 빙빙 돌리셨다.

나는 즐거움에 까르르 웃어댔다. 실제 지상의 내 육체도 그렇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바위에 걸터 앉으시고 내가 예수님 앞에서 아름다운 천국말로 찬양을 하며 양팔을 벌리고 빙빙 돌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예수님 작사 작곡인가보다.태어나서 첨 부르는 곡에 알아듣지 못할 천국말의 가사였다.

그처럼 춤추며 찬양하는 나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는 듯 느껴졌다.

춤과 찬양을 마치고 나를 예수님 무르팍에 머리를 얹혀 똑바로 눕히셨다. 예수님께서 나를 내려다 보시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기념하리라, 기념하리라, 기념하리라..”

기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뭐라고 말로 형용못할 겸손한 마음이 들면서 나는 예수님 쪽으로 몸을 돌려 얼굴을 묻었다.그리고는 황송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시려 하셨다.

이 크고 강하게 한 번 있은 후 오랜만에 크고 흰 건물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다시 보여주신 것이 어찌 기쁘던지 나는 자꾸만 즐거운 웃음을 웃으며 한참동안 박수를 쳐댔다.

늘 그러하듯이 성전을 통해 큰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성전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들어가자마자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큰 목소리로 함께 찬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나도 함께 흥얼흥얼 따라 부르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오늘의 춤은 또 달랐다.

허리에 양손을 얹고 스페인식으로 투스탭같기도 한 스탭을 경쾌하게 밟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찬양과 춤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간만에 특별한 연못으로 가셨다.

평소처럼 예수님께서 연못에 가까운 바위에 앉으시고 나는 연못과 조금 떨어진 바위에 연못을 향해 앉았다.

평소와는 달리 나의 머리를 예수님께 기대어 누이셨다. 마치 환자가 간호하는 이에게 기대어 물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런 상태에서 예수님은 연못의 물을 왼손으로 떠서 내게 마시우셨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마시거라.”

예수님께서 내 등을 쓸어주시며 말없이 또 어루만져 주셨다.나는 기댄 채로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전히 예수님께 기댄 채 예수님께 간밤의 일을 물었다.

“주님, 간밤의 환상은 마지막 때의 모습인가요?”

간밤에 울며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 있었다.이스라엘에 있는 황금색 지붕의 모슬렘 사원이었다. 그리로 아랍사람들처럼 보이는 이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에 하얀 천을 쓰고 머리테를 두르고.

한 사람이 보이더니 두 사람 세 사람 점점 수가 많아지면서 휘어지는 골목같은 좁은 길로 가득 그런 사람들이 사원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그들이 그들의 예배를 하러 그 사원으로 다같이 올라가는 것이라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거든 마지막이 이른 줄 알라. 저들이 기승을 부리며 발악을 하고 있다.

저들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힘쓰고 있다. 더욱 깨어 기도하라. 믿음을 지키라.”

“주님, 어떤 집사님에게 지옥이야기를 했더니 지옥갈까봐 두렵대요.”

예수님께서 웃으셨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들 중 내 허락없이는 아무도 지옥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름은(말함은-기록자 주) 세상에 살면서 내가 올 때까지 마귀에게 고통을 당하고 신음할 것을 우려하여 하는 말이다. 나는 내 자녀들이 마귀에게 고통당하고 신음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다.”

 

“주님, 오늘은 주님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실 건가요?”

“내가 한 곳을 보여주리라. 가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시면서 내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나를 이끄시어 다다른 곳은 도서관 실내였다.

굉장히 넓고 큰 도서관이었는데 책들이 놓인 선반 높이가 내 키의 다섯 배도 넘어보였다.

굉장히 많은 책들이 있었다.너무 큰 책들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었는데 끝도 없는 듯 넓었다.

그 책들은 성경책과 주석들임을 알게 하셨다.

“성경은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번역과정에서 무리한 번역을 한 책들이 몇 권 있다.”

“어떤 번역이 잘 된 것인가요?” “English Standard Bible(잉글리쉬 스탠다드 바이블)이다.

King James Bible(킹 제임스 바이블)은 무리한 번역을 한 부분이 있느니라.”

사람들은 흔히들 King James Version(KJV)이라고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Version(버전)이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Bible(바이블)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지금도 의아스럽게 여기는 것은 내가 한국인인데 이번에도 한글성경을 말씀하시기 전에 영어성경을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예전에 초반에 천국에 데려오실 때에도 영어로 데려가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내가 미국 살아서인지…. 아무튼 이 부분도 때가 되면 알려주시리라 믿는다.

“한국어 번역은요?” “표준새번역이 현대인들에게 읽기 좋도록 번역이 잘 되었다.

그리고 개역개정도 무리없이 번역이 잘 되었느니라.”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 지역에서는 개역개정을 사용하는 교회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 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한국에 갔을 때에도 잠시 보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 읽어왔던 개역한글이 눈에 익었는지라 개역개정을 불편하여 안 보았는데 주님께서는 잘된 번역이라고 하시는 것이다.그래서 이번에 성경인용을 개역개정을 기반으로 옮겼다.

나의 왼쪽으로 보이는 선반에 놓은 책들은 주석서임을 알게 하셨다.

“주석들도 나의 영감으로 쓴 책들이니라. 칼빈과 박윤선 주석이 영감있게 쓰여진 책들이다.”

내 안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분들의 이름들이다.

나는 매튜 헨리 주석을 즐겨 읽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어느 누구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데려오실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내 머릿속이 텅빈 듯 해지는 느낌이다.

가끔 세상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이 천국가게 되면 이것저것 물어보라고 부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도 이번에 주님 만나면 이것 좀 물어봐야지 하며 잊을새라 메모까지 하건만 막상 천국에 이르면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천국에 오면 머리는 백지가 되어 오직 예수님만 보인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나의 전인격을 다루시어 하고픈 생각과 행동을 주시는대로 나는 다만 이끌려가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은 그런 곳이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자들이 오는 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할렐루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주님, 성경을 읽을 때 주석을 같이 읽어야 하나요?”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고 진열되어 있는 책선반 사이로 거니시면서 말씀하셨다.

“성경을 읽으며 반드시 주석도 같이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느니라. 주석을 같이 읽게 되면 더 깊이 있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을 읽어야 한다면 성경을 읽도록 해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내가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깨달음을 주리라. 특히 마지막 때이니 성경을 부지런히 읽도록 해라.”

 

“암송도 해야 되요?”

늘 성구암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으므로 확인받고 싶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두기만 하면 암송하지 않더라도 내가 기억력을 도와 꺼내어 기억나게 해 주리라.”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51-52

깨달음을 가지고 성경을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합당하신 때에 기억나게 하시고 꺼내어 쓰도록 도우신다는 것이다.

 

성경이야기를 예수님과 나누고 있자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사도 바울이었다.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지만 갑자기 보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주님, 사도 바울은 지금 뭐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도서관 멀찌기 오른쪽 끝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그가 지금 영감으로 책을 쓰고 있는 중이다.한 번 불러볼까? 바울아~.” 사도 바울 아니랄까봐 천국서도 책만 쓰고 있다 싶으니 웃음이 났다. 천국에서는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다.

책쓰기 좋아하는 사람은 책 쓰고, 찬양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찬양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은 맘껏 뛰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나라!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실 천국인 것이다. 할렐루야!

 

바울이 내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온 몸에 겸손이 배인듯 보였다.

나는 속으로 베드로를 부른 것처럼 “바울 아저씨”라고 부르려 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바울 선생님!”하고 부르면서 전에처럼 또 한 쪽 무릎을 꿇어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었다. 무릎꾾은 나를 일으키며 바울이 말했다. “일어나라 나도 사람이다.”

이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의 장면에 나오는 말씀이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사도행전 10:25-26

궁금증 풍부한 내게 또 하나 의구심이 일었다.

‘그 당시 베드로와 동시대를 살던 바울이 어떻게 사도행전이라는 이 성구를 알고 인용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일자마자 곧 지식이 임했다.

바울 뿐 아니라 모든 천국 백성이 이 땅에 성경을 천국에서도 읽고 연구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한다는 것이다.그러므로 바울은 지금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나를 일으켜 둘이는 그 곁에 있는 큰 책상에 기역자로 앉았다.

예수님께서는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책상모서리에서 우리 둘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선생님은 성경을 열 세 권이나 쓰셨죠?” 바울이 침묵하고 답을 안 했다.

처음 천국에서 이 대화를 할 때에는 그저 속으로 ‘참 겸손한 분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더 깊은 깨달음을 주셨다. 내가 바울에게 던진 그 질문은 참으로 주님 앞에서 당돌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도서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예수님께서 분명 “모든 성경은 영감으로 쓴 책”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바울에게 “성경을 열 세 권이나 쓰셨죠?”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그가 쓴 디모데서신을 인용하여 예전처럼 답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나를 배려해서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 앞에 서 계신 예수님 앞에 내가 민망할까봐 그는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이다.

진리를 밝히 드러내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영혼사랑이요 이웃사랑임을 그에게서 배웠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몸소 보여준 사도 바울! 사랑이란 이웃의 수치와 부끄러움까지도 감싸안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우선순위 아래 내 이웃의 마음을 얼마나 자주 아프게 해온 것인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사람에게는 감사치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 것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그것이 바로 아름답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주님께서는 나에게 이 교훈을 주시려고 그런 해프닝을 허락하신 것이다.   주님께 감사, 주님께 영광!

그리고 하나 더 깨닫는 것이 있다. 내가 왜 그 유명한 성경구절을 까먹고 망발을 했을까?

바울이라는 한 인간을 높인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오직 주님만을 높여야 하는데, 사람인 바울에게 절하며 그를 높이다가 그만 주님께서 내게 하셨던 말씀조차 잊게 된 것이다.

사람을 높이게 되면 자칫 둘 다 망하기 쉽다.

어리석은 나로 인해 바울은 본인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위기에 처할 뻔 한 것이다.

사람을 높이다가 자칫하면 죄를 짓게 됨을 가르치신 주님의 경계였다.

영광과 경배에 관하여는 털끝만큼도 사람과 나누는 것을 허용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한다.오직 주님 한 분만이 홀로 영광받으실 분이신 것이다. 할렐루야!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인 바울 선생님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약간의 침묵 후에 그가 입을 떼었다.

“나는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내 믿음을 지적하고 훼방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나는 내가 믿는 믿음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만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모조리 잡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 내 눈앞에 환상이 보였다.

로마의 한 거리였다.바울이 말을 타고 있었다.어느 집 문 앞에 한 그리스도인 여자가 서 있었다.바울이 그녀를 향해 채찍을 내리쳤다.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려 하자 곁에 있던 병정들이 그녀를 체포했다.내가 그 환상을 본 것을 알아차린 바울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때 이웃사랑에 대한 교훈 한 가지가 더 임했다.

주님 앞에 돌아와 변화된 사람에게 아픈 과거를 스스로가 말하기 전에 묻는 것이 얼마나 고통을 주는 것인지..

물론 천국에서는 아픔도 상처도 없는 곳이지만 이전의 과거로 인하여 느끼는 것은 이 땅에서와 동일하나보다.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자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빛된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 여겨진다.

상대가 부끄러워 할 일을 내가 나서서 일깨워주는 것은 나의 사랑없는 무례한 행동인 것이다.

 

사랑은..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내가 은혜받겠다는 목적하에 상대를 얼마나 많이 힘들게 했었던가.

그가 먼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묻는 무례함을 범치 않기를 소원한다.

 

바울이 부끄러움 가운데 더욱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내가 다메섹으로까지 그들을 잡으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내 눈앞으로 강한 빛이 쏘여왔다.”

속으로 ‘나도 빛되신 예수님 봤는데..’라고 생각하는데 바울이 내 속을 다 알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정도의 빛이 아니라, 너무 강렬해서 눈이 타는 듯하면서 내 폐부까지 찌르는 빛이었다.

나는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그 순간 그 빛이 신의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내 눈앞에 영화같은 장면들이 나타났다. 다메섹 길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무리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장면, 그리고 빛이 그에게 쏘이면서 그가 눈을 싸안고 말에서 떨어지는 장면, 주변 사람들이 뒹구는 그를 보며 놀라는 장면들이 보였다.

바울의 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빛에게 물었다.  ‘누구시나이까?’ 그 때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내가 네게 큰 일을 행하리라. 일어나 가라.’”

바울의 말이 끝나자 예수님께서 우리 둘을 향해 말씀하셨다. “바울과 너에게는 열정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이 나를 향한 열정이 될 때 그것은 큰 힘을 발휘한다. 나는 그것을 기뻐하노라.

그래서 내가 너희 열정을 보고 너희를 택했으며 너희를 사용하노라.”

그러시면서 둘의 머리에 손을 각각 얹어 축복의 안수를 해주셨다.

바울과 나는 겸손한 마음이 되어 머리를 숙여 안수를 받고 감사를 드렸다.

 

그 열정이 나를 향한 열정이 될 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미가 무언지 알 만하다.

우리 안에 있는 열정이 오직 주님께로만 향해야지, 어떤 사람을 향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현재 기독교 내에 이처럼 사람을 높이는 일이 만연하므로 예수님께서 오늘 이 일을 통해 엄중히 경계하시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 높여야 한다.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오직 주님만이 영광받으실 분이신 것이다.

 

바울은 쓰던 책을 계속 쓰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서 갑자기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면서 주님 음성이 들려왔다.

“휴거 직후의 장면이니라.”

고속도로 위의 차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망가져 딩굴어진 차들도 보였다.

그리고 한국의 한 골목이 보였다.내가 아는 사람이 헐레벌떡 골목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와이셔츠 바람에 몹시 당황하고 겁먹은 표정이었다. 말로 할 수 없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저 환경에서 건져주시겠다는 의미였다.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명하실 때에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행하실 일을 이미 예비해두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그리고 나서 나를 데리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셨다.

그리고는 내 머리에 안수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게 평안이 임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안수한 손을 거두지 않으신 채 손을 내미신 모습으로 점점 멀리 사라지셨고 나는 사라지시는 예수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사라지시면서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스르르 내 눈이 떠졌다.

 

 

열 두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3일 밤

 

천주교의 오류 Ⅰ

 

낮에 천국에 데려가셨던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것이 많으신지 밤에 또 데려가셨다.

이번에는 천국을 거치지 않고 곧장 지옥으로 데려가셨다. 지옥에 도착하자 밑도 끝도 없이 구약의 한 왕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가 지옥에 있냐고 내가 묻는 것이었다.

기실 내 마음으로는 그가 천국있든 지옥에 있든 별관심 두지 않았건만 나도 모르게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도 얼마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자 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생각해보아라. 부자가 왜 지옥에 있었느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겼기 때문이다.

그(왕)는 내가 준 지혜과 물질로 우상의 제단을 쌓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영광을 나누어 가지는 분이 아니시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2:8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일에 관해 확실하게 심어주시기 위한 주님의 배려였다.

도서관 해프닝에 이어 지금 또 구약의 왕을 통해 한 번 주지시키고 계신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아니,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늘 두 번씩이나 데려오시면서 반복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그리고는 곧 지옥에 있는 그 왕의 모습을 내게 보여주셨다. 그는 여전히 왕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옷이 말도 못하게 낡아서 누더기처럼 되어 있는 더러운 옷이었다. 그 옷을 입고 구부린 채로 무언가를 등에 지고 나르고 있었다. 그 등에 진 것을 어디론가 퍼 나르는데 그 짐을 부린 곳을 보니 보석을 만드는 광석이 태산처럼 쌓여져 있었다.

그 광석들을 이리로 다 나르고 또 다 옮기고 나면 다시 반대편으로 나르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그 왕이 지녔던 보석을 만드는 광석이 그에게 지금 짐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잠시 쉬는 시간 같은 때인지 그가 의자에 앉았다.

왕의 보좌를 나타내는 모양의 의자였는데 썩은 나무로 만든 듯 형상만 그럴 듯 해 보이는의자였다.

그가 그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은 팔걸이에 올려져 자동으로 쇠착고로 묶여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눈은 해골의 눈처럼 쾡해져 있었다.  두 눈이 쪼아먹혀서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지 않고 헛된 일에 쓸 때, 우상을 섬긴다든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쓸 때 이처럼 크나큰 이중적 형벌을 받게 됨을 보며 나는 두려움으로 몸이 떨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여주신 후 나를 다시 천국으로 이끄셨다.

상급집에 도착해서 집앞 풀밭에서 예수님과 잠시 뛰고 쫓고 장난치며 놀다가 다시 예수님께서 크고 흰 건물로 데려가셨다.

큰 성전에 들어선 내 복장이 세상에나… 왕비복이었다!  옷도 좀 더 멋진 옷이었고 왕관도 미스코리아 왕관같은 거였다.

그리고 서 있는 모습도 이전의 보좌를 향해서 서 있던 모습이 아니라 만조백관들과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을 그런 모습으로 자세히 보게 된 것은 천국에 데려가신 이후 처음이었다. 이제야 저에게 그들에 관해 물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주님, 전 저분들이 항상 궁금했어요.

뭐하는 분들이에요?” “이십 사 장로들이다. 저들은 찬양하고 예배하며 주를 높이는 자들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기꺼이 하며 섬기기를 즐기는 자들이다.

그들 외에도 나를 자원하여 섬기기 원하는 자들이 그 자리에 참여해 있다.”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신 채 말씀하셨습니다.

마주해 있는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과연 이십 사 장로들이 이전에 아브라함이 탔던 황금휠체어같은 황금보좌를 타고 앉은 채 나를 보고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황금보좌는 바퀴가 있지만 움직일 때에는 스르릉하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12명이 두 줄로 나란히 서기도 하다가 24명이 한 줄로 나란히 서기도 했다.

그들은 아름답고 밝고 멋진 옷과 화려한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 또 다른 아름다운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옷과 면류관의 빛깔과 크기는 이십 사 장로들보다 조금 덜 밝고 작았다. 그러나 그들 또한 그 모습 그대로 너무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천국은 욕심없는 곳,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자족하고 만족해하며 행복해 하는 곳이다.

 

나는 소리높여 찬양하기 시작했다.

 

♬ 나를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양하겠네  온 땅이여 주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나는 저음이고 찬양에 자신이 없는데 천국에서는 어쩌면 그리도 아름답고 높게 잘 부르는지.

이 또한 성령님께서 나를 주관하고 계시는 것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내 찬양이 끝나자 그에 화답하는 이십 사 장로팀의 화답송이 있었다.

 

♬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리고 나서 성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다.

빛의 형상으로 보좌에 앉으시는 그 분을 뵈옵는 순간 그 큰 성전 전체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외심과 겸비함이 충만하게 넘쳤다.

하나님의 음성이 성전 가득 우렁우렁 울려퍼졌다.

“너의 충성됨을 내가 보았노라, 너의 충성됨을 내가 인정하노라.”

나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스스로 나 자신이 충성되다고 도무지 생각되어지지 않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인가 의아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내 속 생각은 그러하건만 내 입에서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왕비복을 이쁘고 차려입고 곧게 선 상태에서 두 무릎만 구부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곱게 숙이고 두 눈을 내려깔고는 두 손은 양옆에 가지런히 내려뜨린 채 이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나이다.”

아니 아니...평소의 나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나였다!

순전히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나타내시는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자태였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이 참 많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기를 소망한다.

사람이 어떻게 보든지 개의치 않고 오직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인정하시는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날개달린 천사들이 날면서 찬양하기 시작했다.

 

♬ 온 세상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우렁우렁거리며 들렸다.

“저것을 책의 제목으로 삼으라.”『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이 책의 제목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가리라! 구름타고 가리라!”

그리고는 나에게 명하셨다.“너는 나의 살아있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

나는 다시금 큰 경외심으로 무릎과 고개를 숙이며 아멘으로 화답드렸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고 있었다.“주님, 마귀가 나를 괴롭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꾸짖듯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준 믿음의 명패를 잊었느냐? 그것을 사용할지어다.”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저절로 지극히 작은 자의 겸손한 마음이 되어 다시 “아멘..”으로 답했다.

내게 들린 하나님의 음성은 마치 한 달란트를 받아서 쓰지 않고 땅에 묻은 좋에게 하시는 책망처럼 들렸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사용치 않고 묻어두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심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마귀에게 눌리지 말고 자유하게 살라고 선물을 주셨는데 쓰지 않고 신음하고 있음을 안타까이 여기셔서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뵌 후 예수님과 나는 그곳을 나와서 손을 잡고 황금길을 거닐었다.

나는 여전히 왕비복을 입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호려한 면류관과 빛나는 옷을 입고 계셨다.

예수님의 그 옷을 이제부터 왕복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예수님은 왕복을 입고 나는 왕비복을 입고..너무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니는 왕과 왕비..   어디 비단 나 뿐이겠는가.

모든 예수님의 신부들이 나처럼 왕비가 되어 천국에서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닐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막 걷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가 당분간 너를 보지 못하리라..” 헉...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게는 그 말씀이 나를 더 이상 천국으로 데려오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렸다. 물론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 말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하지만 겪어내야 하는 일이리라. 예수님께서 지금 계획 가운데 나를 만나고 계신 것이므로.

떨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달래며 물었다.  “얼마 동안이요?”

예수님께서 짖궂은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짧게 대꾸하셨다.  “하루만!”

크...예수님께서 나에게 거신 조크였다!ㅎㅎㅎ

오늘 기도모임이 있는 이 하루 동안 나를 천국으로 데려오시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며 걸은 장난이었다.너무 우스워서 막 웃었더니 예수님도 함께 막 웃으셨다.

왜 그런 장난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아까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꾸중들은 것으로 시무룩해져 있음을 아시고 나를 달래주시려는 예수님의 자상하신 배려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그 조크 한 마디로 나의 주눅들었던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신 것이었다.

내가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이런 일들이 지난 내 삶 속에 얼마나 많았던 것일까 싶은 것이 콧등이 시큰해온다.

힘겹고 주눅들고 시무룩할 때 마다 안타까와 하시며 나를 즐겁게 하려 애써오셨을 예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여전히 예수님과 손을 잡고 양옆에 꽃들이 즐비하게 있는 황금길을 천천히 거닐었다.

“예수님, 저랑 대화하는 게 좋으세요?” 갑자기 내가 예수님께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스러운 듯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청종하는데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내게 기도하며 사랑한다고 하고 내 음성 듣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응답이라는 이름으로 내 음성을 들려주려고 한다. 근데 막상 사랑한다고 기도하고는 정작 내 음성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려 하질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다시 되돌아가 버린다. 그런데 너는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말을 청종하잖니. 내가 너에게 자꾸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니?”

주님의 이 말씀은 나를 칭찬하기 위함 보다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주님 자녀들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임을 읽는 분들은 아시리라 믿는다. 기도한 이후 나타내는 우리들의 태도를 보시는 주님의 안타까움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시고 응답해 주시길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만 하소연처럼 털어놓고는 주님의 답변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며 더욱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대화하실 것이다.

 

내 마음에 감사함이 차오르면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안수하셨다.

“네가 나를 청종하므로 내가 너를 높이 세우리라.” 그러시고는 나를 일으키시고 곁에 있는 꽃을 하나 드시는 듯 했다.

그런데 어느새 예수님 손에는 꽃 화환이 들려 있었다.

그 화환을 마주 선 내게 씌워 주시고는 나를 꼭 안으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나의 왕비여...”

 

마주 서서 안고 있는 우리 머리 위로 갑자기 어디선가 새들이 나타났다.

연한 하늘색과 흰 빛을 띈 새들의 무리가 일렬로 둥근 원을 그리며 돌면서 지지배배하고 지저귀는 것이었다.그 지지배배가 “찬양하라”라는 의미의 천국말로 들려왔다. 새들이 천국말로 짹짹거리며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머리 위로 돌던 그 새들이 막 빨리 도니깐 하나의 원이 되어 화염검과 같은 빛이 났는데 그것을 영적으로 “영광”이라 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뿐 아니라 옆에 있던 강가의 물고기들조차 팔짝거리며 물위로 튀어오르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마치 예수님과 내가 남녀 주인공이 되어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아름답고 놀랍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나는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예수님께서는 내 손을 잡고 계속 걸으셨다.

그 길 끝에 있는, 이전에 엄마 집을 보던 낮은 언덕으로 올라와 예수님과 내가 앉았다.

아래로 빛이 희미한 엄마집이 있는 지역이 보였다.

“주님, 엄마는 주님이 허락지 않으셔서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허락지 않아서가 아니고 그들 스스로가 겸비하여져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입을 가리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저…엄마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엄마를 다시 보고싶었다. 그 말이 떨어지고 곧 엄마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엄마를 다시 또 보았음에도, 그리고 간만에 만남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재회의 감격같은 것은 없었다. 정말 신기한 노릇이었다.

엄마를 지극히 사랑하는 나였음을 주님이 잘 아시는데 내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나의 태도인 것이다.

이산가족이 만났듯 울며불며 얼싸안고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아도 부족할 판인데 말이다.

그저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운 호감의 마음 정도였다.

 

“엄마, 말씀 좀 해보세요.”

 

엄마는 나를 미소로 바라보시면서도 말씀을 하지 않으 채 가만히 내 손을 잡으셨다.

그 순간 엄마가 하려는 말이 나에게 전달되어졌다.

“얘야, 내가 너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단다.네가 와서 난 기쁘다...”

사람 생각으로는 엄마의 이런 말을 들으면 감격에 젖어 서로 얼싸안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분명 성령께서 나를 주관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였다. 그것은 결코 내가 떠올린 생각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모든 일을 계획 가운데 엄마를 만나게 하셨고 그 다음 마리아를 만나게 하시려는 것이다.

 

내 삶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가 믿는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무대에서 주께서 허락하신 만남과 대화를 하고 또 주님 뜻 가운데 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내 뜻과 내 감정과 내 바람대로 고집을 부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님의 계획과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가령 내가 지금 상황에서 엄마랑 더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가지 않으려 한다면 아마 더 이상의 천국기행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곧장 지상으로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께서 나를 온전히 붙들고 계시므로 이 모든 일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마리아는 어디 있나요?”

내 마음으로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대로 「성모 마리아」를 떠올렸는데 실제 입으로는 「마리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는 마리아가 성모가 아닌 그냥 인간 마리아일 뿐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경배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려는 주님의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저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느니라.” 나는 그리로 이동되어졌다.

이동이라는 표현 그대로 어느 새인가 학교건물 같은 곳 앞으로 와 있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에서 그 다음 세트를 찍기 위해 다음 세트장으로 완전 옮겨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얗고 네모난 단층 건물은 몇 칸으로 나뉘어져 숱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문 앞에 몇몇 여자들이 서 있었다. 제일 왼 쪽에 어린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를 바라본 순간 그녀가 마리아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상하고 해사한 얼굴, 갸름하고 어여쁜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오른 손을 들어 그녀를 향해 “할렐루야!” 하고 외쳤다.

그녀도 나를 미소로 바라보며 아기를 안은 채 “할렐루야!”하고 답하고는, 예수님 앞에 두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경의를 표했다.

예수님께서 일러주셨다.

“저가 낙태아들을 돌보고 있느니라. 세상에서 함께 지내던 여자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문 왼쪽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가 마리아, 문 오른 쪽으로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녀들 중 한 명이 요안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알려 주시지 않아 모르겠다.

그 두 명도 아기들을 안은 채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어 주었다.

 

요안나(Joanna) 뜻: 하나님의 은사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눅8:3).

그는 물질로 주님을 도왔고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는 그 시체를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여 무덤을 찾아간 여인중의 하나였다(눅 24:10)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성경인명사전)

 

주님께서 다른 한 명을 알려주시지 않은 이유는 그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아 알려주어도 내가 모르기 때문이라는 지식을 주셨다. 더더욱 희한한 것은, 두 명 가운데 요안나의 모습만 선명하게 기억나고 한 명은 희미하게만 느껴지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 또한 내게 필요한 지식만은 주시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요안나의 모습은 조금 퉁퉁해 보이고 볼살이 좀 있어 보였다. 세모난 얼굴형에 키도 적은 키로 볼 수 없는 체구였다.

 

내가 마리아에게 물었다.

“마리아님, 천주교에서 당신께 ‘마리아여 빌으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로서는 도무지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이었다. 상당히 심오한 질문을 하게끔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이다.

마리아의 입으로부터 거기에 대한 답을 이끌어내고자 질문을 던지게 하신 것이다.

그녀는 좀 난처한 표정, 다시 말해 예수님께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그래서 늘 나의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다.  저들이 잘못 알고 있으나 천국에 오게 되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천국에 오게 되면”

 

이 말은 모든 천주교인들이 천국에 오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성령께서 일러주셨다.

천주교인들 가운데 주님께 속한 자들만이 천국에 오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마리아를 만나기 전에 지옥에서 구약의 한 왕을 보게 하시고 엄마를 만나게 하신 이유를 이제 알게 하셨다.

구약의 한 왕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우상을 겸하여 섬기다가 지옥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마리아라는 사람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처럼 사람을 겸하여 섬기게 되면 천국이 아닌 지옥에 가게 됨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엄마가 내게 하셨던 말 “너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단다.”

이 말은 천국에 있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모두 세상에 남아있는 믿음의 가족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묶어주실 때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고 살다가 천국에 이르서서 확연히 깨닫게 되면서부터 저절로 자발적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마리아 뿐이 아니므로 마리아를 지목하여 “마리아여 빌으소서” 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천국에 있는 엄마에게 나는 한 번도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고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나를 주님께로 이끄신 것이다.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기도부탁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십 사 장로들에게 오히려 기도부탁을 하셨었다.

그렇다면 천주교에서도 마리아에게 뿐 아니라 이십 사 장로들에게도 이런저런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예수님께서 그녀를 위로하듯 그 머리에 안수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볼 때마다 안수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예수님의 모친으로서 당했던 고난에 대한 주님의 위로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본인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당하는 난처함에 대한 위로인 것이다.

안수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내가 예수님의 다른 손을 내 머리에 얹으며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말하는 것이었다.

“저도 축복해주세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흐뭇한 표정으로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셨다.

“너의 욕심이 나를 기쁘게 한다. 갑절의 축복을 받을지어다.”

그 순간 축복의 안수를 받고 있던 내게 큰 기쁨이 넘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안수하시는 것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격이 현격히 다름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성모라는 호칭은 천국 어디에도 없으며 결코 그렇게 불러서도 안 됨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뿐 아니라 나와 마리아가 함께 같은 레벨로 안수를 받도록 하셨다. 결국 마리아는 성모가 아닌, 추앙의 대상이 아닌, 나와 동급의 성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과 아기를 예로 들어보자.

시험관 아기란 여러가지 이유로 정상적인 분만이 어려운 부부의 난자와 정자를 시험관내에서 수정시켜 아기를 얻고자 하는 방법이다. 이틀 후 2-8 세포기의 배아가 되면, 혹은 포배기 배아가 될 때까지 기다려 그 배아를 가는 관을 통해 자궁 안으로 주입하게 된다. 시험관에서 만들어진 성숙한 배아가 원래의 난자의 주인인 엄마의 자궁에서 남은 기간 자라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시험관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배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래서 그 아기가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하자.그럴지라도 그 시험관을 엄마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예수님을 지상에서 그 태에 모셔서 세상에 내어놓은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열 두 살의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원래의 아버지를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누가복음 2:49

 

천주교 내에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남을 주선하고 계획가운데 이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때였다. 나와 대화를 하고 있던 마리아 뒤편으로 테레사 수녀가 보였다.

세상에서 본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무지 많았었다고 기억된다.

그런데 천국에서 본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없는 화사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머리에 아름다운 면류관이 씌워져 있었다.

그녀가 어린아이를 걸음마시키듯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가 몸을 일으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세상에서는 잘못 알고 마리아에게 도고를 부탁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천국에 와서 보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막달라 마리아!그 여인이 갑자기 보고싶어지는 것이었다.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는 어디 있나요?”

예수님께서 왼편 건물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굶어죽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단다.”

천국에서는 성구분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예수님께서는 여자라고 해서 “그녀”라고 부르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자던 여자던 우리 모두는 성 구분이 없는 예수님의 신부일 뿐이다.

왼편으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우리 쪽에서 등을 돌리고 있던 그녀가 그 순간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약간 통통한 잘 생긴 얼굴이었다.

그녀 곁에 무수한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대부분이 소말리아 같은 빈민국가에서 굶어죽은 아이들이며 또한 북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그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넘쳐났다.

세상의 악한 어른들로 인해 고통당한 어린 영혼들을 주님께서 이처럼 거두어 주시는 것이다. 고마우신 주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궁금증이 피어났다.

“주님, 이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곳에서 양육을 받게 되나요? 천국에서도 아이들이 세상에서처럼 성장하나요?”

마리아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아이들은 예수님 나이인 33세까지 이 곳에서 성장하게 된단다. 그리고는 각자의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되지.”

그때 왜 이런 생각을 주셨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맹의순 선생이 떠올랐다. 환상으로 본 그의 짧은 스포츠 머리가 기억나면서 한 가지 더 물었다. “천국에서 머리 손질은 어떻게 해요? 이발소가 있나요?”

예수님을 위시한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질문을 한 저를 많이 사랑스러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매사에 서툴고 호기심많은 외국인을 대하는 듯한 호감으로 절 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또한 저를 사랑스럽다는 듯 보시며 말씀해 주셨다.

“천국에도 이발소가 있단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막 죽어서 천국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당황함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들어 둔 것일 뿐이다.

천국에 오게 되면 머리 깎을 필요도 없고 미용실에 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천국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당황할 이들을 위해 준비해두신 주님의 자상하신 배려라는 것이다.

 

건물 안을 들여다 보았다.

하얗고 큰 교건물 같은 내부에 올망졸망 앉은 이쁜 어린이들 앞에 베드로가 서서 양손으로 유머러스한 제스처를 써가며 설교같은 것을 신나게 하고 있었다. 듣는 아이들은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바라보는 나에게도 한없이 뿌듯한 행복감이 넘쳐나는 것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좋은 천국이다!

잠시 후 깨어난 나는 아직도 그 감격과 아름다움에 몸이 짜릿짜릿해지는 것이다.

천국은 아름답고 고상한 곳이다.

그저 한 단어로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그런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 내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영원히 맘껏 누리고 살 것을 상상해 보라!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66:22

 

 

열 두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3일 밤

 

천주교의 오류 Ⅱ

 

주님께서 천주교 안에 있는 많은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고 싶어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사건이 오늘 생겼다.

참으로 치밀하시고도 섬세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오늘 행하시어 나로 하여금 이 제목에 걸맞는 설명을 부연토록 하셨다.

나는 다만 도구로서 그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나의 주장을 넣은 것이 없고 오직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셔서 보여주신대로 기록할 따름이다.  아래는 그 기록이다.

 

*****************************

 

2007년 9월 14일 오전 6시 30분경

 

오늘 새벽 컴퓨터를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불편한듯 느껴지면서 기도해야 된다는 절박감을 주셨다.

그러더니 입에서 저절로 기도가 강하게 나오면서 온몸에 진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이전에 천국을 데려가실 때와 같은 증상임을 알게 됨과 동시에 주님께서 나를 천국에 데려가셨다.

 

천국 입구에 들어선 저의 모습은 4,5세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였다. 예수님께서 세마포를 입으신 모습으로 나를 반기셨다.

예수님의 왼 손으로 내 오른 손을 잡고 두어 발자욱 걸으시다가 나를 예수님의 왼팔에 안아 올리신 채로 오랜 만에 보는 하얗고 큰 건물 안의 성전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셨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있던 큰 방으로 데려가시어 드레스와 왕관을 입히셨다.

성전 보좌가 있는 쪽 가까이에 나는 무릎꿇었고 예수님은 서신 모습으로 오른 손으로 축복하시듯 가만히 나의 머리에 손을 얹으셔서 안수하셨다.

“예수님, 오늘 무엇을 알려주시려고 저를 이렇게 또 데려오셨나요?”

예수님께서 저의 어깨를 감싸안고 걸으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부터 천주교의 오류에 대하여 써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내가 말한대로 너에게 감동을 주어 알려주기 위하여 널 데려온 것이니라.” “예수님, 마더 테레사에 관한 기사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직접 물어보려므나. 가서 보도록 하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우리 둘이는 어느새 이전에 제가 보았던 학교 건물앞에 서 있었다,

마치 그 건물을 향해 축지법처럼 확! 달려든 것처럼 가게 된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등을 돌리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가 우리를 향해 등을 돌렸다.

테레사 수녀와 내가 마주보고 서 있고 예수님은 조금 떨어져서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고 계셨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영어로 “Praise the Lord"(프레이즈 더 로드: 주님을 찬양하라)라고 했고,

테레사 수녀도 역시나 미소띈 얼굴로 “Praise the Lord”라고 화답했다.

여전히 얼굴에는 주름이 없는 환한 얼굴이었는데 분홍빛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면류관이 아닌 세상에서 쓰던 대로 수녀모자같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천국에서는 각자 자기 편한대로 살기 때문에 베드로가 귀찮아서 면류관을 안 쓰고 다니듯이 테레사 수녀도 자신이 세상에서 쓰던 수녀복을 즐겨 입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복을 즐겨입던 저의 엄마도 늘 한복차림이었다.

 

“신의 부재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말해주시겠어요?”

“나는 알다시피 숱한 봉사를 해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 안의 영혼의 공허를 늘 느끼고 있었다.

때로는 이런 봉사만으로는 천국에 이르지도, 주님을 만날 수도 없다는 위기감을 자주 느껴왔단다.

그런 부분에 대해 내가 글로 썼던 것을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에 맞추어 이런저런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이제 내가 천국에 와서 알게 된 것은 나의 그 공허가 왜 생겨났는지이다.

내가 기도를 할 때 한 편으로는 마리아에게 구하고, 한 편으로는 예수님께 기도드렸지.

마리아에게 구할 때에 느껴지는 성령님의 안타까운 심령,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자리에 마리아를 두는 데에서 오는 공허감이었음을 알게 되었단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그 중심을 받아주시고 인정해주시어 그 은혜로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란다.”

 

내가 고개를 왼 쪽으로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수님, 이 시점에서 마리아도 한 마디 말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속으로 “말씀”이라고 하려 하는데 입에서는 “말”이라고 표현되어졌다.

이 역시도 마리아에게 “말씀”이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내 입술을 주장하신 것이었다.

 

마리아는 건물 안에서 여전히 낙태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기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는데 계속해서 지상에서 올라오는 아기들을 속속 안아서 차례차례 눕히느라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 곁에 여자들이 함께 돌보고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의 이름이 안나와 수산나임이 절로 알아졌다.

마리아 곁의 안나는 마리아의 모친 안나임을 일러 주셨다.

 

안나(Anna) :은혜

[1] 아셀지파 바누엘의 달인데 결혼 7년후에 남편이 죽고 즉시 성전에 들어가서 84년간 봉사하고 있는 중에 아기 예수를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2:36-38). 신약 성경에서 가장 오래 장수 하였다.

[2]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모친 안나는 전설에 의하면 베들레헴 사람이며 제사장 마단의 딸이다. 형제를 두었는데 하나는 엘리사벳의 어머니 세례 요한의 할머니다. 희랍교회에서는 4세기경 부터 안나 숭배가 시작되었다.

 

수산나(Susanna) :백합화

예수를 신종하는 여자로서 소유로 주를 봉사하였다(8:3).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성경인명사전)

 

내 마음에 그녀들의 마음이 전달되어져 왔다.

그들은 올라오는 그 아기들을 향해 가슴 깊이 눈물을 흘리는 듯 아파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마리아가 돌아서서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얼마 전에 제가 성당에 다니는 한 자매와 변론하는 것을 보셨지요?

그때 그녀가 제게 말하기를 마리아가 부활 승천했다고 하던데 거기에 대해 좀 이야기해 주세요.

”이전에 보였던 것처럼 마리아는 다시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말을 시작했다.

“나는 세상에서 육체가 죽었고 내 영혼이 부활하여 승천한 것이 맞단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예수님을 섬기던 베드로나 바울이나 모든 이들이 동일하게 겪은 것이지 나에게만 특별하게 지칭되어질 일은 아니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금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살다가 죽는 자들이 동일하게 체험할 일이란다.

그 육체는 죽고 그 영혼이 예수님처럼 부활하고 승천하여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

“그럼 천주교에서는 왜 유독 마리아에게만 부활승천설을 말하며 신격화하는 건가요?”

“그것이 바로 사단의 계략이란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이후 세울 일에 대해 전략적으로 하나의 우상을 세울 필요를 느꼈지.

그 일을 위해 사람을 신격화하는 일에 나를 세운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대신 사람을 섬기도록 미리 세뇌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나는 그 누구보다 천주교를 신봉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있단다.”

 

그 때 고개를 돌려 예수님을 향해 내가 물었다.

“주님, 얼마 전 교황이 했던 발언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왜 그런 말을 한 건가요?”

얼마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가톨릭 교회만 참된 교회라고 한 발언에 대해 드린 질문이었다.

이 부분에 관해 예수님께서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세계정부를 세우기 위한 사탄의 전략 중 하나이다.

천주교는 이제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앞두고 그를 비호하고 돕기 위해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도 적그리스도를 섬기도록 하기 위한 우상의 사전 연습으로 두었던 것이며, 이제 세계정부를 세우는 데에 힘을 모으기 위해 로마 가톨릭만이 교회라는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예수님의 발 아래 털썩 주저앉아 간구했다.

 

“주님…천주교에 속한 영혼들을 구원해주소서…!”

 

예수님께서 저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게 속한 영혼은 단 한 영혼도 잃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너는 부지런히 이 책을 그들에게 전하여라.

내가 이 글을 읽는 나의 백성들의 마음을 주장하여 그들을 건져낼 것이니라.”

 

이제 내려가야 함을 느꼈다. 나는 예수님과 더 오래 머물러 있고 싶었다.

그래서 질문을 막 더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되질 않았다. 나는 다시 지상의 육체로 돌아와 있었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

예수님께서는 천주교의 오류에 대해 말씀하시고자 잠시간 나를 데려가셨던 것이다.

주님의 단호한 이 결단은 나로서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지는 일이다. 나로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글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는 단 한 마디의 격려성 말씀조차 없이 천주교의 오류에 대해 두 편에 걸쳐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분노할 천주교인들에게 혹독히 당할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주님은 내 걱정을 전혀 안 하시네?’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 주신 깨달음이 있었다. 현재의 나는 죽으면 천국이 예비되어 있는 자이다.

그런데 현재 천주교 내에 있는 영혼들 가운데 “마리아여 빌으소서, 성모님~”하고 있다가 죽으면 지옥간다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잃은 양에게 있는 것이다.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을 알게 하셨다.

그 주님 마음을 알고 나니 죽음도 핍박도 두렵지가 않다.

나는 단지 그 일을 위해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리」로 쓰임받은 것 뿐이다.

부디 주님 음성을 듣고 돌이켜 천국에 이르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린다.

 

 

열 세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5일

 

사도 요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도가 끝나면서 예전처럼 기름부음이 마냥 쏟아졌고 내 머리가 휘융~ 도는 듯 사로잡히더니 금새 천국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는데 그 가운데 사도 요한과의 만남에 관하여만 쓰도록 하셨으므로 순종했다.

예수님께서 기진맥진한 나를 누이신 곳은 상급집의 풀밭이었다.

나를 부축하셔서 곁에 있는 시내에서 물을 떠서 마시우고 얼굴에도 적셔주셨다.

“단 물을 마셔라.” 그 물을 마시고 그 물이 얼굴에 적셔지니 신기하게도 기운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힘겨웠다.

내가 지쳐있게 된 것은 주님께서 지옥으로 데려가셔서 이단의 괴수였던 어떤 사람에 관하여 몹시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다른 지옥의 장면과는 달리 그 장면을 볼 때 퍽이나 몸과 마음이 힘이 들었다.

평소에는 천국에 오면 회복이 금새 되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을 정도로 힘겨운 것이다.

왜 이처럼 힘이 들었는지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려주시지 않아서 모르고 있다.

 

예수님께서 다시 나를 부축하셔서 집안으로 들이셨다.

“우리 맛있는 거 먹자.” 소파에 나를 앉히시고 포도 한 알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나는 그것을 받아 먹었는데 더 이상 먹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이 너무도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그런 바람을 아시고 다시 나를 부축하여 침대에 데려다가 누이셨다.

그리고는 책장에서 성경책을 가져다가 내 머리를 예수님의 무릎에 누이시고는 앉으신 채로 성경을 읽어주셨다.

꺼내어 읽어주신 대목은 요한복음 14장 1절과 2절 상반부였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한복음 14:1-2

 

성령의 권능을 받고 능력사역을 하다가 주님을 배반하고 죽은 후 지옥에 가 있는 한 사람을 보고 힘들어 하는 내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었다.

그리고는 연이어 모세의 홍해바다 사건을 읽어주셨다.

나는 당시에는 왜 많고 많은 사건 중에 그 사건을 읽어주신 건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무엇 하나 그냥 하시는 일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시다.

의도를 가지고 그 부분을 내게 읽어주셨던 것이다.그 내용에 관하여는 뒷 부분을 읽으면 상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요한계시록의 뒷 부분에 있는 천국에 대한 내용을 읽어주셨다.

예수님께서 그 대목을 읽어주시는데 갑자기 내 마음에 생기가 돋으면서 동시에 사도 요한이 떠올랐다.

그를 생각하자 마음에 기쁨과 생기가 더욱 넘치는 것이었다.

 

“아, 사도 요한! 사도 요한이 보고싶어요! 그 분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

 

내 입에서 말이 나감과 동시에 지식이 임했다. 그의 집은 삼층천에 있으며 그는 현재 집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를 오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가 한 번 가볼까?”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아름다운 천국의 가장 아름다운 지역인 삼층천을 향해 날아가시는 것이었다.

한참을 날아가니 어제의 그 들판과 낮은 산 그리고 하얗게 둘러쳐져 있는 길게 늘어진 하얀 담이 보였다.

사도 요한의 집은 더 깊은 안쪽 골짜기에 있었다.

일층천이나 이층천처럼 이곳에도 각자의 상급에 따라 빛의 밝기와 집의 규모나 모양이 달랐다.

그간 깨우쳐 주신대로 말하자면, 상급이 크면 클수록 지역에서 안쪽 깊숙이 집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처럼 영혼의 내면에 주님의 사랑이 충만한 자들일수록 뾰족탑이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의 영성에 따 집의 빛의 밝기가 더욱 밝은 것이다.

사도 요한의 집이 그러했다. 큰 성곽 전체가 그의 집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온통 화려한 보석으로 지어진!

거기에 그 집 내부전체로부터 강하고 밝은 빛이 외부로 비쳐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장엄 그 자체였다.

내가 너무도 엄청난 장엄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더니 예수님께서 곁에서 말씀하셨다.

“그의 맑고 깊은 영성으로 인해 나오는 빛이다.”

 

그곳에 들어가고 싶다고 주님께 조르지 않았다. 내 스스로도 감히 그런 말이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이제 깨닫게 되는 바, 당시 내 자신이 그런 빛을 감당할만 하거나 그 실내를 볼 수 있을만한 믿음도 영성도 갖춰져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가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던 것인지, 그리고 엄마가 사는 지역인 일층천 사람들이 왜 밝은 빛이 있는 이곳으로 오지 않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와는 달리 그 분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의 육체를 떠난 영적 존재로서 천국백성이 된 분들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천국백성이 되면 저절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동입력되는 것이 첫째로 겸비함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 지니게 되는 기본 마음 바탕이기 때문이다.

 

본인들의 교만과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세상에서 살다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오고 보니 쉬운 말로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자신에게 무시와 외면을 당하면서까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너무도 황홀하게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겠는가!!   얼마나 부끄럽고 죄송하겠는가!!

너무 기가 막힌 일을 당해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을 때 「유구무언」이라는 말을 쓴다.

그 상황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본인들의 세상에서의 삶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다시 말해 천국백성의 겸비함으로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전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세상에서 쌓은 적이 없으니 그 영성의 빛의 밝기가 환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영화에서 보면, 미천한 백성이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린 채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거나 왕이 있는 자리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장면들을 보게 된다. 그와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스스로 빛이 환한 곳에 오지 않는 것도 천국백성이 지닌 겸비함으로 인한 것이다.

자신의 행한 상급과 행실에 따라 영원한 등급을 가지고 살게 되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것이 또한 행한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공의인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이 땅에서 불신자로 살면서 남부럽지 않은 재산과 자녀의 복을 누리며 살다가 죽음에 임박하여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 분들은 무슨 복에 누릴 것 다 누리다가 갈 때도 천국을 가시는가..’ 싶었다.

지금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처리하심을 알게 되었기에 전혀 그분들이 부럽지 않다.

일찍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당한 모든 고난과 수고를 주님은 결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상급으로 갚아주시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박해를 받는 것도 상급이 쌓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

그래서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에구..고마우신 분 같으니라구..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나를 핍박해줘서 상급쌓게 하시네..’

이런 말을 하며 즐겁게 핍박을 받는 거 어떠하신지.^&^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즐겁고 기쁘게 겪기로 하자.그것은 주님의 명령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1-12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사도 요한의 집을 향해 멀찍이 마주 선 상태에서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셨다.

“요한아~.”   천국은 이처럼 나지막하게 불러도 다 들리나보다.

그러자 사도 요한이 버선발로 나오듯 달려 나와 예수님 발 앞에 경외심과 사랑에 겨워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손에 입을 맞추고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추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여태까지 만났던 성경인물 가운데 누구도 이처럼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뜨겁게 표현한 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아주 적극적이었다. 사랑이란 표현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표현하셔서 그 아픈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이다.

사도 요한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배우고 있었다.

그 사랑을 깨달았던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서 계속 그 사랑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16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18

 

사도 요한이 예수님 곁에 서 있던 나에게도 다가와 허리를 숙여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나에게는 마치 꼬마 숙녀에게 어른이 입을 맞추는 듯한 사랑스러움이 담뿍 배인 태도로 그리하는 것이었다.

인자하고 훤한 달덩이 같이 생긴 사도 요한에게 나는 하염없는 존경심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저절로 그에게 스르르 다가가서는 그의 심장 부분에 내 귀를 갖다 대며 안기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 모습이 바로 사도 요한이 지상에서 예수님께 표현했던 그 사랑의 모습인 것을 알았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요한복음 13:23

 

사도 요한이 나를 안고 나의 이름을 불렀다.

“소리야.”   헉..소리라고??  「소리」는 인터넷 블로그에 쓰는 내 닉네임인데?

내가 놀라서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께서 미소띄신 채 긍정의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는 사랑이 많은 자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므로 내 마음을 그도 이미 알고 그가 그 입으로 내 말을 한 것이니라.

내가 너에게 「소리」라고 할 마음을 준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너의 이름을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소리」라고 하라.

너는 내 말을 전할 「소리」니라.”

세상에 사는 동안의 내 이름이 「박소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도 요한이 주님의 마음을 미리 알아 내 이름을 먼저 부른 일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게 되면 우리 또한 사도 요한처럼 주님의 말씀이 내 입에서 대언되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어떤 은사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과 내가 하나되면 은사는 저절로 나타나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그러셨고 사도 요한도 그러한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한복음 14:10

 

사도 요한에게 말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누가복음이지만 초신자들에게는 요한복음을 잘 권해요.”

그 말을 들은 사도 요한이 조금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나는 그 글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이신 것과,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과, 말씀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전하기 원했다. 그러나 글 주변이 짧아 그 만큼밖에 전하지 못한 거란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복음 21:25

 

“계시록을 기록할 때 밧모섬에 계셨죠?

나는 계시록을 읽을 때 끝 부분에 있는 천국 이야기는 너무 기쁜데 중간에 있는 환난 부분은 참 많이 두려워요.”
“나도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심히 두렵고 떨림이 있었단다.”

“성령받은 사람들도 환난을 당하나요?”
“주님을 사랑하는 자 그리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환난을 겪더라도 아주 가볍게 겪을 것이며 그리고 7년환난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7년환난 직전에 그들 각자를 동시에 부를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최종적인 신부로서의 단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마지막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 이후 주님께서 부르실 때 동시에 구름으로 들려 올라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환난에 남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요?  성령받은 사람도 환난에 남는 자들이 있나요?”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환난에 남아, 남은 자들을 도울 사명자들이 있다.그들은 환난 중에 남게 된다.

소수의 몇 명이 남아서 환난 중에 남은 자들을 돕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환난에 남게 되나요?”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농담으로 여긴 자들,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가벼이 여긴 자들,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믿지 않은 자들이다.

그들이 심하고 혹독하며 깊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베드로후서 3:3-4

 

사도 요한과 대화하고 있는 내 표정은 심각해져서 눈에 미간이 모아져 있었다.

마치 나의 모습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던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같이 천국에서는 지상에서 이후 벌어질 사건들에 대해 자주 대화들을 나눈다는 것을 지식으로 알려 주셨다.

그래서 7년환난을 앞둔 지금 상황에서 변화산의 그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누가복음 9:30-31                                                                                                                                         

 

“자, 이제 내려가서 적어야겠지.”  예수님께서 나를 안고 지상으로 내려오셨다.

그리고는 내게 안수하신 후 예수님께서 사라지셨고 잠시 후 눈이 스르르 떠졌다.

 

열 네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6일 오후

 

엘리야와 엘리사

 

육신을 입은 채 천국에 간 사람들에 대해 묵상했다.

그 후 기도를 하는데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더니 몸에 힘이 빠지면서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 올리셨다.

주님께서 빛으로 오시어 내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내가 너를 기뻐하고 기뻐하고 기뻐하노라.”

나도 주님께 사랑의 화답의 고백을 드렸다.  “사랑하는 주님, 저도 주님을 기뻐하고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부활의 몸을 입은 사람들이 천국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눈앞에 엘리야가 나타났다.

엘리야는 엘리사와 함께 나타났는데, 엘리야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엘리야의 지팡이를 보면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의 육신이 천국에서 강건해져서 지팡이가 필요없는데도 멋으로 짚고 다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제자 엘리사를 의식해서 폼을 잡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야의 그런 어린아이같은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비쳐졌다. 엘리야는 키작은 왜소한 노인의 모습이었고 눈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덩치가 더 크고 키도 엘리야 선지자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다.

양옆으로 까만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가운데 머리는 없는 대머리였다.

그의 그런 모습은 나에게 성경을 입증키 위해 보여주는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사도 바울도 처음 만났을 때에는 눈이 불거져 보였는데 두 번째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에는 눈이 온전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사를 이 다음에 만나게 될 때에는 그의 머리가 온전해져 있을 것이다.

 

반가움으로 저들과 차례로 악수를 했다.  엘리사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서 있었고 엘리야만 말을 했다.

내가 보고자 한 사람이 부활의 몸을 입은 천국백성이었기 때문임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엘리야만 말하도록 허락되어 있는 것이다.

엘리사의 엘리야를 향한 존중함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존중함이 제자로서 스승에 대한 예우가 깍듯한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부활의 몸을 입은 자가 받는 높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엘리야가 받는 이 높임은, 이 마지막 때에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우리들이 받아누릴 영광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다.  내가 함께 나타난 엘리사에 대해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엘리야가 말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엘리사가 이렇게 따라온단다. 내가 저를 깊이 사랑하고 저가 나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의문이 들었다.

‘이상하다? 엄마가 나를 깊이 사랑하고 나도 엄마를 깊이 사랑하는데 왜 천국에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그때 내 마음을 읽은 엘리야가 설명해주었다.

“천국에서는 인간적으로 깊이 사랑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고, 영혼의 깊이로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된단다.”

 

육신을 입고 천국에 오른 것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천국에 이른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는데요?”

그 때 환상이 보였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시내 도랑같은 곳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 때 엘리야 선지자에게 불말과 불병거가 그의 뒤로 나타났고 그가 그 수레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주 빠른 속도록 하늘의 한 지점을 향해 이끌려 올라갔고 조그만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실 때 초반에 이런 경험을 내게 겪게 하셨으므로 나는 이 그림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조그만 구멍이란 엘리야를 위해 그 순간에 열린 하늘문이다.

그 때 하늘에서 엘리사에게 엄청난 기름이 쏟아 부어지면서 엘리사는 영안이 열려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엘리사가 “엘리야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불말과 불병거여!”하며 자기 옷을 두 손으로 찢었다.

그리고는 스승의 옷을 들어 긴 막대모양으로 만들어 물을 엑스자로 내려쳤다.

 

처음에는 잠시 인간적인 이별의 아픔을 느꼈던 엘리사였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이 쏟아 부어진 그에게는 이미 그런 마음이 사라지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런 생이별의 아픔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면서 그의 믿음을 크게 해주셨다.

 

그 환상을 다 보고난 내게 엘리야가 말했다.

“주님의 백성이 들려 올라갈 때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들려 올라간 사람들을 보면서 땅에 남은 자들이 너무 놀랄 것이나, 그와 동시에 주님께서 준비하신 기름을 예비된 사람들에게 쏟아부어 주실 것이다. 그래서 사라진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안타까우면서도 남은 자들의 믿음이 굳세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7년환난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택한 자녀들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천국에 부르시겠다고.

주님께서는 그 분 자녀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부르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그 연단을 겪어낼 수 있는 굳센 믿음의 기름을 쏟아부어 주시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들려올림을 받지 못했을지언정, 이 땅에 남아 환난기간 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믿음으로 끝내 이겨내도록 성령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그리고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함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깨어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어려운 연단을 겪어내고 있을 때 농담으로 여기며 미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을 다루시는 주님의 징계의 연단인 것이다.

주님을 위해 오랜 기간 단장해 온 신부수업을, 이 땅에 남은 그들은 7년이라는 기간 동안 모든 육의 성질을 제거해내고 온전한 신부로 단장하게 되는 단기 속성코스를 밟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단을 허락하실 때 주님은 그저 내어버려 두시지 않으시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시다.

그 연단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더불어 주시어 겪어내도록 하시고 천국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게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데살로니가후서 1:6-8

 

아무리 그 연단을 감당할 수 있는 굳센 믿음을 주신다고 해도 이 땅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천사들과 강림하실 때에 나를 향해 울려퍼지는 나팔소리를 듣기 원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사랑 예수님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즐거운 공중잔치를 하기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부의 수업을 해야 한다. 에스더는 이방나라의 왕 아하수에로를 위해 일년간 신부수업을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아니 성자 하나님이신 그 분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신부도 아닌 신()의 신부가 되는 것인데 말이다.

하늘나라 신부로 단장하는 시간은 이 세상의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이 없다.

믿음으로 단장하는 것이므로 시간을 뛰어넘어 단장할 수 있는 것이다.

 

엘리야에게 다시 물었다.

“두 분은 국가일에 관여하며 조국을 돕는데 힘쓴 선지자들이시죠?”

엘리야가 대답했다.

“참된 선지자는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쳐 헌신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신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그래서 그처럼 본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선지자들이 애국자의 표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참 선지자는 조국의 애국자임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애국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너를 선지자 삼기위해 주께서 너에게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킨 것이다.”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조국을 떠날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아픔을 겪어내면서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떠났었다.

그런데 미국으로 와서 살게 되면서 오히려 조금씩 애국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처럼 얼마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한 H박사 진실찾기 사건에 해외동포팀의 리더로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새롭게 조국을 바라보게 되고 가슴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타국에 있으면서도 조국을 생각하고 염려하며 눈물흘리게 된 것이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나는 여전히 조국에 대해 시큰둥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엘리야 일행과 헤어진 후 예수님께서 나를 예루살렘 나의 집으로 이끄셨다.

예수님과 내가 테라스에 서서 바깥의 경치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넓은 들판과 싱글하우스들, 그리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시내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내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너의 집이 이사하게 되리라.” 그것이 바로 삼층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목사안수를 받은 이후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인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을 순종할 때 주시는 상급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것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실 때 순종하는 자에게 주님은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주시는데 천국의 지위를 상승시켜 주심으로써 갚아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시는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벅찬 기쁨과 감격 그리고 동시에 솟아오르는 송구함에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모르게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 머리에 있던 왕관을 벗어 예수님께 올려드리며 울먹였다.

이 말을 몇 번씩 간증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주님의 온전하신 은혜로 누리는 이 기쁨으로 인해 나오는 감사의 눈물인 것이다.

 

“주님..저는 이것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다.  주님 받으소서, 받으소서.

어찌하여 저에게 이렇게 크신 은혜를 베푸시나이까...!”

예수님께서 고개숙인 내 머리 위에 안수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너의 지극한 겸손으로 네가 높아지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베드로전서 5:6

 

면류관을 벗어 던진다든지 지금 내가 면류관을 벗어드리는 이런 일들이 천국에서는 겸손의 표시라고 하셨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요한계시록 4:10

 

이 말씀은 나에게 겸손하다고 칭찬하시는 말씀이라기 보다는 이 글을 읽는 겸손한 자들이 받을 상급을 말씀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어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영원히 성령 충만하리라.”

나는 이 말씀이 두고두고 의아스러웠다.

내가 사람인데 가끔 신앙이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떻게 사람이 영원히 성령충만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말씀이 이룰 것을 믿는다.

이 말씀을 사람이 하였으면 아닐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이사야 46:11

 

그리고 주님께서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의 영이 내 안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한일서 4:13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바닥에 코를 대고 완전히 엎드러졌다.

두 손을 위로 뻗은 상태에서 주님께 나도 모르게 이런 고백을 드리는 것이었다.

“내가 이제 후로는 주님이 가라는 곳에 가겠고, 주님이 있으라는 곳에 있겠으며, 주님이 하라는 일을 하겠고 주님이 행하라는 것을 행하겠나이다..!”

늘 보면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내 입을 통해 고백토록 하셔왔다.

내 남은 삶을 영혼구원을 위해 바친다고 서원의 고백을 드릴 때도 그랬다.

내가 했다기 보다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의 결과였다.

지금도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바를 강권하여 고백하게 하시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겁도 나고 부담스러웠다.  왜 내가 원치 않는 고백을 하게 하시는가..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맡기고 보니 그처럼 쉬운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기에 나에게 가장 최선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이런 고백들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나의 전인격을 주님께 맡기면 그처럼 쉬운 일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일으키시고 예수님과 마주 세우신 상태에서 내 머리 위에 예수님 머리위의 관을 씌워 주셨다.

두 개가 덧씌워지면 어찌 되는 걸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원래의 내 왕관은 보이지 않고 예수님께서  씌워주신 관만 머리 위에 놓여져 있었다. 정말 천국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관을 씌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제 너의 머리에 나의 생각이 있을 것이며, 너의 입술에 나의 말이 있을 것이라. 이제 내가 영원히 네 안에 함께 있을 것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4:20

 

그리고는 내게 안수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세계만방에 사도로 임명하노라.”  내가 무릎꿇고  “아멘, 할렐루야”라고 화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깨고 나서도 주님의 안수로 인한 기름부음으로 한동안 깨기가 힘이 들었다.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한껏 내 영혼에 채워 주고 계신 것이었다.

 

주님은 엘리야를 보여주심으로써 우리가 아름답고 복스러운 소망을 품기 원하셨다고 믿는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 준비한 신부들은 엘리야처럼 육신의 몸을 입고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되리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디도서 2:13

 

열 다섯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7일

 

무디ㆍ책에 관한 환상

 

외출해서 기도모임을 가진 후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몸은 피곤한데 왠지 잠이 오질 않았다.

뒤척거리는데 나도 모르게 방언으로 기도가 나오더니 갑자기 몸에 큰 진동이 있었다.

그리고는 정신차려보니 졸지에 천국에 이르러 있었다. 빛되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 느껴졌다.

갑자기 내 마음에 전혀 뜬금없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무디..죠지 뮬러..  이 두 사람이 떠올랐다.  정말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이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듬과 동시에 무디가 내 앞에 나타났다.

D L 무디의 자애롭고 털많은 수염... 인자한 모습의 무디 선생과 그 곁에 죠지 뮬러가 서 있었다.

죠지 뮬러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단지 저 만치에 그가 서 있다는 느낌만 있었다.

 

무디가 나를 안고는 말했다.  “사람들이 줄 서 있으니 얼른 말해야겠다.”  그러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천국에서 이와 같이 바쁜 것처럼 세상서도 바빠지리라.”

그 뿐이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무디와 죠지 뮬러 두 사람만 있었건만 뭐가 바쁘다는 건지 영문을 모르다 못해 우스꽝스럽기만 한 말이었다.

무디 선생님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재치있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분이셨음을 지식으로 알게 되었다.

언제든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기질대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이후 죠지 뮬러와는 대화도 못해보고 곧장 내 눈앞에 환상이 보였다.

이 책의 표지였다.

새파란 하늘색 바탕에 두 줄 제목으로 『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라고 쓰여져 있었다.

「주님오시리」 위의 첫 줄은 흰 글자였고 아래 「구름타고 오시리」는 바탕보다 진한 파란색이었다.

「주님」이라는 글자는 크고 「오시리」는 작았다.

「구름」이라는 글자는 「오시리」와 같은 크기였고 「타고 오시리」는 「구름」보다 작은 글자였다.

그리고 그 아래 한 줄로, 다른 폰트로 「14번 천국 방문한 이야기」라고 쓰여져 있었다.

거기 14번이라고 쓰여진 숫자는 최대한 20번까지로 늘어날 것임을 알려주셨다.

14번은 현재의 횟수를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활자 모양도 보았다. 납작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가로로 쓰는 획은 가늘고 세로획은 굵었다. 그리고 「구름」이라는 글자 아래로 하이얀 뭉게구름이 아름답게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데 주님께서는 플랜을 하나하나 착착 진행하고 계시는 것이다.

책에 관한 환상이 한 가지 더 있다.

지난 2007년 1월 30일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인데 이 부분에 첨가하도록 인도하셨다.

낮이었고 짐꾸리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너무 잠이 쏟아졌다. 간밤에 충분한 잠을 잤기에 졸릴 일도 없었다.

그리고 낮잠을 즐기는 체질도 아닌 나이다.

근데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잠이 쏟아져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길래 침대로 가서 누웠고 깊은 잠에 빠졌다.

꿈에 환상을 보았다. 내가 기록한 책이라고 했다. 책이 완성되어 있었다.

완성된 책이라는 느낌이 있을 뿐 정확한 책 제목도 표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주님께서 제목도 표지도 일러주시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느낌으로만, 아~ 내가 기록한 책이구나~ 했다.

마치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내가 높은 상공에 위치해 있었고 펼쳐진 세계지도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책이 한 지점에서 분수처럼 바닥에서 위로 솟아오르면서 온 세계 위로 뿌려지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와~!” 소리만 연발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으로 책이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하늘 중간에 구름에서 천사가 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부지런히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계 각지로, 책이 뿌려지는 곳으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로 성령이 기름부으 무언가를 뿌리고 있었다.

그것이 성령의 기름인 것이 절로 깨달아졌다.

 

그러더니 한국이 보였다.

한국 위로 집중적으로 천사가 기름을 그냥 쏟아붓고 있었다.

내 눈에는 구름과 한국 사이에 무슨 기둥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그 기둥은 천사가 쏟아붓는 기름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기름기둥은 마치 모빌 기름색처럼 그린 색이었다. 나는 너무 기뻐하면서 환성을 지르다가 잠이 깼다.

이 환상을 보여주시려고 주님께서 강권적으로 잠을 재우셨다고 믿는다.

주님께서 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일을 보여주신 것이리라.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아멘.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시며...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다니엘 8:18,26

 

 

열 여섯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8일

 

두려움 속에 찾아오신 예수님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

주님께서 수시로 천국에 데려가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리면서도 나 역시 두려움에 빠져 고통하였던 경험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럴 때 그 두려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를 주님께서 일러주시고자 허락하신 해프닝이 이 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일을 계기로 내게 두려움이 엄습했고 나는 밤새 끙끙대며 두려움을 안고 울었다.

마귀는 무작정 내게 덤벼들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호시탐탐 나의 연약함을 엿보고 있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속성이 내 안에 비치기만 하면 재빨리 불화살을 쏘아대는 것이다.

 

나의 연약함이란?

겉으로는 활발해보이나 실은 내성적임을 주님도 아시고 마귀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을 공적으로나 세상에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하여서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치유받았으나 당시에는 그랬다.

근본적으로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다. 늘 내 자신에 대해 자신없어 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가치를 그다지 높게 두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에 드러나면 뭇 사람들의 비방과 손가락질과 비평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아주 많이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아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제는 그만 아프고 싶었다.

이제 주님과 더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이제는 더 아픈 고통은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를 온 세상에 드러낼 때 숱한 비평이 있을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그만 그것이 내 심령에 비수처럼 꽂히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 허락하여 드러내신 나의 연약함이었다.

그 시간 이후부터 그 비수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그 날 밤새 눈물로 앓은 것이다.

 

밤새 몇 시간을 울며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님..저는 유명해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 크게 쓰임받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도 없습니다.

저는 단지 여느 사람들처럼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다가 주님 앞에 갔을 때 잘 하였도다 칭찬받고 싶다고만 했을 뿐입니다.그런데 지금 이 일이 무엇인지요. 제가 생각하기 너무 엄청납니다. 감당하기 힘이 듭니다.

꼭 제가 세상에 드러나야 하나요? 무명으로 책을 내면 어떨까요? 전 정말이지 숨고 싶습니다, 주님..

두렵습니다, 두렵습니다.주님! 나를 붙드소서, 붙들어 주소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초라한 작은 새 한 마리가 되어 지구 한 귀퉁이 어둠 속에서 떨며 웅크리고 하염없는 통곡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나였다.

울다 지쳐 자리에 누웠다. 누워서도 계속 “예수님..예수님..” 예수님만 찾았다.

그 때 갑자기 머리가 아니 온 몸이 공중회전하듯 휘잉~ 도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회전그네나 청룡열차같은 것을 탄 느낌이 이런 것일까? 난 실은 겁이 많아서 이런 놀이기구들을 타 본적이 없다.

뭔가 주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을 주님께 맡기고 이끌려 갔다.

나를 자주 데려가시던 희고 큰 성전 중앙에 예수님과 내가 있었다.

나는 예수님 앞에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예수님은 내 머리에 안수하고 계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아 41:10

 

예수님께서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 보시는데 주님의 마음이 내게 느껴져 왔다.

예수님은 지금 나를 보시며 하염없는 안타까움을 가슴 가득 느끼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께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지금의 내 자신의 이런 모습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부끄러움은 부끄러움대로 느끼면서도 여전히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또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 이론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실제에서 적용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주님..엉엉.. 제가 유명해져서 여기저기 다니고 싶다고 그런 적 없잖아요..엉엉엉.

제가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적 없잖아요..엉엉엉.

전 그냥 제 작은 정성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것 뿐이예요..엉엉엉.”

지상에서 드리던 기도를 천상에서 예수님 앞에서 다시 한 번 또 아뢰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두려워진 것이다.

모든 주님이 내게 행하시는 일에 의심이 가는 것이었다.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제 생각해보면 순전히 마귀가 주는 생각일 뿐인데 그 당시에는 무지 심각했다.

예수님께서 묵묵히 나를 내려다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만들었다. 나는 너를 잘 안다. 네가 연약하므로 내가 너를 쓰는 것이다.

너의 연약함으로 내가 나의 영광을 취하려 하는 것이니라.  다시 말하거니와 두려워 말라.

내가 말하지 않았으냐,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 나에게 예수님께서 서운하신 듯한 모습을 보이셨다.

감동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되어지지 않음을 그때 깨달았다.

누구보다 내 자신이 주님을 믿고 확신하고 의지하여 지금의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터였다.

그런데 그것이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오직 성령님께서 나에게 감동주실 때만이 믿어지고 확신하고 담대해지고 하는것을 다시금 알게 하시면서 내 스스로의 믿음에 대한 교만한 마음을 버리도록 해 주셨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시 주님 발치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주님~~!

나를 붙드소서, 붙드소서!”

예수님께서 나를 일으키시고 나의 어깨를 감싸 안고 성전을 거니셨다.

아무 말씀없이 그저 나를 안고만 계신데도 내 안에 평안이 임하기 시작했다. 다시금 마음에 담대함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통해 나의 일을 하리라.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이니라.

내가 출판하고 내가 말한다. 너는 단지 나의 도구로 쓰임받는 것이니라.

내가 너를 통해 세계의 많은 영혼들을 구원할 것이니라.”

 

그렇다.

나는 주님께서 이름주신 그대로 주님의 음성을 대신 전하는 「소리」일 뿐이다.

나는 두려움 속에 기도하는 가운데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아무 것도 아니며 그저 보이지 않는 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서 나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내 안에 평안과 담대함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두려움이란 내가 만들어놓은 그 무언가가 허물어질까 염려함에서 오는 마음새인 것임을 알았다.

욥을 공격했던 마귀도 욥에게 감추어져 있던 두려움을 틈타서 공격했다고 믿는다.

그의 두려움을 근거로 하나님께 송사하고 공격의 빌미를 제공받은 것이다.

그것을 환난을 맞이한 욥의 부르짖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기 3:25-26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고 내가 만들어놓은 탑이 허물어질까 불안해하며 두려움 속에 지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간밤의 몇 시간에 걸쳐 느껴본 이 불안과 두려움..

이것은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나에게 허락하신 심정이었다.

주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그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이 나에게 깃들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으시기 때문이라 믿는다.

“너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 이토록 안타깝구나..

내가 너를 보고 있고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두려워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붙들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두려움은 마귀가 가져다 주는 것이다.

내가 그 두려움을 내 마음에 받아들인 것은 바로 마귀를 받아들인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저 울며 두렵다고만 기도하고 있은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내 안에 두려움을 가져온 마귀를 쫓아냈어야 했는데 말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성전 밖으로 이끄시어 데려가신 곳은 특별한 연못이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나를 세워놓고 머리 위로 여러 번 계속 물을 끼얹으셨다.

예전 이 연못을 두고 말씀하시던 것이 떠올랐다.

“이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며, 죄사함을 입는 물이다.”

 

간밤에 두려움에 떨던 나의 모습,  그것은 주님께서 그간 나에게 주신 은혜를 잊어버린 모습이었다.

나의 모든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잊는 행위이다.

그것은 주님께 죄악인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것은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데서 나오는 죄된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물을 통해 나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부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죄사함을 받고 회복된 것이다. 할렐루야!

 

이 대목에 대해 마귀의 훼방이 심했다.  깨고난 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상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던 것을 예수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다시 데려가셔서 기억나게 해주셨다.

그리고 지금 또 이곳에 이 장면을 쓰려고 하니 워드문서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회복한 문서를 다시 보는데 어느 대목이 사라진 것인지 도무지 또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주님께 기도드리자 성령께서 다시 기억나게 도와주셨다.

 

마귀가 왜 이 대목에 이리도 민감한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가 성결하게 되기를 원하시고, 마귀는 우리가 죄 중에 더러운 상태로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한 신부로 단장하길 원하셔서 회개하라고 하시는데 마귀는 우리가 회개치 못하도록 기를 써가며 훼방하는 것이다.    ~아뿐 마귀!

 

내게 두려움과 불안이 임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아까 말처럼 두려움과 불안은 마귀가 가져오는 것이고 내가 용납하였기에 들어오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귀를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것을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내가 아는 죄는 회개하지만 내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했던 것을 회개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주님께서 나의 두려움을 거두어가셨다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내가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악이며 회개해야 하는 것임을.

회개하는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인간은 너나없이 연약하여 두려워하는 경우에 처할 수가 있다.  불안에 떠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재빨리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온 마귀를 물리치고 그것을 받아들인 나의 죄를 회개하자.

그러면 우리는 더욱 성결해질 수 있다.  더욱 깨끗한 신부로 단장하게 되는 것이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한 걸음 더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게 되는 것이다.

주님과의 아픈 대화 후 나는 지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열 일곱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8일 오후

 

죠지 뮬러와 주님 마음에 합한 기도

예수님과 춤을 추었다.  한 번도 추어본 적이 없는 왈츠를 예수님과 춘 것이다.

기도 후 쏟아지는 기름부음을 만끽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내게 오시어 나를 거실 한 가운데로 이끄셨다.

그리고는 실제의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아름다운 왈츠를 춘 것이다.

배워본 적 없건만 희한하게도 그 스탭을 마치 아는 듯 저럴로 내 몸과 발이 아름답게 스탭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나를 다시 의자에 앉히시고는 즉시 내 손을 잡아 낚아채듯 이끄셨고 그 즉시 천국으로 데려가셨다.

상상이 되어지지 않는 이 모습에 대해 읽으시는 분은 그대로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는 그 날에 천국에서 이처럼 주님과 아름다운 춤을 추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천국에서 나를 곧장 데리고 가신 곳은 상급집 앞에 있는 푸르른 들판이었다.

그 들판에서 예수님과 나는 정말 정신없이 깔깔대고 달리며 놀았다.

그네를 가운데 두고 서로 잡기놀이도 하고 한참 뛰다가는 들판 아래 시냇가에 머리를 대고 예수님과 내가 널부러지듯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곧장 둘이 다 나란히 시내를 향해 엎드렸다.

그 때 갑자기 시냇물 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퐁!하고 튀어 올랐다.

붕어처럼 생긴 물고기는 기역자로 구부러져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었다.

눈은 동그랗고 입은 도우넛처럼 동그랗게 벌린 재밌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기역자로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우리를 바라본 채로 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내게 해석이 되어 들려왔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를 향해 하는 말이었다.  너무 희한하고 재미있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나를 보시며 기뻐 웃으셨다.

주님께서 간밤에 시련을 겪어 입이 다 헐은 내게 주시는 위로성 이벤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그 자녀들이 늘 기뻐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할 때도 그렇고 슬퍼하거나 눈물흘릴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주님께서 천국을 데려가신 이후로 주님은 내게서 개인적 슬픔으로 우는 눈물을 거두어 가셨다.

감사와 기쁨의 눈물 외에는 흘리지 않게 해주셨다.

지금도 눈물 흘리기 일쑤이지만 타인의 영혼으로 인해 울리실 때가 많다.

그것은 나의 눈물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눈물이다.

 

“네가 간밤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기쁨 중에 있으니 내가 기쁘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 그간 예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잠시라도 잊고 두려움에 떨며 우는 모습을 보인 것이 죄송해 왔다. 주님을 안타깝게 해드린 것이 죄송해서 예수님 쪽을 향해 돌아누우며 얼굴을 예수님께 파묻었다.

 

“주님..안타깝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예수님께서 내 쪽으로 돌아누으시며 왼팔을 괴신채 오른 손을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셨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안타까와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안타깝다.

내 자녀들이 그처럼 안타까와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심장이 오그라들고 내 심장이 타는 듯 하며 내 심장이 조여온다.

나는 내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의 안타까움을 잊고 어서 천국에 와서 이처럼 기쁨으로 함께 동거하기를 애절하게 간절하게 바라고 있단다.  그들이 천국에 이르기까지 내 심장이 새카맣게 타 있으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몇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외출 때마다 예수님께 나의 패션을 묻고 주께서 주시는 감동대로 옷을 입었었다.

어느 날 문득 요즘 들어 까만색 옷을 위아래로 자주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흰 색을 좋아한다.

흰 색이 부활의 주님을 상징한다고 생각되어 좋았는데 까만색을 자꾸 입게 되어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왜 제게 요즘 까만색을 자주 입히시죠?

제가 흰색을 좋아하는 것 아시면서..”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 속이 까많게 탄 것을 네게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아..주님께서 돌아오지 않는 영혼들 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셨구나..생각하면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주님의 이 안타까운 심정, 이 애절함과 간절함...

 

“너는 세계 곳곳에 다니면서 내 백성들에게 나의 이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을 전해다오.

부탁한다, 내가 너에게 내 백성을 부탁한다. 나의 간절하고 애절한 사랑을 전해다오.. 내가 너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네가 연약하기 때문에 너를 쓰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입을 벌리며 의아해 하리라.

내가 오히려 연약하디 연약한 너를 통하여 큰 영광을 받으리라.”

 

예수님께서 얼마나 애절하고 간절하셨으면, 그 사랑이 얼마나 크시면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이 하찮은 것에게 이처럼 부탁하시겠는가..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고백의 다짐을 주님께 올려드렸다.

“주님, 이 하찮은 몸 찢어지고 부서지더라도 주님의 그 애절함과 간절한 사랑을 전하기에 힘쓰겠나이다!”

문득 무디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님, 저는 무디를 보고싶다고 한 적도 없고 죠지 뮬러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 분들은 왜 갑자기 나타난 거예요?

그리고 무디의 그 간단한 그 말, 바빠질 거라는 말은 또 무슨 의미예요?”

“말 그대로이다. 네가 세상에서 바빠질 것이다. 네가 게으른 것 내가 안다.(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웃으셨다)

네가 그동안 게을렀던 만큼 세상에서 바빠질 것이니라.

네가 바빠질 일을 잘 감당해낼 수 있도록, 어떤 병마도 해치 못할 건강의 복을 주노라.”

그리고는 일어나셔서 내 머리에 안수하셨다.  나는 무릎을 꿇고 감사함으로 안수를 받았다.

 

예수님께서 건강의 복을 안수하실 때 나는 별 다른 생각없이 아멘 했었다.

감사도 사실 피상적으로 하는 말에 다름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 이후 내 건강에 놀라운 변화가 일었다.

원래의 내 체력은 말도 못하게 허약했다. 오십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건강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런데 정말 이후에 사역을 하면서 놀란 것은, 하루에 두세 시간을 자고 아침부터 밤까지 사역을 해도 끄떡없을 정도의 체력으로 바꾸어져 있었다!  많은 체력 소모로 잠은 오는데 몸이 고단하거나 무거운 것은 전혀 없다.

그 정도면 벌써 몇 번 몸살을 앓았어야 하건만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일인지라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감탄하는 것이다.

한 번은 아는 집사님을 모시고 한의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집사님이 약을 지으러 가는데 내가 운전을 해준 것이다.

그 원장님이신 장로님이 눈으로 진맥을 보는 기계가 있다고 하시면서 진맥을 해주셨다.

혈압은 여전히 저혈압으로 나오는데 온 몸이 모두 건강한 상태로 나와서 장로님도 놀라셨다.

나는 태어난 이후 병원에서 건강하다는 말을 들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순간 천국에서 내게 건강의 복을 안수하시던 예수님이 떠올랐다.

예수님께서 건강의 복을 주셔서 이처럼 건강해진 것이다. 할렐루야!

그때 이후 나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성경으로나 예언으로나 더욱 확신있게 믿어진다.

사람이 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그 입에서 나온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민수기 23:19

 

“죠지 뮬러는 왜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었어요?  저에게 무언가 알려주시기 위해서였나요?”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은 사람으로 세상에는 알려져 있지. 직접 들어보려므나.

뮬러야~.”

예수님께서 죠지 뮬러를 부르시는 것을 들으며 의아스러웠다.

‘죠지 뮬러이면 이름이 죠지이고 성()이 뮬러인데?

우리가 보통 부를 때는 죠지라고 이름을 부르는데 주님을 뮬러라고 성을 부르시네?’

그 때 예수님께서 나를 돌아보시며 설명해주셨다.  “저의 기도로 내가 그 가문을 믿음의 가문으로 세웠느니라.

그래서 그 가문이 저로 인하여 세워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나는 그를 뮬러라고 부르기를 기뻐한단다.”

죠지 뮬러가 뮬러 가문의 축복의 통로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가문을 세우기 위해 밀알된 자들을 기념하시도록까지 자신의 가문을 위해 기도하는 자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시는 것이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로마서 9: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며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그 때였다. 키가 크고 호히호리한 남자가 경쾌한 몸짓으로 뛰어왔다.

그의 얼굴은 갸름한 편이었고 수염이 턱 주위로 나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그때 처음 보았다.

죠지 뮬러, 기도의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어도 얼굴까지 기억할 정도로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는 것이 맞다.

고아의 아버지라는 것도 잊고 있다가 누군가 말해주어 기억났다.

 

나는 그의 일생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고 오직 기도의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의 만남 이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그의 일생과 사진을 처음 본 후 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더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죠지 뮬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양손바닥을 펴서 하이파이브로 인사하는 것이었다.

세 번 짝짝짝! 하고 양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천국에서 처음해보는 인사법이었다.

그 분은 만남부터 사람을 경쾌하고 기분좋게 하는 분이었다.

뮬러가 나를 격려하듯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네가 세상에서 힘겹게 사명 감당하고 있는 것을 내가 보고 있단다. 힘내~!”

 

그를 향한 나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하시던데요?”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서는 기도응답이 Yes, No. Wait로 온다고 말을 하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다.

No의 응답이나 Wait의 응답을 받는 기도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기 이전에 그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합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기도를 해야 한다. 주님은 지금 그것을 너희에게 원하신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을 빨리 해주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구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마음에 합하여지기를 힘쓰라.

내가 주님의 마음과 합하여져서 구할 때마다 주님께서 들어주셨다.

사람들은 5만 점 기도응답 받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5만 번이 넘는단다.

내가 일일이 기도하지 않은 것까지도 주님께서 들어주신 것까지 말하자면 5천만 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에 뿐 아니라 내가 바라지 않은 것까지도 주님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 때 두 손을 모다 기도하는 손의 환상을 보여주셨다. 죠지 뮬러의 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 두 손에 전기가 오는 듯 찌릿찌릿해 지는 것이었다.

실제 지상의 내 육체에 그 전기가 찌릿찌릿 오고 있었다. 그 때 죠지 뮬러가 나의 그런 현상을 알고 말했다.

“네가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두 손 모아 기도하면, 나에게 응답하신 주님께서 네게 기도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이며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표증이다.  주님이 그렇게 함께 하실 것이다.”

 

“고아의 아버지시라고 알고 있는데요?”

“내 어린 시절의 성장의 아픔으로 인해 고아들에게 마음이 쓰이기도 했지만, 내 마음이 항상 고아처럼 외로웠다.

군중 속에 잇으면서도 내 마음은 항상 고아처럼 외롭고 가난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을 더욱 간절히 찾고 의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고아들을 양육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고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입히시고 먹이시기 원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내가 저들을 양육할 수 있었다.

내가 저들을 양육한 것은 나의 마음이 아니고 주님의 마음이셨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출애굽기 22:22-23  

“그러면 천국에서도 고아들을 양육하세요?”

저번 날 보았던 아이들 양육시설에서 그도 일하는가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은 것이다.  순간 그가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천국은 고아된 자들이 와서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부잣집 아들 딸들이 되는 곳이란다.

그러므로 더 이상 양육할 필요가 없잖니?”   큰..우문에 현답이었다.

그가 말하는 고아된 자들이란 마음의 고아를 의미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외로워하던 자들이 주님을 만나 천국에 이르게 되는 곳이다.

그리고는 외롭고 가난한 마음이 부요함을 누리는 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주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세상에서 고아처럼 외로이 살고 있는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시어 모든 것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아들딸로 삼아 영원히 함께 사시길 원하시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4:18

 

그리고는 죠지 뮬러는 손을 흔들며 오던 모습처럼 경쾌한 걸음으로 뛰며 사라졌다.

그리고는 내 눈앞에 한 소년이 보였다.  그가 거지 나사로임을 한 눈에 알아보게 하셨다.

그는 화려한 부잣집 아들 옷같은 것을 길게 늘어뜨려 입고 아브라함 집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거기가 어딘지 모르는데, 그곳이라고 지식으로 알려주셨다.

아브라함 집 전체를 본 것은 아니나, 나사로 뒷 편의 집 담은 궁전의 담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앞에서 나사로가 마개사탕 비슷한 것을 빨아먹으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17세 소년으로 보이는데 머리는 까맣고 곱슬머리였다.

희한하게도 천국에서는 정확한 나이를 알려주시는데 17세라고 하셨다.

나의 처녀모습도 정확히 18세라고 알려 주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가 사탕을 한 번 빨고는 미소띈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해줘. 그래서 나는 아브라함 할아버지 집에 잘 와 있어.”

그 때 아브라함이 나타나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그를 데리고 내 앞에서 사라졌다.

 

거지 나사로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세상에서 고아와 같이 외롭고 힘들었던 나의 모습.

심령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겨 넝마처럼 되었던 거지 나사로의 모습이었던 나...

그런 나를 사랑해주고 감싸줄 사람은 오직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비단 나 뿐 아니라 세상에서 고아와 같은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주님..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이들이 이 땅에 많아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외롭고 가난한 이들이 사랑과 위로를 받게 하소서.

 

그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손에 꽃다발을 들고 계셨다. 우리가 졸업식장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꽃다발 모양이었다.

내게 다가오셔서 그것을 안겨주셨다.  내가 의아스러워 하며 물었다.

“이게 뭐예요?”

“네가 한 과정을 마친 것을 축하하는 것이다. 네가 천국신학 1학년을 마친 것이다.”

천국신학..ㅋㅋㅋ. 세상 신학과 다른 천국신학이 또 있나부다.

그러고 나니 간밤에 잊고 있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예수님과 성전을 거닌 후 예수님은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시고 보좌에 앉아 계셨다.

나는 성전 앞쪽 쯤 보좌 가까이에서 한 쪽 무릎을 꿇고 경외심을 품고는 보좌를 향해 고개숙이고 앉아 있었다.

그 때 오른 쪽에 있는 이십사 장로들이 머리에 쓰고 있던 금 면류관을 일시에 위로 던져 올리는 것이었다

.마치 미국에서 졸업식 때 하는 광경같았다.그러더니 크게 찬양하는 것이었다.

♬ 어린 보혈로 구원받은 백성이 복되도다~ 어린 예수를 영원히 찬양하리로다 할렐루야~

 

어제 내가 천국신학 한 과정을 마치는 축하의식을 행한 것이었나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새롭게 2학년 과정을 3월부터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과정이다. 그 과정을 네가 잘 감당할 수 있으리라.”

이 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일이라 여겨 삭제하려 했는데 적도록 인도하셨다.

우리 각 개인에게 이러한 일련의 훈련과정이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날 때마다 본인이 알던 모르던 천상에서 축하파티가 있고 또한 본인에게 위로와 축하의 선물이 증정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계속 훈련 중에 있다.

이 훈련은 초중고 훈련처럼 등급이 있어 주님 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이제는 훈련이라고 부르지 않고 신부수업이라 부르고 있다.  그 마음이후 더 기쁘게 수업을 감당하게 되었다.

 

꽃다발을 받은 후 예수님께 경외심을 보이며 무릎을 꿇었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일으키시더니 위쪽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너의 새 집으로 가자.지금 새로 짓고 있는 집으로 가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곳이 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이사할 새 집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말씀을 듣는데 너무도 겸비한 마음이 되면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입에서 나왔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무릎 위로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 얹은 상태에서 눈을 살포시 내려깔고는 고개를 이쁘게 가로저으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말투도 얼마나 이쁘던지..ㅎㅎㅎ

 

“주님, 저는 아직 거기를 볼 자격이 없나이다.저는 갈 수 없나이다.”

이 모습을 나는 여러 번 사람들에게 해 보였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너무 안 어울린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세상의 모습과 영적인 모습은 이처럼 다른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견하다는 듯 내려다보시며 흐뭇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이처럼 천국은, 영계는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켜지는 자율 속에서 운행되어 지느니라.”

그리고는 즉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 ******* *********

기도에 관해 깨달음을 주시고자 죠지 뮬러를 무디와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하지않고 두려움의 사건 후에 만나게 하신 것임을 이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주님께 눈물로 기도드리면 주님께서 기뻐받으시고 속히 응답하시리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바로 전 편에서 보았던 것처럼 내가 밤새도록 입술이 부르트도록 울며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주님을 근심되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헛수고였음을 보았다.

 

이 글을 쓴지 일 년이 넘는 어제, 나는 주님께 기도드리면서 내 짐이 무겁다면서 울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주님의 호통이 들려왔다.

“광야를 지나온 네가 아직도 광야에 처한 듯 울고 있느냐! 회개할지어다!”

깜짝놀라 찔끔해서는 회개를 했다.

그러고 나자 마음에서 기쁨의 찬양이 샘솟기 시작했다. 넘치는 기쁨으로 찬양메들리를 신나게 박수치며 주님께 올려드렸다.

그러자 언제 괴로워했냐는 듯 종일 흥얼대며 지냈다.

 

지금도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주님 앞에 울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어린아이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하시면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이 말씀은 잘 외우면서도 막상 실제로 기쁨의 기도를 드리지는 않기 일쑤이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 그 눈물이 성령님의 눈물인지 아니면 자기연민에 빠져 흘리는 탄식의 눈물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칫 밤새 철야하며 눈물흘린 시간이 마귀만 배불린 헛수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저번 날의 나처럼.

 

기쁨의 기도를 드리심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아멘.열 여덟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8일 오후

 

환난 중의 순교자

 

지체들과 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 후 새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나에게 큰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

감당이 안될 정도로 계속 오더니 그만 다시 몸에 힘이 빠지면서 주님께서 나를 다시 천국으로 이끌어 가셨다.

천국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하늘을 날아 다니셨다.

너무 기분이 좋아 아이처럼 까르륵대며 막 웃었다.  내 웃음소리가 지상에 있는 분들께도 들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뭐 하나 보여줄 게 있단다. 지옥으로 가자.”   “아..나 거기 가기 싫은뎅..”

안 가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리광처럼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란히 날아가던 모습에서 갑자기 나와 마주 보시는 것이었다.

마치 비행기에서 두 사람이 동시낙하를 할 때 서로 마주 잡고 평평하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마주 잡은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왜애~ 내가 있잖아아~.” 하시는데 예수님의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씰룩 거리셨다.

여러 번을 계속 그러셨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나는 아주 많이 웃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시다.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엄하기만 하신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먹고 마신다고 비웃고 조롱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태복음 11:19

 

예수님은 즐거운 분이시다.

예수님은 아름답고 맑고 경쾌하고 웃기를 잘하시며 유머가 풍부한 분이시다.

장난치기도 좋아하시고 재치가 넘치는 분이시다.  아름다우신 예수님!

나를 한참 웃게 하신 예수님께서 재빨리 “자~ 가자!” 하시더니 나를 데리고 지옥으로 가셨다.

나를 지옥에 데려가기 위해 즉석에서 벌이신 예수님의 멋진 유도작전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이 멋진 작전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어떤 일을 함께 하려 할 때 때로는 상대가 그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순종하라고 하면서 인상을 쓰고 강제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즐겁게 웃으며 그 일을 하도록 이끌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그렇게 한다면 인간관계도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다.

 

지옥에 다다르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때에 이 땅에 남은 자들이 받을 형벌 하나를 보여주리라.”

그 순간 내 눈앞에 하나의 광경이 보였다.

사람들이 온 몸을 고통스러운 표정을 여기저기 벅벅 긁고 있었다.그 사람들에게 새카만 벌레들이 여기저기 많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 벌레들이 사람들에게 달라붙어서 따갑게 콕콕 무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게 가려워서 사람들이 긁는데 그 긁은 것이 뾰루지처럼 되어서 불긋불긋해지고 그 다음에는 점점 퉁퉁 부어서 얼굴이 온통 하얀 곰보빵처럼 되는 것이었다.

 

“주님, 그러면 주님께서 택한 자들도 이 땅에 남은 자들은 저런 형벌을 받게 되나요?”

“신부로 단장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이 땅에 남아 저 환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환난을 겪어낼 수 있도록 내가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내가 굳게 해준 믿음으로 환난을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택한 자들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가게 되는 건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그들을 어찌할 것 같으냐?”

“저는 주님께서 택하지 않은 자들도 주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예수님께서 나를 흐뭇하게 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랑과 자비가 많은 자라.

내가 택하지 않은 자들 가운데에서도 나의 음성을 듣고 나를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구원의 은총을 베풀리라.”

 

그 설명으로 마태복음 22장 1-14절의 혼인잔치 비유를 떠올려 주셨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태복음 22:2

 

임금님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가관도 아니다. 혼인 잔치에 오라고 하니 오기를 싫어했다(3절).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갔다(5절).

더 기가 막힌 것은, 임금의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6절).

아니, 본인이 가기 싫으면 말지 초청을 했다고 모욕하고 죽이다니! 말할 수 없이 극도로 악해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임금이 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는 종들에게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라고 명하신다(7-9절).

종들이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님이 가득했다(10절).

그 자리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임금은 그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던지라고 명하신다(11-13절).

 

그 자리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길에서 청함을 받아 혼인잔치에 참석한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예복을 입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길에서 만나는대로 데려온 악한 자나 선한 자들이 예복을 입고 있으면 내어쫓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악함과 선함에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복을 입기만 하면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

주님은 지금 이 부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그들은 원래 초청을 받았던 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가 적으므로(14절) 입게 된 은혜를 그들이 얻게 된 것이다.

 

그 다음 보여주신 장면은 교도소같은 곳이었다.

기역자로 된 감방건물이 보였다. 나는 공중에서 교도소 마당을 아래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당에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십자가 형틀에 매인 사람이 양팔과 발목을 묶인 채 누워 있었다.

악한 사람들이 그 사람의 배를 톱질하여 죽이려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보고 있던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한 사람이 순교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저들 가운데 몇몇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여 순교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순교의 사명을 주어 순교의 영광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저들의 순교로 인하여 땅에 남은 자들이 믿음이 굳세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나의 종들을 순교의 도구로 쓰는 것이다.”

톱질을 하는 순간 주님께서 그에게 순교할 수 있도록 믿음을 굉장히 강하게 부어주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의 영안을 열어 주셨다.  그러더니 그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내가 주께서 영광 중에 서신 것을 보노라!

주께서 보좌 곁에 서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 땅에 남은 자들이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기다리시는 주를 바라보라! 할렐루야!”

 

그리고는 큰 기쁨 가운데 찬양하며 죽는 것이었다.

그의 죽음 곁에는 황금 수레가 와서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의 사자들은 십자가 형틀 저만치 아래에 팔짱을 끼고 발을 꼬고 앉아서 자기는 할 일이 없다는 듯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모습을 보던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믿음이 크게 강해지면서 서로 격려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예비하신 숱한 순교자들을 순교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들이 순교의 자리에서 본 것처럼 영광과 존귀의 자리에 이르는 상급을 얻게 될 것이다.

 

“저들은 왜 감옥 안에 있는 건가요?”

“저들은 이마에 표를 받기 거부했기 때문에 감옥에 있게 된 것이다.

믿는 자들이 이마에 표 받기를 거부한 것이다.”“그것이 666이라는 건가요?”

거기에 대해서는 답변치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들의 이마에 아주 미세한 컴퓨터 칩이 박히게 된다. 이마에 쏘기만 해도 찍히게 된다.

이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은 먹고 입고 마시는 것에 곤란을 겪게 된다.

그런데 나의 택한 자들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표를 받기 거부하고 안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먹고 입고 마시는 것에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다.”

 

환상 하나를 보여주셨다.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받는 장면이었다.  계산대에서 바토드로 스캔하는 기계처럼 생겼는데 그것보다 크기가 작았다.

그 기계로 누군가의 이마에 표를 찍었으나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조금 후 악한 사람들이 표 받지 않은 자들을 색하기 시작했다.

표 받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산으로 들로 도망하고 어떤 사람들은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택한 자녀들은 단 한 명도 악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아니 하느니라.”

그 순간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찬양드렸다.

 

“주의 인자와 자비가 무궁하시나이다.

세세무궁토록 영광 받으소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다  예레미야애가 3:22

 

그리고는 나를 다시 지상으로 돌려 보내셨다.

 

열 아홉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9일 밤

 

닥터 누가ㆍ삭개오

 

외출 후 돌아와 기도를 드렸다.

간단히 기도하고 자야지 했던 것인데 여태 맹숭맹숭하던 심령에 갑자기 성령께서 기름을 부으셨다.

그러더니 몸에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이었다. 몸이 한없이 노곤해 왔다. 의자에 몸을 길게 누였다. ‘자..주님 준비됐습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침대에 가서 누워라.네가 피곤하다.내가 침대에서 너를 만나리라.”

자상하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침대에 가서 누웠다.

누운 채로 기도드리고 있는데 주님께서 빛으로 오셨다.

그리고는 내 영혼이 공중회전처럼 휘리릭~ 도는 것 같더니 금새 천국으로 이끌어 가셨다.

 

천국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은 나 보기에 천국같아 보이지가 않아서였다.

천국이 아닌 어떤 장면을 보여주시나 보다 했다.

눈앞에 보여진 광경이 천국과는 무관해 보이는 세상의 어떤 거리같았기 때문이다.

4차선 정도의 거리 그리고 마주 선 빌딩들, 달리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버스도 택시의 모습도 보였다.빌딩에는 간판이 달려 있었는데, 치과며 미용실 등등의 간판들이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2층천에서 가장 저급한 지역이니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지역이 엄마가 계신 지역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밝은 빛이 있는 윗 등급의 지역이라는 것이 저절로 알아졌다.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세상에서 갑작스레 죽은 자들이 오는 곳이다.

그들은 성령을 받았으나 영적 지식이 짧아 처음에는 천국에 이르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그들을 위해 세상에서의 일을 계속 하면서 점점 천국을 알아가도로고 제공하는 곳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천국을 아는 지식에 충만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다가 충만해지면 스스로 이곳을 떠나게 된다.

천국을 알고 나면 이곳이 시시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학교를 통해 그들이 지식을 쌓도록 돕고 있다.”

갑자기 죽어서 천국 오는 사람들이 느끼는 당황함을 주님께서는 조금 전에 나에게 이곳을 보게 하시면서 동일하게 느껴보도록 하신 것이다.

나는 천국에 이른 줄 알고 있는데 세상의 거리를 보고 당황했듯이, 갑자기 죽은 사람들도 세상 속에 있어야 할 자신이 전혀 다른 세계에 온 것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하고 놀랄 터이다.

그들을 위한 주님의 자상하신 배려.

나의 피곤한 몸을 침대에 가서 누우라고 하시는 것이나, 죽은 자들의 당황함을 위한 지금의 배려나 모두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주님의 자상하심이다.

주님은 책망만 하시는 두려운 분이 아니시고 이처럼 융통성과 자상함을 지니신 분이신 것이다.

 

이 거리를 보고 있는데 일전에 어린이 양육시 앞에서 예수님께 이발소에 관해 묻던 생각이 났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발소가 있지만 나중에는 가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신 곳이 바로 이곳임을 깨달았다.

그 거리를 보고 있는데 갑작스레 닥터 누가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생각하자마자 눈앞에 닥터 누가가 나타났다.

얼굴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 자세히 보려고 애를 쓰자 얼굴만 클로즈업되어서 내 눈 앞에 보이는데 오른쪽에서 잡은 얼짱각도(얼굴이 가장 이뻐보이는 각도)로 보이는 것이었다.

머리는 약간 위로 뾰족한 것 같은 대머리로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턱 부분에는 까만 수염이 있었다.

코는 가늘고 길었으며 눈은 꺼풀이 얇고 가늘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이미지라고 느꼈다.

 

닥터 누가가 지금 보았던 세상 거리에서 나온 것을 지식으로 알 수 있었다.

누가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나는 손을 잡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누가복음을 제일 좋아해요.

근데 저 세상 안에서 뭐하고 계신 거예요?”  “응~ 사람들을 치료하다 왔단다.”

아니 치료라니?? 정말 여기 천국 맞는건가 싶었다.

“치료라니요? 천국에는 아픈 자가 없는데 무슨 치료를 해요? 병원이 왜 필요해요?” “물론 필요없지.”

바로 그 때였다.

닥터 누가의 답변 직후에 예수님께서 얼른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당근!”

예수님께서 누가의 답변을 “당근”으로 교정하시는 것이었다.

누가와 내가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예수님께서도 개구장이같은 웃음을 함께 웃으셨다.

예수님의 눈높이..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간절함..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내게 전달이 되어 마음이 오히려 아려왔다.

웃음 후에 닥터 누가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국 속에 있는 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끔 병원을 찾는단다. 그런데 그들이 병원에 오는 것은 아파서가 아니다.

그들의 영혼이 갈급해 할 때 내가 그들의 영혼을 치료해 주는 거란다.”

천국에서는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한다더니 세상에서 의사였던 누가는 천국에서도 의사를 하며 스스로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도서관에서 책을 쓰고..^^

나는 가서 뭘하며 즐길까를 가만히 눈감고 생각하자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아~ 하루 빨리 가고 싶은 내 본향 천국~!

닥터 누가가 그 말을 끝낸 후 나에게 주사기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점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천국에 왠 주사기??

“이게 왠 주사기예요?”

누가가 그의 오른 편 엉치 뒤에서 무슨 뭉치 하나를 꺼냈다. 두루마리처럼 감겨 있었다.

그 까만 색 두루마리같은 것을 펼치는데 거기엔 작은 주사기들이 쭈욱 꽂혀 있었다.

두루마리의 폭은 한 뼘 정도 되어 보였다. 그것을 누가가 평소에 허리에 차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주사기를 하나씩 빼서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거기 이름이 적혀 있고 주사기에는 노란 액체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기억나는대로 적어보자면, 「기쁨의 주사」, 「찬양의 주사」,「평강의 주사」,「지혜의 주사」,「지식의 주사」...이렇게 적힌 것들이었다.

나에게 준 주사기에도 「평강의 주사」라고 쓰여져 있었다.

 

“천국에 막 온 사람들이 교육을 받게 되면서 점점 영혼이 갈급해진단다. 주님을 더 기뻐하고 찬양하며 더 알기를 원하게 되지.

그럴 때 내게로 찾아와 기쁨을 구하면 기쁨의 주사, 찬양하기 원하면 찬양의 주사를 놓아주는 거란다.”

 

환상이 하나 보였다.

병원을 향해 갈급한 모습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닥터 누가에게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하자 닥터 누가가 예방주사처럼 왼쪽 어깨 부분에 주사 하나를 놓아주는 것이었다.

주사침은 없는데 어깨로 노란 액체가 들어가고 있었다. 완전히 들어갔는데도 어깨에는 아무런 표시가 나질 않았다.

그 노란 액체가 성령의 기름임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기뻐서는, 병원문을 힘차게 나서더니 즐겁게 소리높여 찬양하며 춤추며 사라져 갔다.

 

환상이 끝나자 닥터 누가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평강의 주사를 주었느니라. 너는 사역을 행할 때 사람들에게 이 평강의 주사를 놓아주도록 해라.”

감사한 마음으로 주사기를 두 손으로 받아 가슴에 품었다.

 

그 때였다.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삭개오였다. 보는 순간 삭개오라는 지식이 생겨서 알 수 있었다.

삭개오의 모습은 대장장이를 연상하면 될 것 같다.

머리는 곱슬한 짧은 머리가 전체 덮여 있었고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좀 퉁퉁한 얼굴에 울룩불룩하게 생겼다. 그리고 팔도 다리도 통통하고 짧았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는데 안짱다리처럼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제야 깨닫고 보니 세상에서 말하는 난장이였다.

그 모습은 이 땅에서 살던 모습이고 실제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단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주님의 배려임을.

성경에는 난장이인 삭개오를 「키작은 삭개오」라고 표현하고, 키작은 다윗에 대하여 「아담한 키」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한 영혼 영혼을 인격적으로 다루시고 아름답게 표현하셨다.

 

삭개오를 보자마자 내가 물었다.

“삭개오의 작은 키도 그 주사로 크게 할 수 있어요?”

닥터 누가와 예수님께서 크게 웃으셨다. 닥터 누가가 대답해 주었다.

“천국에서는 키가 크다 작다의 기준이 없단다.  예쁘고 미운 기준도 물론 없고.  뚱뚱하거나 마르거나 그런 표현도 쓰지 않는단다.

단지 그 영혼이 아름다운 것만 보이는 곳이 천국이란다.”

 

거기까지 보고는 깊이 잠들었다.

 

스무번째 데려가심 Ⅰ/ 2007년 2월 21일

 

천국편

 

기도가 끝난 후 주님께서 침대로 가라고 하시길래 침대에 가서 누웠다.

주님께서 급하셨던지 눕자마자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의 종아..나의 충성된 종아..”

나의 딸에서 나의 왕비에서 이제는 나의 종이라고 부르셨다. 그것도 충성된 종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송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주님..그렇게 저를 끔찍이 사랑하시니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 하잖아요..”

“내가 아무쪼록 저들을 시케 하기를 원하노라.  저들이 그럼으로써 더욱 열심을 내어 나를 섬기리라.

나를 사모하게 되리라. 내가 그것을 원하노라.”

 

언제인지 모르게 예수님과 내가 천국에 와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런 진동도 공중회전도 없었는데 말이다.

순전히 주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가시려는 곳이 지옥인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나는 미리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 지옥에 가자.”

그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웃으셨다.  지옥에 가기 싫은 마음이 들어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평소에는 지옥에 가면서 웃으신 적이 없는 예수님께서 웃으시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예수님, 오늘은 왜 지옥에 가자면서 웃으시는 거예요?”

“네가 이제는 지옥과 더 이상 상관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한 때 네가 너무도 극악하므로 나는 마귀가 너를 사망으로 몰아갈 때 너를 놓으려 했었다.

그러나 어린 자녀들의 기도로 내가 마음을 돌이켜 너를 잡은 것이니라.”

 

그 순간 며칠 전 내가 사람들에게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서로의 팔목을 잡는 로마식 악수를 가르쳐 준 것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사람들에게 서로의 팔목을 잡고 있다가 내가 놓더라도 주님은 나를 놓지 않으시므로 내가 구원받는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님이 나를 잡은 팔을 놓으시면 끝이다. 그런데 나를 놓으려 하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록에서 나의 이름이 지워질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한 아이로 하여금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나를 주님께로 돌려놓으셨던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을 조금 해야겠다.

당시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어느 날 새벽, 아파트 15층에서 뛰어 내리려는 충동에 빠졌었다. 그 때 뛰어내리는 것이 바로 주님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택한 나이기에 주님은 그것을 막으시려고 한 아이로 하여금 미리 기도케 하시고 죽으려던 그 순간에 내게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자살의 마음을 돌이켜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내가 주님께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거부하면 주님도 어쩔 수 없이 마귀가 나를 사망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허용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주님을 거부하지 않는 한에는 주님은 결코 나를 버리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모데전서 1:16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나의 과거가 떠오르면서 하염없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주님 앞에 무릎 조아려 울고 말았다.

그 은혜와 그 사랑이 감사해서 나는 울고 울고 울었다.

울고 있는 나를 예수님께서 이제 되었다는 듯이 등을 두드리시면서 일으키셨다.

그리고는 위로해주시려는 듯 나를 데리고 하늘을 날아가셨다. 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층천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보통 날아갈 때에는 예수님과 내가 나란히 날아갔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웃기게시리 예수님께서 내 허리를 두 손으로 안고 한 줄이 되어 나를 뒤에서 미는 것처럼 날아가시는 것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좀 전의 일을 잊고 깔깔대고 웃었다.

 

늘 보면 그 자녀가 우는 모습을 도저히 못 보시는 주님이신 것이다.

그래서 즉시 웃게 하시고 잊게 하시는 위로가 넘치시는 주님이시다.

하늘을 날은지 얼마 안 되어 곧 천국 삼층천의 하얗고 야트막하며 길다란 담들이 보였다.

그리고 사도 요한의 성같이 멋진 집도 보였다. 나의 새 집은 왼쪽 위로 안쪽 쯤에 있었다.

건축 중이 아니라 원래 다 지어진 집인데 나의 집으로 새롭게 단장, 다시 말해 리모델링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지붕 왼쪽 끝에 사도 요한 집에서 본 뾰족탑이 달린 3층 정도 되어 보이는 집이었다.

 

이 집은 원래 누군가의 집이었는데 그 누군가가 그 집의 소유를 포기한 것임을 지식으로 알았다.

아까 말한대로 주님을 거부함으로써 그 집이 나에게 오게 된 것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도다”라는 말씀처럼 자녀로, 왕비로, 종으로 택함을 받았으나 본인이 그 자리를 거부하게 되면 그 모든 은택을 잃는 아픈 결과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29

 

마태복음 25장의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은 자들이 무슨 큰 일을 해내어서 주님께 칭찬받은 것이 아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을 맡기신다(21, 23절)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는지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다.

주님께서 맡기신 그 한 가지 일을 열심히 했는지를 보시는 분이시다.  그리고는 큰 상을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처럼 기분파가 또 어디 계실까?

사람은 아흔아홉 가지 잘 하였어도 한 가지 잘못하면 그 사람을 외면하고 만다.

그러나 주님은 그 반대시다. 아흔아홉 가지 잘 못 했어도 한 가지 잘하면 칭찬하시고 상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그 새 집을 보여주시면서 내 기분을 한껏 되살려 주셨다.

주님과 내가 그런 모습으로 하늘을 날면서 공중쇼를 했다. 이리저리 돌면서 보니 아래로 엄마가 사시는 지역이 보였다.

그 곁에 천국담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근방의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천국담에 붙은 문, 즉 천국문 바로 바깥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초라함과 초췌함과 창백함이라니..

마치 빈민구제소 앞에 줄 서 있는 후줄근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옷은 모시삼베같은 누런 옷들을 입고 있었다.

내 안에 굉장한 궁금증이 일었다.

예수님과 내가 하늘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 보는 상황이었다.

 

“예수님, 저들은 누구인데 저기 서 있나요?” “성령은 받았으나 일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리고 은사는 받았으나 땅 속에 묻어둔 자들이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책망을 받은 종이 떠올랐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5:30

 

그들이 선 곳은 천국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옥도 아니었다.

바로 그들 뒤로 내리막 언덕 아래가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으므로 그들이 그리로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그처럼 천국문에 바짝 붙어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천국 심사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며 울고 선 자들인 것이다..!

세상에 있을 때 열심히 일할 껄..껄..하며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희한했다.

받을 것을 받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아무 말도 아무 느낌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므로 어떤 것에도 오냐 오냐 하실 것 같지만 그런 분이 아니심을 깨닫게 된다.

주님은 감정을 지니신 인격체이시므로 주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게을렀던 자들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라 진노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소행은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모르고 짓는 죄보다 알면서 짓는 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신 분이신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기분이 묘해져 왔다.

지금 우리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모습은 앉아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아까 우린 분명히 하늘에 있었는데?

그러면서 자세히 보니 예수님과 내가 그네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공중에 떠 있는 그네, 다시 말해서 공중 그네였다!

 

너무 놀라는 나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의기양양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이런 것도 못 할까봐?”

그러시더니 “자, 봐라~!” 하시면서 내 손을 잡으셨다.

손을 잡았다 싶었는데 어느새 주님과 내가 천국의 땅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천국의 땅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그네로 가려고 마음먹으니 주님과 내가 도로 그네로 와서 앉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영적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주님과 함께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주님과 함께」-이 말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든 가능케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이런 놀라운 현상 속에 사역을 하다가 주님께서 큰 나팔소리로 부르실 때 「주님과 함께」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게 될 것이다. 마치 공중그네에 주님과 내가 올라가 앉은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나의 교회를 높이 세우리라. 내가 세계 곳곳에서 나의 성도를 모으리라.”

그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시는데 무지무지 굉장히 커지셨다. 두 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펼치고 서 계셨다.

나는 예수님이 너무 커져서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언제 준비되었는지 예수님의 좌우편에서 날개달린 천사들이 그림에서 보듯이 긴 나팔을 불었다.

좌우로 도열해서 나팔을 부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곁을 보니 또 다른 천사들이 어느새 무장을 하고 도열해 서 있었다. 허리에 띠를 두르고 단단히 무장한 것을 보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상당히 급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 같이 찬양을 하는 것이었다.

 

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주님 오시리 속히 오시리

아멘아멘 할렐루야

 

 

스무 번째 데려가심 / 2007년 2월 21일

 

지옥편

 

천사들의 찬양이 끝나자 주님께서 곧장 나를 데리고 지옥으로 가셨다. 맨처음에 보여주신 것은 섹스에 몰입한 자들을 다루는 곳이었다. 커다란 원통 안에 사람들이 발가벗긴 채 엎어져서 포개져 아우성치고 있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 안을 가득 메우고 끝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원통에 맞는 사이즈의 호떡 누르는 같은 두꺼운 검은 쇠로 원판이 위에서 내려치고 있었다.

원판 중앙에는 쇠봉이 있어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작동중이었다. 무쇠 원판이 사람들을 떡치듯 내려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나중에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내려치는데 때마다 사람들의 살이 좌우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터진 살들이 도로 제자리로 와서 사람에게 달라붙고 내려치면 살이 터져 나가고 그러면 다시 내려치고 하는 반복적인 쿵쿵거림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내려치는 소리…!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로마서 1:2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베드로후서 2:14

 

번째로 보여주신 것은 남자 동성애자였다. 벌거벗은 남자의 항문에 굵은 쇠막대가 꽂혀 있었다.

쇠막대는 아주 길어서 남자의 입으로 튀어 나와 있었다.  휘어지는 쇠막대인듯 했다.

남자는 놀랍게도 허공에 매달린 고문을 당하고 있었는데 고통스러워서 어쩔 모르고 있었다. 

아래 서서 바라보는 마귀들은 창을 들고 서서 서로 킬킬대고 웃으며 그 남자를 비웃고 있었다.

마귀 하나가 창을 들고 와서 남자의 성기를 사정없이 잘랐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놀랍게도 잘린 성기는 어느새 달려 있어서 계속 잘리는 것이었다.

마귀들은 자른 성기를 가지고 밑에서 조롱하며 서로 장난을 쳐댔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서 1:2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다서 1:7

 

번째로 보여주신 것은 여자 동성애자들이었다. 벌거벗은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형틀에 사지가 벌려져 매달려 누워 있었고 여자는 사지를 벌리고 서서 쇠줄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

누운 여자의 가슴과 성기를 마귀들이 도려내며 말했다.   너희는 이런 필요없지? 킬킬킬~.”

가슴과 성기를 도려낸 여자의 아래서부터 성기부분까지 세로로 가르는 것이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다 못해 까무라치듯 널브러졌다.    있는 여자도 비슷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과 성기를 도려냄을 당하고 그녀의 배는 가로로 갈라졌다.

마귀들이 곁에 있다가 갈라진 배에서 나오는 창자를 길게 잡아 빼서 입으로 씹어먹다가 도로 창자에 집어넣었다가 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로마서 1:26

 

번째로 보여주신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왠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예수님, 아이들이 때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오게 되나요?”

내가 너에게 말했느니라.”  어제 은행에서 불현듯 떠올랐던 생각이 기억났다.

은행창구에 줄서 있으면서 천국에서 아이들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때까지의 아이들이 천국에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에일곱 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는 그것이 그저 생각일 거라 여겼지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지금 주님께서 때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계시고 우리의 마음의 생각까지도 열납하시며 답하심의 증거가 아닐 없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14

 

일곱 이전의 아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에 상관없이 천국에 간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반면 일곱 이후에 예수님을 믿지 않은 아이들은 지옥에 가는 것이다.

일곱 살로 규정되어 있는지는 가르쳐 주시지 않으므로 나는 모른.  

그저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일곱 이상의 아이들이 구덩이 같은 곳에 오글오글 모여 무릎 꿇은 엉엉 울면서 손을 모아 싹싹 빌고 있었다.  엉엉..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그들의 뒤로 벽면에서 커다란 불구덩이가 화염 방사기처럼 화아악~! 하고 불길을 토하며 아이들을 향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이리저리 피하며 뜨거워 어쩔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었다.

 

다른 형벌은 그들 중 13,4 정도 되어보이는 소년들에게 내려지는 벌이었다.

아이들의 머리 부분, 위로 있는 부분의 머리를 쇠톱같은 것이 나와 가로로 자르 것이었다.

그러면 비명을 지르며 잘못했다고 울며 빌었다.

잘려서 사라졌던 머리가 다시 자리로 와서 붙고 잘라지고 하며 계속 반복하여 같은 형벌을 받고 있었다.

좀 더 나이든 아이들에게는 이같은 이중형벌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한일서 3:7-8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요한일서 5:21

 

다섯 번째로 보여주신 것은 돈을 사랑하여 아첨하는 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때문에 예수님 사랑하는 것을 감춘 자들이라고 하셨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서 1:16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누가복음 12:8-9

 

저들의 혀가 길게 잡아 뽑혀 있었다.

상당히 불편한 자세로 고개가 앞으로 숙여져 있는데 앉은 모습에서 앞으로 목을 빼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듯한 자세였다. 그런 자세로 길게 뽑혀진 혀가 대장장이가 쇠를 치는 듯한 위에 놓여져 있었고 혀에 쇠꼬챙이를 길게 꽂은 계속 망치질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들은 소리도 지르고 눈물만 뜨겁게 흘리고 있었다.

여섯 째로 보여주신 것은 떼의 사람들이었다.

그런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 주위로 지옥 가상자리쪽에서 줄로 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해골표본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형상이었다.

자세는 앞으로 손을 길게 내려뜨리고 고개를 빼고 다리는 조금 구브러진 힘없는 모습으로 하염없이 돌며 걷는 것이었다. 저들은 어떤 사람들인데 저러고 있나요?” 일하기를 싫어하는 좀비족같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데살로니가후서 3:10

 

모든 것을 눈물은 나지 않는데도 없는 고통으로 마음이 퍽이나 힘들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네가 너무 힘들다.” 예수님께서 내 허리를 감싸 안고 다시 천국으로 돌아오셨다.

 

스무 번째 데려가심 / 2007년 2월 21일

 

종결편

 

천국으로 돌아와 기진해 있는 나에게 달려오신 분은 놀랍게도 큰아버지셨다.

반갑게 나를 부르며 달려와 나를 안으셨는데 얼굴이 젊으셨을 때 모습같이 보였다.

원래 인물이 좋으셨던 큰아버지셨는데 더 미남이 되셨다.

너무 반가와서 “큰아버지!” 하며 와락 안았습니다. 그렇게 반가와 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이상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실은 엄마와 내가 더 이처럼 얼싸안고 얼굴을 부비고 해야 마땅할텐데 엄마랑은 이런 포옹이나 반가움을 표해본 적이 없었다.

지상에서 나의 마음은 늘 엄마를 그리워하고 애절한 마음이었음에도 말이다.

 

천국은 세상에서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상대의 영혼이 얼마나 주님과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서 서로의 친밀함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엄마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분이시라 내 영혼이 엄마를 보면서도 데면데면 했던 것이고 큰아버지는 미국 이민오셔서 계속 예수님을 믿으시다가 돌아가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차이가 이처럼 큰 것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가복음 3:34-35

 

큰아버지께서 나를 대견하다는 듯이 등을 두드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를 구원에 이르게 하다니...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사실 아버지를 구원하신 분은 주님이시고 나는 단지 도구로 쓰였을 뿐인데 주님 덕에 큰아버지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는 것이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큰아버지의 얼굴 뿐 아니라 말투까지도 변하셨다는 것이다.

원래 함경도가 고향이시라 함경도 사투리를 무척 많이 쓰시던 분이셨는데 천국에서는 사투리가 전혀 없는 표준말을 고상하게 쓰시는 것이었다. “큰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가 병원에 갔었지요.”

그 때 큰아버지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 때 이미 영적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볼 수 있도록 주님께 부탁드려서 네가 조지아주에서 올라오도록 한 거란다.

내가 말을 할까봐 주님이 내 입을 봉해 놓으셔서 내가 그때 말이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너 뿐 아니라 우리 식구들에 대해 나는 영안을 열어 다 볼 수 있었단다.

나는 너를 향한 주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너에게 미리 말해주고 싶었지만 주님이 허락지 않으셔서 못한거야.”

나는 그때 조지아주에 가 있었는데 왠지 자꾸만 버지니아에 계신 큰집으로 가고 싶은 것이었다.

평소에는 피차 바빠서 자주 연락도 못하고 지내던 터였다.그래서 마치 등떠밀리듯 급거 올라오게 된 것이었다.

 

오자마자 큰집에 전화부터 했더니 큰아버지께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었다.

생전 안 가시던 병원에 가신 것이 수상했다. 허겁지겁 병원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내가 들어서자 큰아버지께서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런데 말씀을 전혀 못하신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저런 위로의 말씀을 드렸고 큰아버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곁에 있는 딸에게 펜과 종이를 달라는 것을 간신히 알아차리고는 드렸다. 거기에 뭔가 쓰시려고 하는 듯 했다.

동..이라는 글자를 쓰시는데 상당히 힘겨워 하셨다. 그 다음 글자를 쓰시려다가 다시 지우기를 몇 번, 끝내 다 못 쓰셨다.

나는 이제 그 글자를 안다. 모세의 동풍을 말씀하려고 하신 것이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때의 사명이므로. 그러나 그때는 주님의 때가 아니었으므로 주께서 허락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 때 큰아버지의 답답함이 오죽하셨을까.

그렇게 말씀을 못하시는 상황에서 가족들을 한 명 한 명 뚫어지게 바라보셨다고 한다.

주님께서 지상에서 우리 인간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실 때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누가복음 12:50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신지 이틀만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모습이 주무시는 듯 평안한 모습이셨어서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끼치셨었는데 이처럼 천국에서 직접 뵈니 말로 할 수 없이 기쁜 것이었다. 함께 기뻐하고 있는 자리에 반가운 분이 또 한 분 나타나셨다. 큰이모였다!

여태껏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분들을 만나게 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생각지 않았던 두 분을 만나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지금 이 만남은 스무 번의 천국기행을 하며 수고한(?) 나에게 일종의 보너스로 주시는 선물임을 깨달았다.

원래 이북출신인 우리 집안에서는 큰이모를 큰엄마라고 불렀으므로, 나는 그 분 생전에 부르던 대로 하면 큰엄마라고 불러야 옳다.그런데 천국에서 만난 그 분을 보며 내가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큰이모!”

큰아버지나 큰이모나 두 분 다 연세가 팔십이 되어 돌아가신 분들이고 기력이 약하여 거동이 몹시 불편해 하셨었다.그런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으셨다.두 분 다 활발하게 걷고 뛰기를 아주 잘 하시는 것이었다.  천국의 놀라운 섭리여..할렐루야!

큰이모께서 내게로 달려와 나를 안아주셨다. 큰이모는 칠십 대에 예수님을 영접하셔서 은혜 중에 몇 년간 사시다가 은혜 가운데 돌아가셨었다. 큰이모께서 나와 대화하시면서 속으로는 세상의 가족들을,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을 떠올리고 있음이 내게 보여졌다.

천국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에는 세상에서 맺은 인연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한 번 맺어진 인연(혈연 등)은 천국에 먼저 이른 자들에게는 일종의 숙제로 남는다. 그래서 먼저 간 자들은 이 땅에 남은 자들을 위해 계속 중보의 기도를 하게 된다. 가끔씩 보면 가족 중의 누군가가 먼저 죽은 후에 그 집안이 예수님을 잘 믿는 가정이 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바로 그런 경우가 천국에 앞서 간 친족이 이 땅에 남은 가족들을 위하여 열심히 중보한 기도의 열매라고 보면 맞다.

내 경우도 엄마가 먼저 천국에 이르러 모든 것을 통찰하게 되어 나를 위해 계속 중보한 결과인 것이다.

또한 지금 지상에서도 먼저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백성이 된 자들이 다른 친족들을 영혼의 숙제로 삼아 그들의 구원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계속해서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가족으로 묶으신 이유이다.

그러므로 너무 끈끈한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묶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서로 의논하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천국의 모습인 것이다.

내가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는 큰이모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세상촌에서 주사를 맞지 않으세요? 거기 기도의 주사도 있을걸요?”   “그러게..아무래도 그래야 할까봐..

나도 거기 가서 주사 맞고 기도 더 많이 할테니깐 너도 기도 많이 해줘, 알았지?

그리고 나 걱정 안해, 주님이 계시니깐.”   “그럼요! 주님이 붙들고 계시는데요.”

이 대화를 나눈 후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많이 웃었다. 천국 몇 번 다녀봤다고 잘난 척 하기는...킥킥!

천국백성 앞에서 천국 방문객 주제에 웃기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혼자 킥킥 웃고 그랬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 깨닫게 된 것은, 비록 육신을 가진 자라도 이미 천국에 이른 백성보다 영적지식이 더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주님께서 나와 큰이모의 관계를 통해 알려주고 계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육신을 가지고 계셨으나 이미 천국백성인 모세와 엘리야보다 뛰어난 분이셨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나타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누가복음 9:30-31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내가 본 세상거리를 세상촌」이라 칭하는 것이었다.  마치 한국에 있는 「민속」처럼...ㅎㅎㅎ

 

그 때였다.내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애굽의 국무총리 요셉이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채색옷을 입고 17세 소년의 모습으로 왼 손에 부채같은 것을 들고 부채질하듯 흔들며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는 안녕~!하고 인사하듯이 반가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발 아래 요즘 공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평한 에스컬레이터가 깔려있는 듯, 사람들이 한 명 두명 스르륵 연달아 지나가고 있었다.내가 그간 만났었던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 베드로, 다윗, 바울, 누가...등등등.

 

그러다가 어떤 분이 보였다.

아..왜 여태 그 분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에스더 왕비였다!

너무도 반가움에 한 손을 내밀어 그 앞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허락되지 않았음인지 마음 뿐이었다.

에스더 왕비가 왕비복을 입고 마치 여왕 대관식 때 같은 백설의 가운같은 것을 걸치고 손에는 봉을  들고 아름다운 얼굴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순서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성경인물들이 먼저 차례로 나오고 이후에 이 시대를 살았던 신앙의 인물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아마도 천국의 온 성도들이 믿음의 반열의 순서대로 나오고 있는 듯 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브리서 12:1

 

마치 연극무대가 끝날 때 모든 연극배우가 무대에 차례로 나와 인사하는 장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연출하시는 역사 (History; His Story)라는 무대 위의 배우들일 뿐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르실 때 나타나서 그 분이 맡기신 배역(사역)을 충실히 하다가 그 분이 내려오라시면 무대에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후의 커튼콜의 주인공은 연출자이신 우리 하나님이시며 오직 그 분 홀로 온전히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멋지신 우리 주님께서 스무 번째 천국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이처럼 멋있게 장식하고 계신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의 줄지은 아름다운 행진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자..이제 그만 헤어지도록 하자.”  그 때 그 말씀이 이 책의 마지막을 의미함을 알았다.

갑자기 무언가 마음 속에서 텅!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으면서 애절한 마음이 되어 주님께 물었다.

“주님! 20 번이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아직 20 번이 안 되었잖아요.”

“믿음으로 온 것은 왜 안 세느냐?”

헉..그것까지...

예수님께서는 그 때 믿음으로 잠시 왔었던 것을 세고 계신 것이다. 우리 주님의 치밀하시고 섬세하심에 다시 한 번 또 놀랐다. 아쉬움에 다시 물었다.  “그럼..이제 주님 못 보는 거예요?” 그 때 예수님께서 기쁜 약속을 해주셨다.

“너랑 계속 만날 것이니라. 이것은 1집이니라. 2집도 써야지.”  “그 때도 지금처럼 천국이야기를 쓰게 되나요?”

“지금보다 상세한 내용을 쓰게 될 것이다. 주로 마지막 때에 관한 내용이다.

이 땅에 남은 자들이 지켜내야 하는 믿음에 관해, 환난을 잘 견디는 방법, 신부로 단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 버려야할 것들에 관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와 사건 등에 관해 쓰여질 것이다.”

어디선가 말씀을 큰소리로 낭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요한계시록 22:10절 말씀 중의 내용이었다. 아까 들었던 찬양과 나팔소리가 천국 가득 울려 퍼졌다.

 

내가 오리라 구름타고 오리라  내가 오리라 속히 오리라  아멘 아멘 할렐루야

2절이 연이어 불리워졌다.

 

내가 가리라 구름타고 가리라  내가 가리라 속히 가리라  아멘 아멘 할렐루야

 

천국의 아름다운 성도들과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면류관과 아름다운 옷으로 단장하고 모두들 웃으면서 나에게 작별의 손을 흔들며 외쳤다.   “또 다시 만나~!”

그 모습 속에 큰아버지와 큰이모도 함께 서서 나를 향해 환히 웃으며 작별을 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역시나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상으로 내려가기 싫어서 무언가 질문을 하고 싶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이었다.

성령님께서 생각을 주시지 않으면 단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 잡으려는 듯 손을 내어밀어 보다가 포기하고 나도 모르게 작별의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또 다시 만나요~! 곧 만나요~!”  그리고는 다시 지상으로 아쉬움 속에 내려 보내졌다.

 

지금도 이 마지막 작별의 장면, 천국에서의 그 아름다웠던 모습을 생각하자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너무나 가고 싶은 그 곳, 너무나 그리운 그 곳...! 나의 사랑하는 신랑이 나를 기다리고 계신 그 아름다운 곳...!

내 본향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지난 해인 2008년 연초에 이 책 내용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기간 중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나의 마음을 알려주리니 너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라.”

나는 무엇인지 영문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아멘...했었다. 그리고는 무심하게 계속 작업을 진행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열 세번 째 데려가심 가운데 사도 요한과 만나기 직전에 상급집에서 나를 침대에 누이시고는 예수님께서 나에게 성경을 읽어 주시는 대목을 읽고 있었다.

그 때까지도 내게 늘 풀리지 않던 의문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내게 <모세의 홍해사건>을 읽어주신 대목이었다.

주님께서는 어느 것 하나도 그저 하시는 일이 없으신 분인 것을 그간의 천국기행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도무지 그 대목은 알 수가 없었다.

왜 하고 많은 성경의 사건 가운데 그것을 읽어주신 것인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홍해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어밀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밤새워 동풍을 불게 하셔서 바닷길을 내셨고 그리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무사히 지나가게 하셨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출애굽기 14:21

 

이 부분을 읽는데 갑자기, 주님께서 왜 나에게 그 대목을 읽어주셨는지 깨닫게 하셨다.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 어떤 부분에 대해 체인처럼 꿰뚫어지는 통찰을 주시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그간 보여주셨던 일련의 사건들과 만나게 하셨던 성경인물들에 대한 깨달음이 줄줄이 엮어져서 아항, 아항! 하며 깨달아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일을 행하셨던 거였구나! 그래서 그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던 거였구나!

그래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셨던 거였구나!

 

그것은 바로 동풍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겠다는 주님의 의도를 밝히신 것이었음을 알게하셨다.

그것을 나의 어리고 아둔하며 이기적임으로 인해 감추어 두셨다가 이제야 눈을 열어 보이신 것이었다.

그 동풍이란 동쪽에서 부는 성령의 바람이다.

동쪽에서 부는 성령의 바람으로 한국을 쓰시려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 뿐이 아닌 한국, 중국, 일본 이 세 나라가 바로 동풍이 되어 이스라엘을 향하여 불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게 중국군대가 이스라엘과 전투하는 장면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왜 사도 요한을 만나기 직전에 그 사건을 읽어 주셨으며 그 이후 왜 계시록을 읽어주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도 요한이 이 마지막 시대에 있을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총책임자를 맡고 있음을 이후 천국에서 사도 요한을 만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밧모섬에서 환상을 보았을 때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고 했다.

모세의 홍해사건과 사도 요한,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구슬처럼 연결되어진 마지막 때의 구속사역인 것이다.

 

그리고 맨 처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셨을 때 보여주신 인물이 다윗이었다. 그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 그리고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

주님은 다윗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천국에 와서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온통 이스라엘에 가 계신다. 그래서 내게도 이스라엘 춤을 추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는 기도 중에 환상으로 통곡의 벽을 보여 주셨다.그 벽을 향해 몸을 흔들며 기도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런 그들이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과는 또 다른 아픔의 눈물을 지금도 흘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통곡으로 한참토록 울게 하셨다.

 

그 다음 환상으로 십 오 년전 내가 성지순례 갔을 때 그 통곡의 벽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은 내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들의 아픔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 아프신 주님의 마음은 전혀 헤아림도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은 천국에 나의 죄악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하셨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드린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이 책을 출판하게 하심도 바로 그 일을 알게 하시고자 하심임을 이제야 깨닫게 해주셨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아픔을 가지고 지난 2천여년간 그들의 회복을 기다려 오신 것이다...!

주님의 그 마음을 보여주신 후 나 거의 이틀을 눈물로 지냈다.무엇을 하건 쉬임없이 두 눈에 눈물이 멈추지 않고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되어 통곡의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눈물은 자식의 잘못으로 매질은 하되 그 자식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이 오히려 그 자식이 당하는 아픔과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눈물흘려 오신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이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며 눈물로 통곡하셨던 이유를 이제야 가슴 저리도록 느껴지게 하시면서 얼마나 얼마나 울었는지..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내 자신이 주님께 너무너무 부끄러웠다.

이 책을 쓰면서조차 주님께서 깨우쳐 주시기 전까지는 그저 천국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던 나의 이기심을 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여태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던 나의 사랑없음을 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저 내 주변이 잘 되고 내 나라가 잘 되고 나 혼자 하나님 잘 섬기면 된다는 나의 메마르고 얄팍한 속내를 보게 하셨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님께서 보여주신 아버지의 마음이 있다. 그것은 사사기에 있는 단어를 통해서였다.

사사기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얼토당토 않게 툭 튀어나오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아주 생소한  “메로스”라는 단어가 클로즈업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왠지 그 단어의 의미가 궁금해져서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사사기 5:23

 

메로스는 성읍의 이름인데 성경에 이곳 한 번만 언급된 지명이다.

그 단어의 의미를 추적하여 그 뜻이 “물러가다”임을 알았다.

또 조금 파생된 의미로는 “분깃”이라는 뜻과 더불어 “상관이 없다”는 뜻도 지닐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메로스 성읍의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전쟁 즉, 이스라엘의 회복에 무관심했고, 이기적이었으며 계산적이었고 몸을 사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듭거듭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메로스를 통해 바로 나의 모습을 보게 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고 하면서 그 분의 계획과 뜻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던 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쓴 후로 주님께서는 나를 다시 천국에 데려가셔서 사도 요한과 만나게 하셨다.

그와는 이후에도 여러 번 만나게 하셨는데 그 내용은 두 번째 책에 실리게 될 것이다.

지금 이곳에는 실크로드에 관한 부분만 간략하게 적도록 하셨다.

 

사도 요한 집 앞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예수님과 사도 요한 그리고 내가 그 연못을 가운데 둔 상태로 서 있었다.

사도 요한이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지도를 하나 가지고 나오는데 일 초도 안 걸리는 것이었다.

여전히 세 명 다 서 있는 상태에서 연못 위에 마치 투명한 테이블이 있는 것처럼 지도를 펼쳤다.

만화나 공상과학 같은 이 일이 천국이니깐 가능한 것이다..^^

아무튼 지도를 펼쳤는데 보니깐 세계지도였는데 우리가 보는 것과는 좀 달랐다.

구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울퉁불퉁한 지형이 입체감있게 살아있는 세계지도였다. 거기에는 국가표시도, 경계선도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인공위성에서 내려다 보는 지구의 모양을 평면으로 펼려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며 또한 하나님 눈에는 나라의 구분이 없는 육지일 뿐임을 여실히 알게 해주는 지도였다. 그것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믿음의 조상인 욕단이 간 길을 거슬러 다시 오도록 할 것이니라.

육로와 해로를 통하여 할 것이니라. 내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이 일을 이루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전서 1:21

 

그러면서 또 말씀하셨다. “너는 네 장막 줄을 넓게 펼치라. 넓게 확장하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사야 54:2

 

그러더니 지도에서 한국 위쪽 즉, 압록강 하류쯤을 출발점으로 해서 서쪽으로 몽골을 거쳐 줄이 빨간색으로 그어지는 것을 보게 하셨다. 도착점은 예루살렘이었다.

그리고는 두꺼운 화살표로 해상에 서진하는 방향으로 하나 그려지고 또 하나는 서쪽 하늘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도착하는 듯 표시되는 화살표가 하나 더 그려졌다.

즉, 육지와 바다 그리고 하늘 세 군데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동풍이 불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나서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졌다.

 

깨었는데도 여전히 그 지도와 그려진 빨간 줄의 루트는 눈을 떠도 감아도 생생하게 내 눈앞에 그려지는 것이었다.

잠시 후 인터넷에서 세계지도를 찾아보았다.그러면서 공연히 실크로드라는 단어가 떠올라 한 번 찾아보았다.

실크로드를 찾아보았더니 북쪽으로 실크로드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루트와 거의 흡사했다!

거의 흡사하다는 것은 실크로드와 주님께서 보여주신 루트와 어느 정도는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루트대로 지도에서 짚어보니 한국-몽골-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터키-예루살렘 방향으로 그어지는 형태였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실크로드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 믿음의 조상인 욕단이 간 길을 거슬러 오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아마 성경에 나오는 욕단이 동쪽을 향해 길을 따라 우리나라에까지 이르렀나 보다.

성경을 보아도 별 관심없던 욕단이라는 이름은 찾아보니 창세기에 있었다.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  창세기 10:29-30

 

놀라운 것은 이후 인터넷에서 욕단을 검색해보니, 대천덕 신부님이나 또 어떤 목사님이 낸 책에도 아리랑 민족에 대해 언급하면서 욕단이 우리의 조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대천덕 신부님의 글을 인용한다.

 

예수원 설립자 토레이(R. A. Torrey대천덕)도 셈의 현손(玄孫)인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동양 민족들은 욕단 계열일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창세기 10장 25절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 … 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 「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이 글을 인용한 것은 주님께서 나에게만 알려주신 것이 아니고, 주님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곳곳에서 나타나시고 알려주신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말씀하신 동풍이 이미 오래 전부터 “백 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내에서 진행되어 온 운동과 일맥상통한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주님의 은혜로 그 후발대열의 맨 뒤에 서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깨닫게 하시고 참여케 하시니 감사한 일이다.

나는 예전에 백 투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거기에 대해 정말 무관심했었다. 그냥 그런가부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깨닫게 해주셔서 생각해보니, 주님께서 그토록 나에게 애절하게 내 백성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나, 너를 통해 아무쪼록 저들을 시기케 하실 것이라 하신 말씀이나 모두 이스라엘 백성을 염두에 두고 하셨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주님 앞에 잘못을 저질렀음으로 인해 이방인인 내가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이처럼 기쁨 중에 호강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도구가 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처럼 철저히 무관심해 왔던 것이 말로 할 수 없이 미안해지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해도 어떤 분은 이전의 나처럼 무관심한 분들이 계실 것이다.

또 어떤 분은 이스라엘에 대해 반 유대주의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실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나도 그런 마음을 없지 않아 품었던 것 같다.

누가 나더러 그런 마음을 가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뿐 아니라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은 나보다 나은데 뭘. 나보다 잘 살잖아? 내 코가 석잔데..”라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러한 무관심이나 적대감 내지는 오해의 저변에는 다름아닌 사탄의 전략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없는 무관심을 드러내게 한다.

사탄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아무쪼록 막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비협조적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부유하므로 도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도 여늬 국가와 다름없이 부자와 가난한 자가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초림 때에 바리새인, 사두개인들과 같은 기득권층과 가난한 백성들로 구성되어 있던 사회구조와 같은 것이다. 그 당시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득과 명예를 위해 초림의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일부 우매한 백성들도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는 예수님이 사기꾼이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바리새인들과 함께 조롱하는 공범죄를 지었다. 그러나 아무 힘이 없는 백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면서도 저들의 결정에 의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며 가슴을 치고 울거나 제자들처럼 도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님은 바로 불쌍한 이 백성들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이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겠는가? 주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그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지금에도 동일하게 펼쳐지고 있는 사건이다.

과거에 예수님을 거부했던 지배층은 지금도 존재하며 이제는 더더욱 강하게 거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초림 때에는 이스라엘 한 국가에만 적용되던 예수님께서 이제는 온 세상의 왕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지배층 뿐이 아닌 세상 주자인 사탄의 마음이 바빠진 때문이다.

재림하시는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심으로써 자신의 권세를 모두 빼앗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 수난사건 때에 헤롯과 빌라도가 원수였다가 야합함같이 재림 때에도 그처럼 사단의 연합작전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누가복음 23:12

 

사단은 이 세상 권세를 누리고자 하는 자들의 마음을 부추긴다.세상 재미를 보려고 하는 자들에게 들어가 속삭인다. 세상 명예와 낙을 누리고자 하는 자들과 한 마음이 되어 예수님을 대적하고 재림을 결사적으로 막는 것이다.

그들은 초림 때보다도 더욱 강하게 예수님의 재림을 반대하고 거부하고 훼방할 것이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특히 실크로드 선상에 무슬림권이라는 지뢰를 설치하고 동풍이 예루살렘으로 부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사단의 전략이 숨어 있다.

얼마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가자지구 전쟁이 치열했었다. 그 때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시위를 했었다. 이스라엘의 지배자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외부의 친근세력들은 데모를 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비난받게 부추긴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을 노린 전략인지를 통찰의 눈으로 직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예수님의 재림을 더디게 하고자 하는 사탄의 계략에 다름아닌 것이다.

이 사단의 전략을 무색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의 전략뿐이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어 안아야 한다.  승리의 비결은 오직 그것 뿐이다.

 

우리를 지치게 하고 넘어뜨리려고 쏘아대는 불화살을 말씀으로 이겨내고 그들을 향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의 물맷돌을 던져 얼어붙은 현대인의 심령을 녹이는 것!

 

말씀과 사랑!

이것이 이 마지막 때의 전략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단의 전략을 능히 대응할 수 있는 하늘의 전략인 이 두 가지를 내게 충만히 채워주시기를 주님께 구하여  곳곳에서 싸워 승리하며 헤쳐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최후의 고지인 예루살렘을 향하여!

제자들 앞에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며 승천하셨던 감람산으로 예수님은 가실 때의 모습처럼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11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감람산으로 나아가셔서 승천하셨던 것이다.

 

에 그의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절반은 으로, 절반은 으로 옮기고   스가랴 14:4

 

나는 지금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난다. 이 말씀이 14장 4절에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너무 졸려서 잠이 들었다. 꿈에 누군가가 나에게 14장 4절을 보라는 음성이  들렸다.

꿈에서 깬 후 나는 성경 66권 가운데 어디인지 몰라서 창세기 출애굽기 두 군데를 찾다가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스가랴서를 찾을 감동을 주시길래 찾아 보니깐 바로 스가랴서 14장 4절이었다!

주님께서 얼마나 이 글이 쓰여지기 원하시면 꿈에조차 가르쳐 주실까….

 

이 모든 사단의 전략은 그러나 패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이처럼 성경 곳곳에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이므로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사단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해 기도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그 하하나가 우리에게는 상급으로 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며 또 우리의 기도를 통해 주님의 오심이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에스겔 36:37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 일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일인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모든 시름과 고통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천국에 이르는 일을 뜻한다.

주님은 온세상의 회복을 기다리고 계신다. 이방인 뿐만이 아닌 이스라엘의 회복까지 온전한 회복을 원하고 계신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땅끝에서 시작하여 땅끝에서 끝나는 구속의 역사인 것이다.

 

오직 성령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 받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주님은 하루 속히 세상에 오시기를 원하신다. 승천하셨던 것처럼 예루살렘 감람산에 강림하시길 원하신다.

그리하여 하루 속히 그 곳에서 사랑하는 자녀들과 만나기를 원하신다.

그 일에 우리 각자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 일에 함께 동역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받게 된 우리들이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서게 해야 하는 사명이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직 사랑으로써만 되어지는 일이므로 주님께서 그토록 서로 사랑하라고 쉬지않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랑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

녹일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아멘.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방인들에게 사도 바울을 보내어 너희를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내 백성을 구하겠다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로마서 11:13-14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시고 마게도냐 즉, 서방 유럽으로 보내시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는 계획을 이미 그 당시에 하셨던 것이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도행전 16:6-7

 

그 마지막의 싯점에 저와 여러분이 서 있는 것이다.

이 마지막 추수 때의 일군으로 쓰일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이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하고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인정하고 맞이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3:39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자.

성령의 세례로 권능을 받고 예수님께서 서실 감람산을 향하여 주님의 군사로서 서로 세워주고 격려하며 이스라엘로 나아가자.

축복받은 언약의 백성이면서도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그 불쌍한 그들에게 사랑으로 나아가자.

몸이 가지 못하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마음으로 영으로 기도함으로 나아가자.

그리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감람산에서 하늘 아버지를 모신 한 형제요 자매가 되어 함께 어우러져 초림의 예수님을 맞이했던 예루살렘 백성들처럼 큰 소리로 외치자.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시여~!

그 때 비로소 우리 모두는 얼굴과 얼굴을 보듯 확실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2-13

 

 

 

기록을 마감하며

 

이 책 전반에 걸쳐 수시로 기록된 바대로 세상만사 되어진 모든 일에 있어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역사 한 무대에서 한 가지 작은 배역을 맡아서 한 것이 저의 역할의 전부입니다.

 

저는 단지 심부름꾼로서 주인께서 맡기신 바 소임을 시키시는대로 전달했을 뿐, 그 선물에 관한 지식도 이해도 없는 작고 미천한 티끌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내용물에 대한 문의와 감사는 주인되신 주님께 직접 하셔야 마땅합니다.

죄인 괴수에게 베푸신 주님의 한량없는 긍휼과 오래참으심을 보고 이후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이 주께로 나아올 힘과 용기을 얻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더더욱이 이전의 저처럼 지금 세상에서 습관적인 죄악으로 신음하는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부디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그리하여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다면 저는 지금 주님께서 데려가셔도 좋다는 마음 하나뿐입니다.

나의 주님, 주님께서 고집불통같은 인간을 부수며 얼르며 오래 참으시는 사랑 하나로 이 자리까지 이끌어 오셨나이다. 여기 감사의 눈물담아 향유부은 마리아마냥 주님 발 앞에 부어 올리나이다. 저를 제물삼으시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가슴을 녹이시고 안으소서…!

 

날 사랑하시어 자기 몸 버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이 몸 바칩니다. 아멘.

2009년 1월에,

 

주께서 인도하신

천보산민족기도원 작은 방귀퉁이에서

 

티끌보다 작은 주님의 하녀   박소리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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